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이야기

‘무명’이라는 이름

수동연세요양병원 대책위에 참여하며

지난 6월부터 인권 오름을 통해서도 꾸준하게 소개 되었던 수동연세요양병원 사태에 대응해온 ‘에이즈환자 건강권 보장과 국립 요양병원 마련을 위한 대책위원회 회의’에 사랑방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수동연세요양병원은 2011년부터 인권침해 문제가 드러났지만 HIV/AIDS 감염인이 입원할 수 있는 전국 유일의 병원이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제대로 처벌받지도 않았고,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던 병원입니다. 2010년 복지부 장관이 위탁한 ‘중증/정신질환 에이즈환자 장기요양사업’을 수행해온 단 하나의 병원이었던 것이지요. 결국 작년 8월에는 입원해있던 김○○씨가 호흡곤란증세 때문에 큰 병원으로 이송해달라는 이야기를 하였지만 이를 묵살하다가 이틀 만에 환자가 사망한 사건까지 발생하였습니다. 더 이상 인권 유린의 현장에 HIV감염인들을 방치할 수 없었기에 대응 활동을 시작했고 증언대회를 열었습니다. 이로 인해 수동연세요양병원의 구타, 성폭력, 감시는 물론 비위생적인 시설관리와 다른 병동의 남은 반찬을 HIV감염인들에게 제공해온 사실들이 폭로되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은 실로 절망스러웠습니다. 질병관리본부는 이미 수동연세요양병원이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방관으로 일관하다 언론에 알려지고 나서야 뒤늦게 수동연세요양병원의 위탁계약을 해지한 것입니다. 이것도 모자라 질병관리본부의 대책 속에서 전제되어야 마땅한 새로운 요양병원에 대한 그림은 찾아 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저 문제가 발생했으니 계약만 해지하겠다는 것은 실제로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다는 말과 같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HIV감염인에 대한 차별과 배제는 사회적인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친구들, 가족들에게도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AIDS가 한국에서 처음 발병했을 때나 지금이나 자신들의 정체성은커녕 존재조차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요양병원은 HIV감염인들의 최후의 보루인 곳입니다. 그 최후의 보루를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저 없애버리기만 한다는 것은 정부가 자신들의 시야에서 감염인들의 인권현실을 방치하고 삭제하겠다는 것이겠죠.

 

그래서 지난 8월 21일 고 김○○씨의 1주기 추모제를 보건복지부장관 집무실 앞에서 하고 왔습니다. 죽어서도 이름조차 제대로 불리지 못하는 고 김○○씨를 우리는 ‘김무명’이라 호명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명’으로 대변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안타까움에 많은 분들이 눈물 흘렸습니다. 그렇지만 울고만 있을 수 없는 또 다른 현실은 아직도 그 인권유린의 현장 속에 남아있는 환자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50여명의 HIV감염인을 입원시킬 수 있는 병원하나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던 정부는 여전히 감염인들의 인권을 ‘위탁’을 통해서 회피하려고만 합니다. 수동연세요양병원의 위탁해지가 벌써 위탁되어온 요양병원들 중 세 번째 해지라는 사실로는 저들에게 아무런 교훈을 주지 못하나 봅니다. 특히 최근 사설 요양병원들의 문제가 우후죽순처럼 드러나는 현실을 바라보며 이제는 책임을 지고 나서야 할 곳이 어디인지 더욱 분명해 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HIV감염인의 건강권을 보장할 수 있는 ‘국립 요양병원’을 마련할 것을 외치고 왔습니다.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여전히 민간의 영역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질병관리본부와 보건복지부를 비판하고, 구체적인 국가 직영의 요양병원을 제시할 것을 촉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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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 싸움의 전망이 밝아 보이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여전히 일부 환자들은 수동연세요양병원에서 나가지 못한 이 상황은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HIV감염인의 인권현실의 현 주소입니다. 게다가 요양병원이 필요한 새로운 환자들은 계속 생길 수밖에 없기에 눈앞의 상황을 대응하기에도 여러 조건들이 너무 열악한 것이죠. 이러다보면 언제 국립요양병원 만들어서 감염인들이 입원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죠. 하지만 HIV감염인의 인권현실은 그들의 안타까운 상황이 아니라 우리의 인권현실이고 바꾸어야 할 곳은 오히려 여기부터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