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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재난과 인권] 회복의 시작 : 진실에 대한 권리

-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 선언 -
제 6 조 진실에 대한 권리
모든 사람은 재난을 초래할 환경과 이유를 포함한 진실을 알 권리를 가진다. 진상조사를 위한 기구에는 충분한 권한이 주어져야 하며 공정성과 독립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진실에 대한 어떠한 은폐와 왜곡도 용납될 수 없다.

현재 작업 중인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문2>(가제)는 용산참사 생존 피해자들이 참사 이후에 붕괴된 자신의 삶을 복구하고 아찔했던 참사의 경험을 치유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한 피해 생존자와 화재 직전에 망루에서 탈출하는 과정에 대한 인터뷰를 하던 중에 그는 지금 막 망루에서 탈출하는 듯, 그 날의 상황을 선명하게 묘사했다.

“밑에서 유독가스? 매연? 이런 게 이제 막 뒤엉켜서, 사실 아수라장이 돼서, 한 순간에 숨이 막혀서 창문 쪽으로 갔는데, 창문 쪽으로 갈 때까지 숨을 꾹 참고 그냥 얼굴 내밀고 뛰어내렸던 거죠. 나도, 나도 모르게 얼굴만 내밀고 막 뛰어내렸는데, 무의식적으로 창틀을 잡았어요. 창이라고 해봤자 함석판을 그냥 잘라놓은 것이라서, 그 함석판에, 그래서 손이 이렇게 찢어졌었는데, 왼손으로 잡고, 왼손으로만 창틀을 잡고 밑에를 보는데 밑에가 안보이더라고요. 어두워서 안보, 안 보이는데, 밑에가 안보여서 더 이제 무섭긴 했는데, ‘어 놔야겠다. 놓자’, 이러고 인제 그냥 놨죠. 근데 지금도 이제 그 생각이 문득문득 나고, 그 때 상황이 문득문득 나고, 그니까 늘, 늘 머리 속에 늘 그 장면이 떠오르고, 자기 전에도 생각나고, 문득 어느, 전혀 상관없는 데서도 그 생각이 나기도 하고. 그 때 그 기억이, 내가 매달려있는 것 같은 함석판에 자꾸 매달려 있는 것을 뒤쪽에서 내가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되게 많이 받아요.”

방금 망루에서 탈출한 듯 힘들어 하는 그에게 용산참사에서 가장 궁금한 것이 무엇이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의 답은 내가 상상했던 답변과 너무 달라서 당황했다.

“궁금한 것은 많이 있지요. 근데 제가 망루에서 몇 번째로 떨어졌는지 좀 궁금해요.”

농성 25시간 만에 강제진압이 시작되었고, 철거민이 테러리스트라도 되는 듯 경찰특공대가 투입되었고,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이 죽음에 이르렀고, 국가는 용산참사와 죽음에 대한 책임을 철거민에게 전가하여, 많은 철거민들이 부당하게 감옥에 가야만했다. 본인 역시, 그렇게 억울하게 3년 동안 수감생활을 해야만 했다. 이토록 잔혹하고 거대한 억울함이 가득했던 상황인지라 내가 예상했던 답변은 그토록 무자비했던 강제진압은 누구에 의한 명령이었는지, 왜 그토록 서둘러 진압했어야만 했는지 그리고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는 채증 영상은 왜 없는지 등과 같은 국가폭력과 편파적이었던 재판과 관련한 부분이었다. 물론 그 역시 이러한 국가폭력이나 재판과정에 관련한 부분들에 대해서 궁금하다고 했다. 내가 그의 대답을 의외라고 여겼던 이유는 그가 알고 싶은 것들 가운데 가장 먼저 이야기한 것이 9명의 피해 생존자들 가운데 자신이 과연 몇 번째로 탈출했는지 라고 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거대한 비극 앞에서 그가 궁금해 하는 것은 너무 의외였고, 심지어는 사소해보이기까지 했다.

“그게 왜 궁금해요?”

돌이켜보면 그 질문을 할 때, 나는 짓궂게 피식 웃고 있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의 답변은 이러했다. “그냥이요. 그냥 알고 싶어요. 그냥.” 나는 ‘그냥’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되물었지만, 그는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이 힘들다고 하면서 또 ‘그냥’이라고만 답했다. ‘몇 번째로 탈출했는지 그냥 알고 싶은’ 그의 마음이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 알게 되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렸다. 그 마음을 이해하자, 진실에 대한 권리는 피해 생존자들의 ‘그냥 알고 싶은 마음’이라 말하고 싶어졌다.

