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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황경산의 인권이야기] ‘잘’ 먹을 권리와 ‘좋은’ 먹거리를 생산할 권리

무엇을 보고 먹을 것을 선택하고 계십니까?

“사람들은 왜 고를 때마다 뒷면을 볼까? 어디껀지를 알아야 믿음이 가니까.”
이런 광고 카피가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무엇을 보고 먹을 것을 선택하고 계십니까?

큰 대형마트에 들어서면 어디로 손을 뻗어야 할지 난감합니다. 먹을거리들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하는 건 다 먹을 수 있다는 듯 무한한 선택권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마트에 진열된 빛깔 좋고, 먹음직스러운 것들. 마트뿐 아니라 텔레비전에서는 먹을거리에 대한 광고가 방송되고 거리마다 음식점들이 즐비합니다. 그러나 한편 그런 걱정도 듭니다. ‘이거 정말 건강한 먹을거리일까?’하고. 뉴스에서는 유해한 식품들에 대한 경고가 끊이지 않고, 그만큼 건강에 좋은 먹거리에 대한 소개도 이어지고 있어 어떤 것을 먹을지 고민을 하게 됩니다. GMO라는 유전자 조작된 식품도 있다 하고, 건강에 해로운 식품첨가물이 포함된 것도 있다 하니 손을 뻗어 뒷면을 확인해 본들 알 길이 없는 어려운 단어들뿐이니 머리에 쥐가 날 지경입니다. 더불어 ‘나에게 좋은 먹거리를 선택할 자유로운 권리가 있을까...?’ 이건 좀 더 진지한 질문이자 오늘 풀어나가려는 문제의 시작입니다.

좋은 먹거리를 선택할 자유로운 권리.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땅 속에 담긴 무한한 자원을 머금고 논과 밭에서 자라는 먹거리가 있습니다. 농약과 비료는 사용하지 않고 자연을 지켜가면서 농민들의 땀과 노동으로 키워온 먹거리입니다. 가공 역시 최대한 화학적 합성을 한 첨가물은 자제하고 사람을 생각하는 먹거리입니다. 이렇게 좋은 걸 먹고 싶다는 건 모두의 바람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마트 진열대에 전시된 것 말고 음식점에 나오는 메뉴 말고 광고에 팔리는 상품이 아닌 것 외에 이런 먹거리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갖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좋은 먹거리를 생산할 권리...그러나 현실은?

좋은 먹거리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좋은 먹거리를 생산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려면 충분히 생산하기에 적당한 땅이 있어야 하고, 생산할 수 있는 농민이 있어야 하고, 농민들의 노동의 가치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장되어야 가능합니다. 물론 이 외에도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요. 하지만 지금 한국 농촌의 현실은 암담합니다. 우리의 식량자급률은 이것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수치 중의 하나입니다. 2012년 곡물자급률은 23.6%, 식량자급률은 45.3%. 그러나 80%대의 자급률을 유지하고 있는 쌀을 제외하면 곡물자급률은 5%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경지면적도 매년 줄어들고, 농민의 수는 1990년도만 해도 666만 명이었지만 24년이 지난 올 해에는 279만 명으로 400만 여명 가까이 줄어들었습니다. 농가당 부채는 3,000여만 원에 가까워 한 해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돌아오는 것은 빚더미입니다. 오늘날 농촌의 현실은 우리나라 농업정책 실패의 결과입니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농산물 시장 개방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값싼 수입농산물에 따른 피해와 함께 기업에게 농산물을 생산하고 가공, 유통하는데 끼어들 수 있도록 만들어 버린 제도가 있습니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에 맞서 농민들은 줄기차게 생존권 보장을 요구했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권리가 실현되는 정책의 필요성을 알려나갔습니다.

[사진설명: 한중FTA를 반대하는 여성농민의 시위-출처: 참세상]

▲ [사진설명: 한중FTA를 반대하는 여성농민의 시위-출처: 참세상]


희망을 안고 씨앗을 뿌려야 할 봄을 기다리는 지금, 우리 농민들에게는 어두운 소식만 들려옵니다. 정부는 한중 FTA(자유무역협정),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쌀 시장 전면 개방 등 농산물 시장을 완전히 열고, 농업의 희생을 전제로 한 각종 조치들을 취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곳간에 자리한 씨앗을 뿌리지 않을 수 없고, 국민의 생명 창고인 농업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식량주권 실현이라는 목표를 걸고 마을에서부터 작은 도전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씨앗에 대한 권리를 농민에게! 농민의 권리를 보장하라!

토종씨앗에 대해서 들어보셨나요? 오랫동안 우리의 땅에 적합하게 우리의 몸에 알맞게 바뀌어온 토종씨앗. 그렇지만 토종씨앗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한 해 농사를 갈무리하고 난 씨앗을 잘 보관해 두었다가 이듬 해 봄에 다시 뿌리는 것은 흔한 농촌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돈을 주고 씨앗을 사야 하는 현실입니다. 지적재산권과 특허의 이름으로 토종씨앗에 대한 농민의 권리를 빼앗는 제도도 만들어졌습니다. 농민들이 농가마다 가지고 있던 씨앗 대신에 종자회사에서 파는 씨앗으로 생산하면 좋다는 선전이 줄을 잇고, 정부가 개량된 품종들을 강제로 보급한 결과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종자회사도 우리나라의 기업이 아니라 외국기업의 소유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씨앗을 골라서 사용할 수 있었던 농민의 권리는 온데간데없이 기업과 정부의 권리로 넘겨졌습니다. 이에 맞서 여성농민들은 토종씨앗을 찾아 나섰습니다. 농민의 지혜와 경험이 축적된 토종씨앗. 토종씨앗 지키기는 우리가 오랫동안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었던 씨앗에 대한 농민의 권리 찾기입니다. 토종씨앗을 전국 방방곡곡 퍼뜨리기 위한 활동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여성농민들이 마을에서부터 작은 공동체를 만들고 있습니다. ‘언니네텃밭’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여성농민 생산자 공동체는 제철먹거리로 도시의 소비자와 만나고 있습니다. 얼굴 있는 생산자와 마음을 알아주는 소비자가 마트와 식당, 기업에 가려 단절되었던 관계의 회복을 하고자 했습니다. 여성농민들은 어떤 작물을, 어떤 방식으로 생산하고, 자신의 노동가치가 보장되기 위한 가격까지 직접 결정합니다. 보조적인 농업인이라는 여성농민의 위치에서 생산의 주체로서 자기결정권을 획득하는 과정입니다. 소비자들은 제철에 난 다양한 먹거리를 만나며 낯설고 두렵지만 음식을 둘러싼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꾀합니다. 좀 더 좋은 먹거리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찾기 위한 행위입니다. 나아가 생산하는 여성농민의 권리를 함께 보장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 여성농민들은 먹는 사람, 생산하는 사람이 따로 없이 함께 사는 공동체, 식량주권이 실현되는 사회를 꿈꿉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가서기 어렵지만 중요한 식량주권에 대해서 함께 알고 지켜나가야 합니다. 도시와 농촌, 소비자와 생산자는 따로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이와 잇몸 같은 관계는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농촌이 없으면 도시는 없고, 생산하는 자가 없으면 소비할 수 있는 선택의 권리조차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덧붙임

김황경산 님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국장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