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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중요한 건 진심이 아니다

어느 보수정치인의 국회 연설을 듣고

[편집인 주]

세상에 너무나 크고 작은 일들이 넘쳐나지요. 그 일들을 보며 우리가 벼려야 할 인권의 가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질서와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하는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넘쳐나는 '인권' 속에서 진짜 인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누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매주 논의하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권감수성을 건드리는 소박한 글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때로는 촉촉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청탁 리스트에 청와대 전․현직 비서실장들과 총리, 새누리당 중진의원들이 대거 들어있다는 언론보도가 잇따르자 결국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현직 총리는 거짓 해명에 이어 돈을 받았다면 목숨을 내놓겠다는 으름장까지 놓고 있다. 이번 사건은 연루된 정치인들의 영향력과 규모 면에서 여느 비리 사건과 다르다. 그런데 정치인들의 비리 사건이 워낙 익숙해서인지 이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들은 사건 자체의 충격보다 재보선을 비롯한 이후 정국 주도권이 어디로 흘러갈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듯하다.

성완종 씨가 목숨을 끊기 전날(4월 8일) 국회에서 한 보수정치인이 연설을 했다. 이 연설에 새정치민주연합, 정의당 관계자들은 극찬을 쏟아냈고 한겨레, 한국일보와 같은 언론 역시 커다란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나선 새누리당 원내대표 유승민 의원의 연설이었다. 국정 전반에 대한 의견과 향후 한국 정치-경제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혁신 보수’라고 칭해도 될 만큼 광범위하고 개혁적 의지가 가득 찬 연설이었다. 집권여당이자 보수정당인 새누리당의 원내대표가 한 연설이었기 때문에 더욱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몇 일 후 터진 성완종 리스트가 보여준 한국정치, 새누리당의 현실 때문이었을까? 유승민 원내대표의 연설에 대해 그 실현가능성, 의지에 대한 의구심은 있었을지언정 그가 제시한 국정운영 방향에 대한 비판은 찾기 어려웠다. 독재와도 같은 진영논리를 넘어서 한국사회 구조개혁을 위한 합의의 정치를 하자는 그의 주장이 그리 매력적이었을까?

보수적 공동체주의자

“공동체를 지키는 것은 건전한 보수당의 책무입니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국가안보를 지키는 것이 보수의 책무이듯이, 내부의 붕괴 위험으로부터 공동체를 지키는 것도 보수의 책무입니다.”

유승민 원내대표 연설은 내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공동체를 지키는 보수의 책무에서 출발한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서, 즉 북의 공격으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싸드(THAAD) 요격미사일 배치, 북한인권법, 테러방지법 제정을 촉구한다. 그가 말한 내부의 위협은 양극화다. 한국이라는 하나의 공동체가 양극화로 인해 붕괴되어 가고 있다며, 고통받는 국민의 편에 서겠다고 한다. 빈곤층,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 장애인, 결식아동, 무의탁노인 등을 하나씩 거론하며 기득권 세력, 재벌대기업 편이 아닌 이들과 함께 하겠다고 한다. 유승민 의원의 연설이 주목받은 이유는 그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동정과 연민을 넘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그들의 처지에 주목하고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 그들과 함께 하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보수적 공동체주의는 박정희 시대부터 국가주의, 민족주의와 결합해 정치 이데올로기로 작동해왔다. 이때 공동체주의는 경제토대 건설을 위한 전국민적 동원이 절실했던 때, 효과적인 동원이데올로기로 작동했다. 그럼에도 IMF 경제위기, 급속한 시장화와 신자유주의의 혹독함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은 과거를 그리워했다. 소위 민주정부 10년 시기의 정글자본주의를 겪고, 공동체는커녕 공사 구분조차 못하는 이명박 정부까지 겪은 사람들에게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공동체를 지키는 건전한 보수의 책무는 분명 울림이 있을 듯하다. 지금까지 한국사회의 보수세력은 국민들에게 공동체에 헌신할 것을 강요하기만 했지 공동체와 그 구성원들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국정을 고민하는 직업적 정치인이라면 자연스레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은 공동체에 대한 책무조차 한국의 보수세력은 내팽개쳐왔던 것이다.

