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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두의 인권이야기] 박근혜 정권, 엄포는 됐고 응답하라!

드라마도 정국도 복고가 한창이다. 복고 드라마는 지난 시절을 곱씹는 즐거움을 주지만 때 아닌 철권 공안정국은 실소와 피로를 준다. 최근 천주교 정의구현 전주교구 사제단이 국가기관의 대선 불법개입 사건을 규탄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한 미사를 봉헌한 것을 겨냥해 박근혜 대통령은“국가기강을 위협하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세력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것이 민주국가의 대통령이 한 발언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대통령의 엄포?!

정권퇴진을 요구하는 근거의 핵심은 국가기관의 대통령선거 불법개입이다. 그 핵심에 대해서 박근혜 정권은 해명도 사과도 없다. 한술 더 떠 핵심에 대해서는 논하려 하지 않고, 정권퇴진을 요구한 이의 다른 발언들을 문제 삼아 종북딱지를 붙이고 공안정국으로 몰아간다. 표현의 자유가 존재하는 민주주의 사회가 맞다면 정권에 반하는 의견도 듣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사과나 해명은커녕, “국론을 분열시키는 세력”으로 몰아가며 조용히 하지 않으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문득 지금이 2013년이 맞는지, 여기가 민주주의 국가가 맞는지 몽롱해진다.

그동안 천주교는 전국 총 16개 교구 가운데 군대 사목을 하는 군종교구만을 제외한 15개 교구가 각 교구의 정의평화위원회를 중심으로,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규탄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하는 시국선언과 미사를 봉헌해 왔다. 일반 신자들로 구성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등 8개 천주교 단체들도 지난 6월 21일을 시작으로, 국정원 개혁과 민주주의 회복을 요구하며 시국기도회를 열었다. 이를 위한 상설적 단체 구성을 위해 최근 만민공동회를 개최했고 ‘민주화를 위한 천주교행동’(가칭)을 조직하였다.

지난 11월 23일 민현주 새누리당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서 천주교 사제들의 대통령 사퇴 요구에 대해 “국민들의 선택으로 선출된 대통령의 정통성을 부정함으로써 그 의도의 불순함이 극단에 달한 것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그가 말한 선출과정이 말 그대로 온전히 “국민들의 선택”이어야 한다. 그 선택에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개입이 없었어야 한다. 그런데 국정원과 국방부까지 선거에 개입한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는 상황에서 조사지시나 특검실시 등 해명하려는 제스처를 전혀 보이지 않는 박근혜 정권이야말로 정통성이 참으로 불순하다 하겠다.

11월 말,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은 명동성당 인근에서 연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해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11월 말,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은 명동성당 인근에서 연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해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근혜 정권이야말로 참 불순하다

법륜 스님은 국가기관 대선개입 등과 관련해 "‘내가 시킨 적도 없고 관여한 적이 없으니’ 사과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아베 총리는 어떤가. 아베 총리가 ‘나는 한국 침략에 대해 지시한 적이 없으니 사과하지 않는다’ 그러면 되나"라고 말하며 박근혜 정권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어서 "아베 총리는 일본 정부를 계승한 정부 책임자로서 반드시 사과해야 한다. (대선개입과 관련해서) 어느 선에서 사과를 해야 할지는 아직은 결정할 수 없다. 단정적으로 누가 사과해야 한다고 아직까지는 단정 지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지난 9월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군이 대학살을 저질렀던 프랑스의 한 마을을 방문해 사죄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앞서 8월에 독일 다하우 나치 강제수용소를 공식 방문해 희생자를 추모했다. 국가나 정부를 대표하는 공직에 있는 이는 자신의 직접 지시로 일어났던 일이 아니라 해도 사과를 하고 수습에 나설 책임이 분명히 있다. 그 사과는 자연인 개인으로서 하는 사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보여주는 일련의 태도는 국정운영의 수장으로서 책임 있는 모습이 아니라, 세간의 비아냥처럼 ‘공주인 나는 잘못이 없다’고 땡깡 부리는 모습으로 보여진다.

