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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누가 에이즈 확산을 부추기는가

지난 26일 국가인권위는 보건복지부의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일부개정법률안(아래 에이즈예방법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표명했다. 통제 중심의 정책으로 감염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사회적인 차별과 낙인을 조장해오면서 정작 에이즈 확산은 막지 못해온 한국 에이즈정책의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 그 내용이다. 국가인권위의 의견표명은 국회와 보건복지부 등 국가기관에 대한 권고를 넘어서, 에이즈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해소하고 정확한 정보와 지식에 근거한 합리적인 정책논의를 통해 에이즈를 예방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의 권고안에 대해, 일부 언론은 사라져야할 편견과 오해를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 “에이즈 확산 방치해 국민 생명권 침해할 건가”라고 묻는가 하면, “국민건강권 외면한” 대책이라고 일축하고 성매매여성에 대한 강제검진의무 폐지를 선정적으로 다루며 권고안의 근본적인 취지를 묻어버리고 있다. HIV 감염인을 ‘걸어다니는 시한폭탄’으로 묘사하는 등 감염인을 숨죽이게 했던 폭력을 휘둘러온 언론은, 여전히 감염인 인권증진이 에이즈를 확산시킬 것이며 국민건강권을 침해할 것이라는 또다른 편견을 퍼뜨리고 있다.

1997년 유엔인권위원회는 전문가회의를 거쳐 「HIV/AIDS와 인권에 관한 국제 가이드라인」을 각국 에이즈정책의 지침으로 제시했다. 또한 많은 국가들이 에이즈 확산 초기에 시행되었던 감시와 통제 위주의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합리적 인식에 근거한 치료와 지원, 인권 보장을 통한 예방 정책으로 전환해왔다. 2004년 아시아·태평양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이 발표한 「HIV/AIDS 인권권고안」 역시 △검사의 익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강제검사를 금지할 것 △감염인 이주노동자를 강제 출국시키는 것을 금지할 것 △성 산업 종사자에 대한 탄압을 중지할 것 등을 각국 정부에 촉구한 바 있다.

국가인권위 권고안은 10년 전에 나와야 할 것이 뒤늦게 나온 것일 뿐이다. 작년 보건복지부가 에이즈예방법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시대의 흐름을 외면할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의 에이즈예방법개정안은 낡은 틀을 그대로 둔 채 선진적인 에이즈정책들을 쫓아가는 시늉만 한 개정안이었다. 한국의 에이즈예방법이 세계적으로 드문 감시와 통제조항들을 두고 있으면서도 정작 HIV 감염률의 증가에는 손을 쓰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던 이유를 지금이라도 직시해야 한다. 강제검진을 통해 전염이 예방된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단지 근거 없는 안도감만 있을 뿐이다. 문제는 바로 그 근거 없는 안도감 때문에 실질적으로 에이즈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들이 등한시되어왔다는 점이다.

감염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함으로써 전염을 막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환상일 뿐이다. HIV의 전염은 이미 감염사실을 확인한 사람을 통해서가 아니라 아직 감염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자발적 검사를 시도하지 않도록 만드는 편견 때문에 발생한다. 심지어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실명보고제도는 법률에도 근거하지도 않은 위헌, 위법한 행정절차였다. 인권위 권고안이 이상에 머물러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언론의 비난과 현행 에이즈예방법이 오히려 환상 속에 갇혀있는 꼴이다.

HIV 감염인을 사회로부터 추방할 권리에 ‘건강권’이라는 이름을 갖다붙이지 말라. 만약 ‘국민건강권’이 실질적인 에이즈예방을 통해 우리 모두가 각자의 건강을 지킬 권리라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일부 언론들은 환상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에이즈를 확산시키는 것은 ‘편견’과 ‘차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