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누구에게 말할 것인지는 내가 결정할 문제라구요!

[공동기획] 강요된 침묵, 이제 감염인의 목소리를 들어라 ③

지난 10월 11일 보건복지부는 법정전염병 병력자 정보를 대한 적십자사에 제공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정부가 HIV/AIDS 감염인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불감증이 얼마나 심한지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감염사실에 대한 정보제공 말고도 감염인들은 일상생활에서 수시로 타인에 의해 감염사실이 노출될 위험에 직면해 있다. 병력을 비롯한 개인 정보는 침해받지 말아야 할 '인권'의 범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HIV/AIDS 감염인 인권에 대한 현 주소를 되짚어 보고, 감염인 프라이버시의 문제점에 대하여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K씨의 운수 좋은(?) 날들 : "이 사람, 에이즈예요...."

K씨는 보건소에서 HIV에 감염되었다는 통보를 받은 후 역학조사를 받기 위하여 보건소 직원과 시간약속을 하였다. 그러나 K씨가 바쁜 직장생활로 약속을 미루자 보건소 직원은 K씨가 직장을 간 사이에 K씨 집에 방문하여 가족들에게 K씨와 연락이 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하였다. 가족들은 당황하며 K씨에게 무슨 질병에 걸렸기에 보건소에서 찾아오느냐고 물어 보았고, 동네 사람들의 이상하게 쳐다보는 시선을 한동안 느껴야만 했다.

며칠 후 연락이 된 K씨는 역학조사 상담을 위하여 보건소에 찾아 갔다가 또 다시 수치심을 느끼게 되었다. 학력, 직업, 가족관계 등 개인 신상 정보는 물론이거니와, 개인의 사생활에 포함되는 성정체성과 성 행태에 대하여 자세하게 조사받았으며, 심지어는 자신과 성관계를 맺었던 모든 사람의 연락처를 기재하라는 지시까지 받게 되었다. K씨는 "내가 질병에 걸린 환자인지, 범죄를 저지른 죄인인지 분간이 안 갑니다."라고 말하면서 상당히 수치스럽다고 하였다.

K씨는 HIV로 인해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라, 무리를 할 경우 다른 바이러스 질환에도 잘 걸릴 수 있는 상태였다. 대상포진이라는 바이러스 질환에 걸려 서울 한 병원에 입원하게 됐을 때, 그는 자기 침대 아래에 빨간색 글씨로 'HIV 감염자 주의요망'라고 표기된 것을 보고 아연실색 했다. 병문안 온 모든 사람들이 K씨의 감염사실을 다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K씨는 고열로 시달려 K병원 응급실로 이동한 후, 병원 직원에게 HIV감염 사실을 밝혔다. 그러자 그 직원은 큰소리로 "여기 HIV감염인 인데, 주의해 주세요."라고 외쳤다. 응급실에 있는 모든 의료진은 물론 모든 환자들이 K씨 얼굴을 쳐다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감염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병력정보는 그/그녀의 프라이버시

HIV/AIDS를 비롯한 개인의 질병이나 건강상태와 관련된 정보에 대한 비밀유지는 모든 사람의 공통된 권리이다. 이것은 프라이버시권에 기초하고 있는데, 프라이버시권은 국제인권규약과 각국 헌법에 의해 보호되는 국민의 기본권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 17조에서는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에서 말하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의 내용으로는 사생활의 비밀의 불가침, 사생활 내용의 불가침, 자기정보관리통제권 등이 포함된다.

이와 같이 개인정보에 대한 통제와 프라이버시권이 모든 국민의 권리이고 따라서 자신의 질병이나 건강상태에 대한 정보를 비밀로 유지하는 것도 보호되어야 하지만, 모든 권리가 무제한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국가는 공익을 이유로 해서 이러한 권리에 제한을 가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우리가 문제 삼을 것은, 전염병의 감시와 예방을 위해 개인의 사적인 정보에 대한 권리가 일정 침해된다고 할 때 그것이 목적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한 목적과 필요를 넘어서는 과도한 정보는 그 비밀의 유지는 물론 그러한 정보의 수집 자체가 중대한 인권의 침해가 된다.

