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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자리, 수동연세요양병원] 에이즈 유행은 끝나지 않았다.

[편집인 주]

2010년 복지부 장관이 위탁한 ‘중증/정신질환 에이즈환자 장기요양사업’을 수행해온 수동연세요양병원에서 심각한 인권침해와 치료방치가 발생하였다. 수동연세요양병원의 문제는 에이즈에 대한 공포와 낙인에서 기인하기도 하며, 요양서비스가 있어야 하는 주체는 배제한 채 이들의 열악한 처지를 요양서비스제공자가 악용하는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는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 인권오름과 프레시안에서는 이 문제에 맞서 싸워가고 있는 활동가들과 함께 ‘중증/정신질환 에이즈환자 장기요양사업’의 다양한 문제와 맥락을 살펴보고자 기획연재 한다.

우리사회가 적어도 조금씩 발전해 왔다는 막연한 기대에 대해 세월호 사건이 던진 충격에야 미치지 못하겠지만, 수동연세요양병원에서 일어났던 에이즈환자에 대한 인권유린과 차별사건은 에이즈 문제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당혹감에 빠뜨렸다.

1985년 국내에서 첫 HIV감염인이 보고 된지 30년이 흘렀고, 그간 다양한 치료제가 개발되면서 에이즈는 관리되는 만성질환이 된 상태이다. 그래서 초기에 에이즈라는 질병자체에 대해 느꼈던 무조건적인 공포는 어느 정도 사그라졌다고 많은 사람들이 느낀다. 1990년대 중반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이하 에이즈예방법)에 예방 및 홍보를 위한 지원조항을 삽입하고, 에이즈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해소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적 선언이 있은 지도 20여년이 지났다.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가 HIV감염인 인권을 주창해온지도 10년이 넘었다. 그래서 이 시점에 HIV감염인은 그저 “수용”해주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지경인 이 현실을 인정하기 쉽지 않다.

에이즈가 ‘죽을병’이 아니고, 국가에이즈관리사업의 비전과 목표도 “HIV감염인 진료비 지원, 일자리 창출, 요양쉼터 운영 등으로 HIV감염인의 삶의 질 향상”을 중요한 한 축으로 삼고 있는 현재 우리가 처한 당혹감의 정체는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하필 병원장이 돈에 눈이 먼 괴상한 종교인이어서 발생한 일일까?

에이즈 정책, 옷은 갈아입었다

우리나라에서 에이즈와 관련된 최초의 정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1987년 제정된 에이즈예방법이다. 88올림픽을 앞두고 에이즈가 확산될 것이라는 막연하지만 강력한 공포와 시대상황이 맞물려 탄생한 이 법은 당시 수십 명에 불과했던 HIV감염인을 대상으로 초헌법적인 인권침해를 가능하게 했다.

‘강제처분’이라는 이름의 조항은 HIV감염인이 사는 곳에 무단으로 들어가서 강제로 격리시킬 수 있도록 하였고, 거주이전 및 직업선택도 극도로 제한하였으며, ‘전파매개행위금지’라는 명목으로 사생활을 감시하고 처벌하였다. 소위 “고위험군”에 대한 강제적 검진이 마치 HIV에 취약한 집단에 대한 국가의 시혜라도 되는 양 남용되었다. HIV감염인은 수시로 드나드는 보건소 공무원 때문에 감염사실을 가족과 이웃에게 들킬까봐 삶이 터전을 등지고 타지로 나가서 숨어살았다. 그 시절을 지나온 HIV감염인은 그야말로 ‘죄인’취급이었다고 기억한다.

이 법의 각종 인권침해적 요소들은 후에 에이즈를 예방하는데 거의 효과가 없고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회가 에이즈를 대하는 방식을 상당기간 고착시키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격리”와 “처벌”, 그리고 “감시”라는 에이즈에 대한 국가의 히스테릭한 반응은 집행하는 공무원 및 일반 국민들에게 HIV감염인에 대한 폭력적 대응을 당연한 것으로 조장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도 공중파 방송에서 에이즈를 “천형”에 빗대기도 했다.

