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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요의 인권이야기] 12월 1일 함께 ‘귀한 목숨’을 실천하자.

2014년 12월 1일 HIV/AIDS 감염인 인권의 날을 맞아.

12월 1일은 세계 에이즈의 날이자 HIV/에이즈 감염인 인권의 날이다. 인터넷에 살짝 검색해보니 세계 에이즈의 날은 1995년도에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지정했단다. 목적은 에이즈의 확산 위험성을 경각시키기 위해서라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즈음 나도 에이즈를 암보다 더 무서운 질병으로 막연한 공포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지금은 어찌어찌 하다 보니 지난여름부터<에이즈환자 건강권보장과 국립요양병원마련 대책위원회>에도 같이하고 있다. 사실 같이한다고 하기에도 부끄러럽다. 익숙하지 않은 용어들이 난무하는 회의에 참석하는 것에 헉헉거리며 앉아있는 것을 의의로 두고 있다.

어찌됐든 HIV/에이즈 감염인 관련한 이슈를 접하게 된 것은 아마 윤가브리엘님의 사진전에 갔다가 <하늘을 듣는다>를 구매하여 읽게 되었을 때로 기억한다. 지방에서 공익근무를 하고 있을 때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 서울을 올라왔다. 그 친구의 제안으로 인사동의 갤러리라고 불리는 공간 자체를 난생 처음 갔다. 나는 신기한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니 ‘헬로우 가브리엘’이란 사진전의 이름이 보였다. 나에겐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모델인 사진전을 왜 보자고 한 것일까? 라고 생각하며 천천히 구경했다. 그렇게 사진을 보고 나올 때 모델 윤가브리엘님이 출구 쪽에 서 있었다. 친구는 이미 윤가브리엘님과 인연이 있었는지 반갑게 인사를 하고 나에게 인사를 시켜주며 <하늘을 듣는다>라는 책을 적극적으로 구매하길 권유했다. 사실 아무 생각 없었는데 사진전의 모델이자 책의 저자가 눈앞에 있는 상황에서 권유를 하니 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저자의 사인을 받았다는 위안으로 구매한 <하늘을 듣는다>의 표지를 보니 그때야 ‘한 에이즈인권활동가의 삶과 노래’라는 문구가 보였다. 가끔 말로는 ‘누군가’에 대해서 차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당당히 이야기 하지만 실제로 ‘누군가’를 마주칠 때 어색함?같은 감정이 생긴다. 더듬어보면 그때도 딱 그런 느낌이었다. 처음 HIV/에이즈 감염인 당사자와 마주한 그 어색함이 나에게 참 싫었다. 마치 시험에 빠진 사람처럼 ‘왜 그런 어색함을 느꼈을까?’ 괜스레 그 상황을 복기하고 자기 검열하게 되는 것이다. 어색함을 떨치고 싶어서인지 <하늘을 듣는다>는 정말 빠르게 그리고 열심히 읽었었다. 어떤 영역이든 활동가의 이야기라는 책은 좀처럼 재미없게 느껴지기 마련인데 이 책은 정말 휘리릭 읽었다. 얇은 책 안에서 생판 모르는 한 사람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정말 세계의 지평이 넓혀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한영애의 노래도 열심히 듣게 만든 책이다.(왜인지는 직접 읽고 확인해보시라) 나와 상관없다고 느껴지던 HIV감염인 문제가 그렇게 작은 연결고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13년 대한문 앞에서 꾸준히 이어가던 을들의 이어말하기에서 또 다시 HIV감염인의 인권을 마주했다. 지금도 내가 같이 하고 있는 <에이즈환자 건강권보장과 국립요양병원마련 대책위원회>를 만들게 만든 바로 그 수동연세요양병원의 문제를 접한 것이다. 여전히 이름을 밝힐 수 없어 이제는 ‘김무명’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수동연세요양병원에 입원된 한 환자는 온갖 차별과 치료의 소홀 속에서 혼자 죽어갔다. 그 죽음은 전국에 난립하는 요양병원 중 유일한 에이즈환자 장기요양사업을 해온 수동연세요양병원의 문제점을 폭로시켰다. 비위생적 시설관리부터 구타, 성폭력, 심지어 남는 반찬을 에이즈환자 병동에 제공하는 등 상상하기 어려운 운영이 이루어지던 그 병원은 이 폭로로 결국 에이즈환자 장기요양사업을 하는 병원의 자격에서 박탈되었다. 하지만 병원의 자격이 박탈되었다고,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이후 복지부나 질병관리본부의 후속 대책은 전무했다. 몇몇 병상을 다른 병원에 급하게 마련하여 환자들을 옮기긴 했지만 턱없이 부족해 1년이 지난 지금도 일부 환자들은 바로 그 수동연세요양병원에 남았다. 거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병원으로도 옮기지 못하는 환자들은 아무런 대책 없이 퇴원하여 전혀 조치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앞서 말했듯 윤가브리엘님을 처음 마주하였을 때 에이즈환자의 인권문제는 ‘내가 놓치고 있는, 어색함이 있는’ 문제를 조금의 연결고리로 이어준 나의 사건이었다. 하지만 수동연세요양병원의 문제를 마주하였을 때는 다른 느낌이었다. 지난 6월 인권오름에 연재된 ‘귀한 목숨이고 싶다’는 윤가브리엘님과 손문수님의 기사를 통해서도 헤아리기 어려운 마음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 했다. ‘인간의 목숨은 귀하다’는 명제가 선명해 보이는 것은 나의 안일함의 증명이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인간의 목숨은 귀한데 그 귀한 목숨을 함부로 대하는 나쁜 자본, 시설, 구조 등등 이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귀한 목숨이고 싶은 사람임을 스스로 드러내야 하는 이들에게 내가 선명하게 전제한 목숨이 귀하다는 말은 얼마나 의미 없을지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다. 귀하다는 것은 내가 말함으로 귀해지는 것이 아니라 귀하게 대해야 귀한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세월호도 그랬고 쌍용자동차도 그랬다. 이주민도 아파트 경비원 비정규직 노동자도 말할 수 없이 많은 이들이 그랬다. 모두 귀한 목숨이고 싶다.

어떻게 귀한 목숨이고 싶은 마음에 응답 할 수 있을까? 이 글의 맨 첫 문장으로 다시 돌아가봐야겠다. 12월 1일은 세계 에이즈의 날이자 HIV/에이즈 감염인 인권의 날이다. 그런데 HIV/에이즈 감염인 인권의 날은 2006년 HIV/에이즈 감염인을 배제하는 기만적인 세계 에이즈의 날을 비판한다. 그리고 에이즈 인권의 현실을 알리고 감염인이 주체가 되고자 하는 목소리를 외치는 날이다. HIV/에이즈 감염인 인권의 날은 다시 한 번 감염인들이 귀하고 싶은 목숨임을 드러내는 날이다. 그럼 결국 내가 응답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귀한 목숨’을 방치시키지 않은 것, 그것은 귀한 목숨을 귀하게 대하는 일이다. 방치된 자리에서 외로운 죽음을 기다리고 있지 않도록 12월 1일 복지부 장관을 응답시키는 일도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전날인 11월 30일 보신각에서 열리는 문화제에 참석하고 함께 인간 레드리본을 만드는 것도, ‘이윤보다 인간을 존중하는 국립요양병원을 마련하라’는 피켓으로 인증샷 찍는 것도 우리가 외롭지 않은 존재로서 서로를 확인하는 계기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인권은 존중 받길 원한다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지금 우리에겐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를 마주하는 자리로 나아가는 계기들을 만드는 일이 가장 필요 할지도 모른다.
덧붙임

디요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