질병에 걸린 사실을 다른 사람이 알게 되는 경우에 그 사람이 처한 어려움에 대해 더 이해받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공식적 혹은 비공식적인 차별과 거부를 불러일으킬 수 도 있다. 이것은 HIV/AIDS와 같이 치명적 낙인이 있는 질환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앞서 K씨의 사례는 감염인들이 일상사에서 겪는 정보노출을 상황별로 구성한 것이다. 언급한 것처럼 HIV에 감염되거나 AIDS에 걸리게 된 상황이 알려지게 되는 경우 많은 사람들은 그로인해 상당한 고통을 겪게 된다. 안정된 주거, 직장과 같이 기본적 생활의 기반이 무너지는 것은 물론이고, 가장 보호받아야 할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치료에서의 차별을 겪기도 한다. 심지어 가족과 이별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모든 문제들이 질병 자체로부터가 아니라 질병상태의 노출에 의해 발생한다.

따라서 HIV감염인과 AIDS환자들에게 있어 자신의 감염상태를 누구에게, 언제, 어느 정도로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이 감염인 본인의 의사에 의해 결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본인 이외에 감염사실을 알고 있는 그 누구도 이러한 사실을 본인의 동의 없이 다른 사람에게 발설해서는 안 된다.

전자를 감염인의 자기정보에 대한 통제권이라 한다면 후자는 비밀유지의 의무로서 부여된다. 기본적 인권으로서 보호되어야 하는 이러한 권리와 의무는 감염인들의 삶에 있어서 존엄을 유지하고 더 나아가 개인과 사회에 있어 HIV/AIDS가 주는 영향과 HIV전파를 감소시키는 공중보건목표를 더 잘 달성할 수 있도록 해준다. 왜냐하면 이러한 질병과 건강에 대한 정보의 강력한 보호가 없다면 사람들은 HIV검사를 받지 않을 것이고, 감염인과 환자들이 지속적으로 상담과 치료를 계속하는 동안 관련자들(의사, 간호사, 보건소 직원 등)에게 자신에 대해 이야기 하는 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HIV/AIDS의 전파를 방지하는데 있어 감염인과 환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비밀보호와 개인정보에 대한 통제권의 확보는 가장 기본적이고 효과적인 정책이 될 수 있다.


실질적 보장을 위해 필요한 장치들: 자발적 익명검사, 그리고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동의(informed consent)

감염인과 환자들의 이러한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기 위해서는 헌법과 법에서의 권리와 의무의 명시화뿐만 아니라 더 구체적인 법적 혹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특히 자발적인 익명검사와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동의(informed consent)가 중요하게 다루어 져야 한다. 자발적 검사는 누구도 강제적으로 검사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익명검사는 자신의 HIV감염사실을 타인이 알 수 없도록 원천적으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informed consent'는 감염사실을 알고 있는 의료인이나 다른 누군가가 제 3자에게 감실을 보고할 때는 반드시 감염인 본인의 동의하에서만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알려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환자가 그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동의한 상태에서만 고지될 수 있고, 궁극적 판단이 의료인이나 관련 행정종사자가 아니라 환자본인에게 달려 있어야 한다.

HIV/AIDS에 대한 오해와 진실!!

1. HIV/AIDS에 감염되면 바로 죽나요? No!! 그렇지 않습니다.

최근 칵테일 요법 등 에이즈 치료법의 향상으로 에이즈 사망률이 과거보다 현저하게 감소하였습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적절한 치료와 투약으로 RNA의 수를 낮게 유지하여 에이즈로의 진행을 지연시킨다면 에이즈로 진행되지 않은 상태로 자기의 수명을 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에이즈는 불치병이라기보다는 만성 질환의 하나로 여겨지고 나아가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까지 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2. HIV 감염인을 겉모습으로 알아볼 수 있나요? No!! 그렇지 않습니다.

HIV 감염인을 겉모습으로 알아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HIV에 감염된 사람이 어떠한 증상을 보이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HIV에 감염된 사람의 외형적인 증상으로 이를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3. HIV 감염되었어도 학교에 가거나 직업에 종사할 수 있나요? Yes!! 할 수 있습니다.

HIV감염 후에도 학교에서 공부하거나, 회사 등의 근무는 가능합니다. 에이즈 관련 증후군에 노출된다거나, 에이즈로 발병하거나, 자택치료나 입원이 필요하지 않는 한,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과 거의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종전생활을 그대로 계속할 수 있습니다. 또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종전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HIV/AIDS는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환입니다. 특수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성적 소수자만이 걸리는 질환이 아닙니다. 에이즈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갖추는 것, 에이즈 감염인과 친구가 된다면 에이즈에 자유로울 수 있으며, 모든 편견과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습니다.
덧붙임

강석주 님은 한국감염인연대(KANOS) 사무국장으로, 변진옥 님은 'HIV/AIDS 인권모임 나누리+'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