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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거리는 사랑방] 사람들은 서로 미워하는 걸까??

<편집인 주> 20주년을 맞은 인권운동사랑방이 다시 변혁을 꿈꾸는 인권운동의 질문을 담아 책자를 발간했다. <인권오름>은 그 중 '도란거리다' 장에 실린 글의 일부를 몇 차례에 나누어 싣는다. 일상, 관계, 활동 속에서 어제의 고백이기도 하고 내일의 다짐이기도 한 사랑방 활동가들의 목소리가 <인권오름> 독자들에게도 든든한 기운으로 전해지기를 바란다.

2012년이었다. 여의도대로에서 한사람이 지나가던 사람들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몇 명의 사람들이 크게 다쳤고, 그는 이후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는 말하였다. 전 직장의 사람들이 나를 험담하고 따돌려 다른 직장에 취직했지만 그곳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이 모든 것이 전 직장 동료 때문이라고.

설 연휴기간에는 일가족 6명이 모인 이웃집에 아래층에 사는 한 사람이 불을 질렀다. 그는 윗집이 너무 시끄럽다고 이야기 했다. 층간소음이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갈 뻔 했던 상황으로 이어졌다. 다른 집에서는 도끼가 나왔고, 아랫집과 윗집사이에 주먹다툼은 늘어났다.

사람들은?!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는 것 같다. 집도, 학교도, 직장도, 거리도 사람들 간의 폭력이 발생한다. 때론 물리적 폭력이 생기도 하지만 서로 괴롭히고 따돌리는 일이 더욱 많다. 사람들은 서로 믿지 못하고 서로를 부정한다.

직접 보지 못한 사람을 미워하기도 한다.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은 다투고, 때론 물리적 폭력까지 이어진다. 한국에 살아가는 이주민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하고, 성소수자들에게 욕설을 한다. 거리의 홈리스들에게 더럽다 이야기 하고, 투쟁하는 사람들의 농성장을 부순다. 누가 홈리스인지, 이주민인지, 성소수자인지, 투쟁하는 사람인지 얼굴도 알지 못한 채 그들을 미워한다.

인권활동가인 나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나는 자본가가 밉고 권력자가 밉고 소수자를 혐오하는 그들이 너무 밉다. 아니 정말 싫다. 그리고 또 미운 사람도 있다. 밤마다 시끄러운 오토바이 운전자가 밉고, 함부로 훈계하는 꼰대들이 밉다. 나는 왜 사람들을 미워하는 걸까? 그리고 누군가는 나를 왜 미워하는 걸까? 우리는 왜 서로 미워하며 살아가는 걸까?

물론 사람들이 무조건 서로를 미워하진 않는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사람들은 삶의 무거움에 점점 짓눌린다. 삶의 무거움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에 공감할 힘을 잃는다. 공감하지 못하는 사회/사람에서 관계는 형성될 수 없다. 사람들의 관계는 점점 좁혀지고 없어진다.

사람들이 머무르는 공간도 마찬가지다. 학교, 회사, 심지어 집에서조차 관계는 단절된다. 학교에선 끊임없이 경쟁하고 회사에 가면 직급과 고용형태로 나눠진다. 우리는 끊임없이 분리된다.

분리만으로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 밀어내고 밀려나며 살아간다. 성소수자라 호명되거나, 이주민이라 호명되는 순간, 특정한 정체성으로 호명되는 순간 밀려난다. 밀려난 사람들은 존재를 부정당하거나 존엄을 빼앗긴다. 사람들은 밀려나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밀어낼 수밖에 없다. 그게 이 사회의 규칙이다. 모든 인간이 존엄하다는 인권의 원칙은 사회의 규칙에 밀려난다.

나는?!

나는 어땠을까? 중고등학교에서 나는 살아남을 궁리를 하며 내가 이곳에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하려 했다. 친한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들과의 관계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학교의 룰은 사회의 규칙과 똑같았다. 밀려나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밀어내야 했다. 밀려난다면 내 존엄은 인정받지 못했다. 이름이 아닌 번호, 공부 못하는 애, 뭐 하나 잘하는 것 없는 애라는 말 한마디는 내 존엄을 훼손시켰다. 힘을 획득하여 내 존재를 인정받고 싶었다. 그 힘은 다른 사람들을 밀어내며 획득했다. 때로는 물리적 폭력으로 모욕적인 언행으로, 그리고 힘이 내 존재를 인정받게 했다.

사회에 나온 후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지방대학에 취업이 전혀 되지 않는 과를 졸업한 내가 획득할 수 있는 힘은 보이지 않았다. 더 강한 힘을 가진 사람들이 내 위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이 미웠다. 존엄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그들과 경쟁해야 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정체성들은 그들과 경쟁할 수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사회에서 존재를 인정받을 수 없는, 존엄하게 살아가기 어려운 위치에 놓여졌다.

나를 돌아보며, 그리고 끊임없이 경쟁하고 밀어내는 사회의 모습을 보며 차별이 사람들의 관계를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보였다. 소수성을 위계화하고 배제와 차별은 경쟁의 도구로 활용되었다. 낮은 위계의 소수성은 배제와 차별의 대상이었다. 끊임없이 누군가를 밀어내야 하는 삶에서 관계와 공감은 형성될 수 없었다.

내가 바라봐야할 세상의 모습은 이것이지 않을까? 존엄한 인간의 영역에서 사람들을 탈락시키고, 다시 올라오기 위해 끊임없이 싸워야만 하는, 그렇기에 서로를 미워해야만 하는 사회, 차별과 배제를 통해 관계와 공감을 가로막고 사람들을 분열하고 분리하는 사회, 서로를 밀어내야만 존엄한 인간의 영역으로 올라가 인정받는 사회……. 인권운동은 이런 사회의 틀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고민이다. 무엇을 바꿔야할지 보이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반차별 활동을 하면서 배제와 차별을 마주친다. 그리고 외친다.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 누구도 차별받으면 안 된다.” 때론 고민한다. 이렇게 외치는 것 말고 또 무엇을 할 수 있지? 다들 차별은 나쁘다고 이야기하지만 차별과 배제 없이 위로 올라갈 수 없는 사회에서 차별하지 말라는 외침은 공허한 건 아닐까?

공감으로부터

공감에 주목하게 된다. 차별과 배제로 존엄한 인간의 위치에서 탈락하는 사람들이 가진 공통의 경험을 통해 내가 가진 힘겨움이 너의 힘겨움과 만난다면 조금의 변화가 시작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상대방의 말에 담겨진 숨은 뜻을 들으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느끼면서 그렇게 공감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힘겨움의 원인을 달리 생각해볼 것 같다. 그리고 그 공감들이 계속 연결된다면 우리가 가진 힘겨움의 원인과 한판 싸워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드는 고민이 있다. 나와 다른 사람,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 대한 차별과 배제와는 어떻게 싸워야 할까? 성소수자도 당신과 평등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해도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전혀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당신과 나는 평등합니다.’를 넘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해 보인다.

아직 많은 방법들이 떠오르진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외쳐야 한다. “사람은 모두 평등합니다. 누군가가 차별받는 세상은 누구도 존엄할 수 없는 세상입니다.” 활동가의 의무감 때문이 아니다. 모두가 평등하고 인간이 존엄한 세상은 내가 원하는 세상이니까!!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공감한 세상이니까!!
덧붙임

훈창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