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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재난과 인권 ] 4.16 씨네토크, 살아남은자의 몫

블랙딜이 보여준 재난

나는 여태 운 좋게 살았다. 일생에 특별한 일 없다면 가난하게 태어나 가난히 죽을 내가, 그 숱한 자본주의가 빚은 재난들로부터 살아남은 건 오직 운 덕택이었다. 그래서 사실 부끄러웠다. 재난의 희생자가 나와 내 가족이 아님을 몰래 안도했었고, 죄 없이 스러져간 죽음들 뒤로 아무 한 일이 없다는 걸 내가 알기 때문이었다.*

2014년의 봄, 나 또한 그날을 평생 원죄처럼 품고 살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304명의 무고한 생이 바다에 가라앉으며 밀어올린 이 사회의 거대한 부패는 내 맹세의 지속을 점차 무색케 했다. 무력과 우울이 지배하는 일상에서 그날은 기억만으로 고통이 되었다. 나는 또 한 번 살아보겠다고, 망각으로 고통을 지워보려 했지만 잊을수록 밀려드는 미안함과 부채감은 나를 이도저도 못하게 만들었다.

이렇듯 막막함 속에 홀로 머물고 있을 때 우연한 계기로 [영화로 보는 재난과 인권-4.16 씨네토크]를 만났다. 그날을 함께 떠올리고 이야기하자고, 더불어 기억하며 움직이자고 말 걸어준 덕분에 영화를 경유하여 재현된 현실부터 다시금 직면해보자 마음먹었다. 씨네토크의 첫 번째 영화는 재난과 폭력의 카르텔을 다룬 <블랙딜>(BLACKDEAL, 2014)이었다.

<블랙딜>은 우리보다 앞서 교통, 수도, 교육, 전기 등 공공재 민영화를 추진한 해외 사례들을 통해 민영화가 개인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미시적으로 들여다본다. 직접 시비를 논하진 않지만 민영화 추진 과정에서 수반되는 검은 거래의 실체가 무엇이고 민영화의 진정한 수혜자가 누구인지 정부 관료, 시민, 기업가, 노동자 등의 다양한 인터뷰를 보여주며 관객들 스스로 판단하게끔 만든다.

<블랙딜>에서 내가 본 민영화의 미래는 생각보다 더욱 끔찍했다. 정부 관료들은 하나같이 민영화가 저비용 고효율 달성에 꼭 필요한 조치며 국민들에게 이득될 거라 입 모았지만 현실은 그 반대였다. 영국은 철도요금을 매년 껑충 인상시켰고 기업 사훈이 ‘돈 버는 게 제일’인 일본의 한 철도 회사는 수익이 적은 기차역을 폐쇄시켜 사람들의 이동권을 빼앗았다. 자신도 모르게 민간연금에 가입된 칠레의 노인들은 수십 년간 낸 액수에 비해 형편없는 돈으로 여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가장 경악했던 건 아르헨티나의 지하철 사고였다. 터질 듯 사람들을 태우고 출입문을 연 채 최고 속도로 내달렸던, 폐차 직전의 일본산 중고 지하철은 예견된 대형참사를 냈다. 열차와 완충기 충돌로 51명의 승객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그러나 철도 기업이 재발 방지를 목적으로 설치한 충돌방지장치는 1961년에 제작된 유물에 가까웠고 이는 결국 또 한 번의 거대 열차사고로 이어졌다. 그 후 아르헨티나 정부가 내놓은 사고방지조치라고는 역 진입 후 열차운행속도를 시속 5km로 제한하는 것뿐이었다.

이 사건으로부터 세월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터진 콩나물시루처럼 달리는 열차는 기업의 이윤을 위해 기준치 몇 배에 달하는 화물을 과적한 세월호와 닮아 있었다. 거북이처럼 느리게 움직이면 열차사고가 안 날 거라 생각한 발상은 수학여행을 금지하면 사고가 안날 거라던 정부의 대책과 비슷했다. 시늉뿐이던 열차 충돌방지장치는 20년 고물이던 세월호 구명조끼를 연상케 했다. 자본에 대한 탐욕으로 권력과 자본이 검게 결탁하며 승객의 안전을 내던져버린 두 사건은 결국 돈 없고 빽 없는 자들이 겪는 계급적 참사로 연결되었다.

영화<블랙딜>2014. 이훈규 감독작

▲ 영화<블랙딜>2014. 이훈규 감독작


영화가 끝난 뒤 마련된 씨네토크에서는 ‘땡땡책협동조합’의 손희정 선생님이 진행을 맡고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의 김혜진 선생님이 한국의 민영화 현실과 문제, 대안을 함께 나눠주셨다. 확실히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민영화를 비롯한 각종 사회 문제를 몸으로 부딪쳐 오신 분들이기에 나눠주시는 내용마다 진실한 힘이 있었고 영화를 넘어 민영화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왜 일부 사람들은 정부에서 조장하는 안전과 공포 마케팅에는 관심 갖는 반면, 세월호와 같은 거대한 슬픔은 잘 공감하지 못할까’라는 한 참여자의 질문이었다. 마침 얼마 전 종로3가를 지나다 <세월호특별법 반대서명>을 받던 할아버지가 “세월호 유가족들 10억 받았으면 됐지, 이제 그만합시다!”라고 부르짖는 외침에 어르신들이 모여드는 것을 목격했고, 왜 우리는 같은 슬픔을 공유할 수 없는지 설명이 안 되는 답답함이 내 안에 쌓여있던 차였다.

김혜진 선생님은 건강은 내 노력의 범주에서 해결 가능할 것 같은 문제지만, 거대한 재난과 같은 구조적 안전은 내 노력 밖의 영역처럼 느껴 무력해지기 쉽다고 하셨다.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을 손가락질 하는 분들 가운데 “사람이 그렇게 착할 리 없다. 사람이 돈이 아닌 사회의 안전을 위해 싸운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확신에 차 말하는 분이 계신다고 했다. 그 분들은 이 사회에서 얼마나 돈이 아닌 다른 가치와 희망을 보지 못한 채 살아오셨기에 저렇게 말씀하실까. 그리 생각하니 종로3가의 할아버지가 외쳤던 절규의 심정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재난을 피해왔던 나의 운은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른다. 지금과 같은 민영화는 우리에게 사회 불평등만을 야기하며 지금보다 더 큰 재난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운에 기대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하며 먼저 간 이들의 죽음을 헛되게만 할 것이다. 따라서 살아남은 자들은 그들의 몫으로 주어진 행동들을 함께 성실히 해나가야 할 것이라 믿는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우리들은 배제를 야기하는 모든 행위에 맞서 싸우고 사회적 합의의 기반 위에 결사와 연대를 통하여 진짜 ‘민’들에 의해 운영되는 공동체를 만들어 나간다면 좋겠다. 민중 스스로 우리의 살림과 정치에 관여하고 상호 협동하는 사회를 조직하면 좋겠다. 더불어 아픈 상처의 역사를 피하지 않고 함께 직시하면서 끊임없이 다른 세상을 상상하고 구축해나가면 좋겠다. 그것이 살아남은 우리의 몫이라 믿는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물론 나는 알고 있었다 /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 오래 살아남았다 /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덧붙임

기은환 님은 00은대학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