1995년 에이즈예방법을 개정하면서, 정부는 대국민 홍보와 HIV감염인 지원사업을 에이즈 관련 민간단체에게 위탁하는 근거를 마련하였다. 처음에 홍보는 그 이전의 분위기를 그대로 답습하면서 에이즈에 대한 대국민적 “경각심”을 고취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에이즈교육 강사로 나섰던 HIV감염인은 학생들에게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대상으로 자신을 드러내었다. 예방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국제사회의 분위기가 국내에도 반영되면서 공중파 방송이나 일간지 등의 대중매체를 이용한 홍보가 2004년부터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콘돔”을 도구로 하는 “safe sex(안전한 성관계)”가 예방을 위한 중요한 행태로 강조되었고, 동성애자 대상 예방사업이 시작되었다.

2008년에 에이즈예방법은 또 한 번 주목할 만한 개정이 이뤄진다. 국제사회의 압력과 국내 에이즈인권운동의 활성화에 따라 강제적인 조치들을 다소 없애고 지원과 보호로 에이즈 정책의 방향을 천명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수동연세요양병원 사태를 맞았고 에이즈환자들은 가장 일차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병원에서 거부당하고 갈 곳이 없다.

무시되었던 가장 치명적인 유행

WHO(세계보건기구)의 에이즈 글로벌 프로그램을 책임졌던 조나단 만(Jonathan Mann)은 1987년에 어느 사회에나 에이즈 유행에는 3개의 단계가 있다고 했다. 첫 번째 단계는 HIV감염의 유행이다. 두 번째는 HIV감염으로 발생하는 에이즈자체의 유행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강조했던 가장 폭발적인 유행은 바로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반응의 유행이다. 이 단계는 높은 수준의 낙인과 차별, 그리고 사회의 집단적 거부라는 특징을 가진다고 하면서, 그는 이것이야 말로 질병으로서의 에이즈가 전 세계에 던진 가장 핵심적 도전이라고 한바 있다.

HIV감염인들은 2010년대에 들어선 지금도 다른 환자와는 달리 병원이나 의사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의사들은 환자를 떠넘기고, 환자의 프라이버시인 감염사실을 동료의사에게 알려주는 것이 의리 있는 행위처럼 주장되었다. 그래서 여전히 HIV감염인은 감염사실이 알려지면 ‘사회적 죽음’을 맞이한다. 우리나라에서 에이즈 역사에 나타났던 정책방향이 크게 후퇴된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도 여전히 HIV감염인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면, 우리사회가 아마 세 번째 단계의 에이즈 유행, 즉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수준에서의 집단적 거부를 전혀 치료하지도 예방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경고일 것이다.

HIV감염인 인권과 권위주의적 정책결정의 패러독스

에이즈예방법과 정부가 표방한 정책안에서 “격리”와 “감시”가 슬그머니 사라지고 “차별해소”와 “감염인 보호”라는 화려한 수사가 넘쳐나는 와중에도 HIV감염인과 그들의 목소리는 철저히 무시되어 왔다. 정책이 결정되고 시행되는 과정에서 정작 인권의 담지자이자 “보호”의 대상인 이들은 권위주의적 정책실행과정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었고 그 결과는 교묘하며 교란적이고 파괴적이었다.

수동연세요양병원의 경우에서도 질병관리본부에서 위촉한 모니터단이 있었지만 모니터단 활동에 자율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HIV감염인의 시선과 견해는 존중되기 보다는 권위 있는 사람들의 합리적인 판단을 모욕하고 반대하는 사람들로 비춰지기 십상이었다. 권한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느낀 모욕감은 그들의 동료들로부터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HIV감염인의 절박함은 막무가내의 무식으로 읽히고 있었다. 따라서 목소리를 내고 정책에 개입하려고 하는 행동에 대해 권력 있는 사람들은 괘씸죄를 적용하여 예산을 줄이고 기존의 ‘배려’조차 회수해갔다.