하지만 보수적 공동체주의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권리가 아니라 자격에 근거해 작동한다. 현재 국민국가체계에서 일차적인 공동체 분할선으로 기능하는 국가에 소속될 자격을 갖췄다면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게 보수적 공동체주의다. 반면에 공동체 구성원들의 보편적·시민적 권리에서 출발하지 않고, 공동체를 가로질러 형성되는 계급적·집단적 권리 증진에는 적대적이다. 유승민 의원은 비정규직, 빈곤층, 실업자, 장애인, 결식아동을 부르며 공동체 구성원인 그들과 함께 하겠다고 했지만, 이 사회구조가 잉태한 노동자, 빈민, 장애인의 집단적 권리를 옹호하진 않았다. 국정원에게 엄청난 권력을 쥐어주며 시민적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게 될 테러방지법과 타국인 북한 주민의 인권을 증진하겠다는 북한인권법 제정을 국가안보를 위해서 동시에 촉구하는 게 그의 공동체주의다. 봉합될 수 없는 정치공동체 내의 분할과 적대의 선을 ‘진영은 그 본질이 독재와 같다’며 배격한다. 사회 구성원들을 개별적·집단적 권리 주체로 보지 않기 때문에 노동시장 구조개혁과 공정한 시장경제를 한 입으로 말하는 게 가능하다.

공정한 시장경제. 단,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한다면

경제학 박사답게 유승민 의원은 향후 경제를 쉽사리 낙관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대로 가면 2100년까지 한국 경제는 성장하지 못할 거라고 한다. 경기변동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노동, 자본, 기술이라는 세 가지 요소의 구조적인 문제, 경제의 기본토대에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란다.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면, 기업이 돈을 많이 벌지 못하면 국가적 대재앙이 닥칠 거라며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가만 돌아보면 한국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그 과실을 골고루 나눠 먹을 수 있었던 때가 언제였나 싶다. 유승민 의원은 경제성장을 못 하면 대재앙이 오고 모두가 힘들어질 거라고 협박하지만, 경기가 나빠지고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들은 힘들어지고 내일을 계획할 수 없는 생존의 나날을 보낸 지 오래다. 3저 호황(저금리, 저유가, 저환율)에 힘입어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잠깐 지속된 경기호황이 있었고 그마저도 격렬한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자본가들로부터 그 과실의 일부를 얻어낼 수 있었을 뿐이었다. 한국 경제의 펀더멘탈(기본토대) 운운하며 구조개혁을 요구하는 건 97년 IMF 위기 이후 반복되어왔다. 20여 년째 그 어느 사회보다 강도 높은 구조개혁을 해 온 사람들에게 이대로는 향후 100년 동안 나아질 게 없으니 더 고통을 감내하라는 건 너무 염치없는 행위다. 염치없는 행위라는 걸 유승민 의원은 느꼈던 걸까? 경제가 성장하면 모두에게 좋을 거라는 게 지난 20여 년 동안 거짓으로 드러났으니 이제는 공정하게 고통을 분담하자고 한다. 경제가 안 좋아지면 모두에게 재앙이 닥칠 테니 어쩔 수 없다며.

짐짓 공동체주의자의 면모를 보였던 유승민 의원도 사람을 권리주체로 보지 않고 장부상의 노동비용으로 간주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앞에서는 매한가지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가 생각하는 공동체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북한과 같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노동자 계급과 같은 내부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지는 것이다. 공정한 고통분담이니 공정한 시장경제니 하는 말들은 결국 불황기에 자본의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노동착취와 과잉생산의 경제 작동 메커니즘을 안정적으로 유지 관리해 나가기 위한 ‘기업가가 아닌 정치인’으로서의 책무를 달리 표현한 것이다. 아무리 한국 정치의 현실이 답답하다고 할지라도 유승민에게 고개를 끄덕이는 건 위험한 일이다.
덧붙임

정록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