민현주 새누리당 대변인은 또 사제들에게 “국론을 분열시키고 특정 정치세력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 과연 정의구현인가. 부디 자중자애하고 종교인 본연의 모습으로 바로 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쎄, 종교인에 대해 또는 천주교에 대해 ‘자중자애’ 하기만 할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성서 구절을 말씀드리고 싶다. 일찍이 예수는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고 하였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복음 12,49-53) 예수는 세상의 가짜 평화를 산산이 깨고 평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거짓에 분열을 일으켜, 그로 인한 갈등으로 고통을 겪더라도 참된 평화를 찾아야 한다는 복된 말씀을 남겼다. 진정한 종교인은 정의와 평화를 위해 기꺼이 싸울 각오가 되어있는 이들이지, 누군가 만들어놓은 평화를 누릴 요량만 하고 있는 이들이 아니다.

죽은 복음과 공염불이란

한평생 성직자로 살아온 이들에게 어떠어떠한 종교인이 되라고 여당 대변인이 훈수를 둔다. 그 어색한 훈수대로 종교가 점잔빼고 요단강 건너의 세계만 이야기 한다면 그것은 죽은 복음이고 공염불이다. 종교보다 과학이 가까운 이 시대에도 종교가 필요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종교가 손 잡아줘야할 고통 받는 이웃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또한 부정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 정의의 편에 설 종교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멀리서도, 그리고 오랫동안 우리에게 향기와 긍지를 주는 종교인들을 생각해본다. 멀리 남미에 로메로 주교, 김수환 추기경이 떠오른다. 로메로 주교는 엘살바도르 내전이 한창이었던 1980년대, 군부정권의 인권 유린과 공포정치를 비판하고 가난한 엘살바도르의 민중을 대변하다가 극우 군부세력에 의해 암살되었다. 김수환 추기경은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에 맞서, 천주교뿐만 아니라 한국 민주화 역사의 큰 어른으로 많은 이들이 그리워한다.

김수환 추기경은 1972년 10월 17일 미사에서 "10월 유신 같은 초헌법적 철권통치는 우리나라를 큰 불행에 빠뜨릴 것이라고 단언합니다."라고 했고, 1987년 6월 13일 미사에서는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 시한부 농성 중인 신부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또 그 신부들 뒤에는 수녀들이 있습니다. 당신들이 연행하려는 학생들은 수녀들 뒤에 있습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그 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십시오."라고 말했다.

종교의식인 미사 중에 강경한 정치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김수환 추기경을 많은 이들이 두고두고 그리워하는 걸 보면, 종교인은 ‘자애로움’만 갖춰서 될 게 아니라 강직하게 세상사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성직자도 어떤 식으로든 정치에 관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것이 세속으로의 복귀나 정치에 개입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 곧 일반대중의 살림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목자가 신자들의 생활과 현실을 간과한 채 사목활동을 할 수 없다.

현재 천주교 수장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11월 26일 ‘교황 권고’에서 “나는 자기 안위를 지키느라 속으로 병든 교회보다는 길거리에 나가있어 멍들고, 상처받고, 더러운 교회를 택하겠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무신론자조차도 교황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이유’라는 기사를 통해 “교황이 추구하는 게 이념이나 특정 종교 교리가 아니라 평등주의와 인간 가치의 본질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민이 원하는 것

천주교는 전례방식이나 더디게 진보하는 가치관에 있어서 아직도 중세시대에 머물러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은 그런 고답적인 천주교가 걱정할 정도다. 로마 가톨릭 해외 선교 담당 기구(PIME)의 공식 언론사인 아시아뉴스는 11월 26일 기사에서 “한국정부, 민주화 운동 신부를 국가의 '적'으로 몰아”라는 제목으로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태도를 다뤘다. 아시아 뉴스는 박 대통령이 한국을 오랫동안 철권으로 지배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고 소개하고, 대선을 위해 국정원을 이용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고 보도하며, “극단론자들이야말로 긴장상태를 원하고, 새로운 적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는 것이 박창신 신부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2013년 경색된 한국사회의 때 아닌 공안정국은 나라밖에서도 걱정을 사고 있다.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에 대해 국민이 원하는 응답은 내가 안 시켰다는 식의 억울함의 토로나, 좌시하지 않겠다는 울분을 피력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으로서의 책임과 그에 따르는 사과, 그리고 후속조치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건넨 말에 ‘응답’을 한 것이 아니라 권력에만 의지해 말한다. 국정운영은 개인이나 한 집안 사에 얽힌 원한의 한풀이 무대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아버지의 명예를 격상시키고 싶다면, 거꾸로 아버지시대의 유신 문법이 아니라 철저히 지금의 화법으로 말하고 해결해야 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소통 안에서의 응답이지 엄포가 아니다. 엄포는 됐고, 응답하라!
덧붙임

강은주 님은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