어느 날, 그와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 문득 ‘그냥 알고 싶은 마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돌아가신 철거민들을 지칭할 때, 다른 피해 생존자들은 ‘못 빠져나오신 분들’이라고 표현하는데, 그는 유독 ‘뒤에 남겨진 분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느꼈다. 얼핏 보면 비슷한 표현이어서, 크게 주목하지 못했는데 사실 그 표현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다른 피해 생존자들은 돌아가신 분들이 유독가스에 의한 질식이나 경찰에 의한 구타와 같은 망루에서 탈출할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에 반해서, 그는 자신이 탈출하는 과정에서 누군가 망루에 남겨졌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는 망루에서의 탈출 순서가 생사의 갈림길을 결정했다고 믿고 있었다. 급박하게 탈출하기 위해서 망루의 좁은 창문으로 여러 명이 몰려들었고, 몰려드는 가운데 자신들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줄을 서게 되었다고 한다. 그를 힘들게 하는 것 같아서 자세하게 물어보지 못했지만, 급박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줄을 서게 되었다는 것은 어쩌면 탈출하는 과정에서 서로 먼저 빠져나가야겠다며 격렬한 몸싸움이 있었음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자신들도 모르게 옆에 있던 동료를 밀쳤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밀쳐진 동료는 맨 뒤로 밀려나면서 줄을 서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은 추측이 아니라 사실일 것 같다. 하지만 생존 피해자들은 누구도 이러한 과정을 이야기해 준 사람은 없었다. 아니 일부러 이야기해 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너무나 힘들었던 경험이라 뇌가 스스로 지워서 진정으로 기억이 안 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불과 20초도 안 되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그렇지만 망루의 창문에서 빠져나가는 순간이 바로 죽음에서 삶의 문턱을 넘는 찰나였음은 분명하다. 결과적으로 그 문턱을 넘은 사람과 남겨진 사람들이 생겼다. 그 피해 생존자는 그 순간이 너무나 아찔하고도 선명하게 기억되고 있었으며, 그 생존의 안도감은 뒤론 남겨둔 채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이어졌다. 민망한 생존이었다. 누구도 그의 생존을 비난하지 않았지만 그 스스로 자신을 질책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탈출 순서가 앞 쪽이 아니었음을 확인하고 끝에서 몇 번째였는지 궁금했던 거다. 그는 자신이 절대적인 위기상황에서조차도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우선적으로 증명하여, 자신의 생존을 스스로 납득하고 존중할 수 있는 근거가 필요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몇 번째로 탈출했는지 대답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러한 그의 마음에 공감하는 것, 그것이 진상규명의 시작임을 시네토크 네 번째 자리에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용산참사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문> 상영이 끝난 후 미류 활동가(인권운동 사랑방)와 박래군활동가(416연대 상임위원)의 시네토크가 이어졌는데, 이 대화는 용산참사 피해 생존자의 ‘그냥 알고 싶은 마음’이 진실에 대한 권리임을 다시금 명확하게 하는 자리였다.


이날 미류 활동가는 세월호 희생학생의 어떤 형제자매는 2년이 지났는데도 원망스러운데 누구를 원망할지 알 수 없어서 자기를 원망하게 된다고 했다. 또한 세월호 피해자들은 저마다 참사를 다르게 겪고 몸에 새겨진 사건이라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더불어 세월호 참사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진실을 밝히는 것과 책임을 묻는 것은 떨어질 수 없는 문제라고 말하였다. 이에 박래군 활동가는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기억을 한다는 자체가 고통스럽기 때문에 잊고, 직면하기 어렵지만, 유가족들 세월호 유가족들과 용산 유가족들 똑같이, 참사의 그날에 시간이 멈췄다고 표현한다고 짚었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똑같이 표현한다. 늘 그것을 안고 살아가는 거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일상을 뺏기고 삶을 뺏긴 것이다.

이런 것들을 회복하려면 진실을 공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그들이 알고 싶고 밝히고 싶은 것들이 진실로 확인하는 과정까지 나아가야 하지만 그것은 무척이나 멀고 고된 일이라 했다. 만약에 이해할 수 없거나 상상하기 어려운 공포스럽고 혼란스러운 경험을 한 사람들과 그것을 겪지 않은 사람들이 서로 공감할 지점을 찾고, 또한 의혹을 말하는 사람과 그것을 듣는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면서 어떤 사건을 기억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공동체가 함께 경험하고 기억할 수 있는 역사적인 의미로서 구성되었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활동가의 말처럼, 망각세력을 압도할 정도로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함께 고민하고 진실을 밝히는 세력이 늘어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덧붙임

김일란 님은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