HIV감염인이 쉼터의 환경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질병관리본부에 항의하는 단체행동을 하자, 기존에 정부가 지원하던 다수 쉼터를 폐쇄해 버렸다. HIV감염인들이 재가지원을 확대하고 간병사업을 좀 더 활성화 할 것을 주장해왔고, 진료비를 지체 없이 지원할 것을 요구했지만, HIV감염인의 자활의지를 높인다는 명목으로, 만성질환이 되었다는 명목으로 언제 지원을 없앨지 불안하다. 심지어 작년 세계에이즈의 날 기념식은 HIV감염인들의 수동연세요양병원 사건관련 ‘피켓시위 등’으로 시민안전이 우려된다며 기념행사를 하루 앞두고 취소해 버리기까지 했다. 이러한 상황이 되풀이되면서 HIV감염인은 목소리를 내는데 자신이 없어졌고, 활동가들도 위축되었다. 옳은 일이라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불리한 상황으로 귀결되면 이것이 아무리 궁극적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할지라도 엄청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시장경제적 효율성이라는 괴물

우리사회의 정치적 보수화는 시장경제의 신봉을 요청한다. 산업정책과 경제부양이 공공정책의 핵심이 되고 그에 부담을 주는 것은 규제며, 적폐며, 사회악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특별히 취약한 정책대상에 대한 특별한 고려는 기대하기 어렵다. 이들에 대한 정책은 사회가 지향하고 추구하는 가치로서가 아니라, 이미 자리를 차지한 가치들에서 아주 예외적인 “배려”에 불과할 뿐이다. 더군다나 현재 우리나라의 HIV감염인은 1만명 미만으로, 에이즈는 환자가 2만명 미만일 경우로 정의되는 “희귀질환”에 속한다. 즉, HIV감염인은 말 그대로 ‘소수자’이다. 게다가 이들은 차별과 편견의 시각에 노출되어 사회적으로 지지를 받기가 어렵다. 약이 있지만 HIV감염인이 약을 먹지 않거나 병원에 가기를 꺼려 기회감염으로 상태가 악화되는 것도 상당부분 이런 사회적 혐오와 편견과 관련되어 있다. 소수는 항상 정책효율성이라는 원칙에서 다루기 곤란한 문제가 된다. 편견과 혐오는 이들에 대한 보호와 지원정책의 정당성을 약화시킨다.

“배제와 차별의 유행”, 어떻게 끝낼 것인가?

우리나라의 에이즈 정책은 그래서 수사적 차원에서의 변신에는 성공했지만, 그 성공으로 인해 차별과 사회적 배제의 유행을 확산시켜왔다.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에이즈 유행의 바다에서 HIV감염인과 더불어 사회전체의 건강성마저도 함께 침몰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에이즈정책의 특징은 다른 선진사회에 비해 초반부터 ‘의료’중심의 접근이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에이즈치료제가 등장한 시점부터 적어도 정책적으로 에이즈치료제에 대한 접근은 보장되었다. 이러한 치료적 “시혜”는 다른 모순들을 효과적으로 은폐해왔다. 수동연세요양병원 사건을 비롯한 HIV감염인의 의료적 접근권의 실태는 근본적이고 파괴적인 유행을 대응하지 못하고 맞이한 현실의 단면일 뿐이다. HIV감염인은 적어도 이것만은 보장받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바로 그 지점에서조차 내쫓겨졌다.

그러나 희망이 있다면, 우리는 이제 그 문제의 파괴성을 발견하고, 그래서 그것을 해결하는 길의 초입에 서있다는 점이다. 먼저 그 파괴적 힘에 휘둘리지 않도록 우리내부의 사슬로 우리를 먼저 단단히 묶어야 할 때다. 결국은 우리 삶에 본질적으로 필요한 가치들은 우리 스스로의 욕구 안에서 다시 찾아내고 확립해야 한다. 적어도 의료가 우리의 삶에 복무하도록 해야 한다. 국가의 GDP확대가 아니라 우리가 번영하고 우리의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자선과 동정, 그리고 배려가 아니라 우리의 공공선에 도달하는 확실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동연세요양병원 사건을 고발한 후, HIV감염인이 1200개가 넘는 요양병원중에 갈 곳이 단 한곳도 없는 상황이지만 HIV감염인의 증언과 고발은 세 번째 에이즈유행에 맞설 유일한 ‘희망’이다.
덧붙임

변진옥 님은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