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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방앗간] 아청법 한계 드러낸 ‘성기노출 사진사’ 무혐의 사건

민족 대명절 추석을 하루 앞두었던 지난 9월 17일, 한 황당한 판결이 온라인과 SNS를 들썩이게 했다.

사진관을 운영하던 사진사 최 씨(43)가 증명사진을 찍으러 찾아온 여학생들 뒤에 서서 바지를 내린 뒤 촬영해 모두 124장의 사진과 25개의 동영상을 소지하고 있었음에도 그가 기소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에 따른 혐의가 무죄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최 씨는 사진 촬영 시 카메라에 타이머를 설정해, 학생들이 카메라를 보고 있는 틈을 타 그들 뒤에 서서 성기를 노출해 촬영했다. 학생들에게는 물론 멀쩡한 증명사진을 주고, 그의 성기가 노출된 사진과 동영상은 개인 컴퓨터에 소장하고 있었다.

직접적 성행위?

대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린 이유는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은 아동·청소년이나 이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 성적 행위를 하는 내용이 포함되어야 하는데 피의자의 사진 등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이 정의된 아청법 제1장제2조5의 내용을 살펴보니 ‘아동·청소년 또는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 등장하여 ▲성교 행위 ▲구강·항문 등 신체의 일부나 도구를 이용한 유사 성교 행위 ▲신체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접촉·노출하는 행위로서 일반인의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행위 ▲자위행위 ▲그 밖의 성적행위 등이 담겨져 있는 필름·비디오물·게임물 또는 컴퓨터나 그 밖의 통신매체를 통한 화상·영상 등의 형태로 된 것을 말한다.’고 표기돼 있다. 아동·청소년을 ‘이용’한 음란물의 범주가 아동·청소년이 소위 ‘직접적 성행위’라 할 수 있는 모습이 등장하는 것으로 한정하는 협소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 때문에 최 씨가 몰래 찍은 여학생 사진 속에 아무리 최 씨가 성기와 신체 일부를 노출하고 서있다 한들 아청법에서 정한 범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아청법은 제정 때부터 제정 시기와 관련한 정치적 문제와 법안 내용 한계 등 많은 논란 속에 있어 왔다. 하지만 논란이 무엇이든 그 심각성에 비해 소홀히 다뤄져 온 아동·청소년 성범죄를 철저히 징계하고, 성범죄에 쉽게 노출되는 사회적 약자인 아동·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는 제정 취지가 중요한 것 아닌가. 만약 이 취지를 제대로 살려 아동·청소년을 성범죄로부터 강력히 보호하려 한다면 아동·청소년이 갖고 있는 사회적 취약성을 이용해 행해지는 극악한 범죄라는 점과 이들 범죄가 향후 아동·청소년에게 끼치게 될 영향 등을 고려해 가중처벌을 해도 모자랄 판이다.

성범죄로부터 보호하겠다더니

최 씨 사건의 경우, 해당 사진과 영상물 속 상대 여학생의 동의가 있었다 할지라도 그 대상이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아청법이 다루는 범위에서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다(다만, ‘아동․청소년’의 성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다루는 아청법의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최 씨는 여학생들과 자신의 노출 사진을 ‘몰래’ 찍었으며(올해 개정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도 ‘몰카’ 관련 형벌을 강화하지 않았나. 물론 그 처벌은 터무니없이 약하지만!) 간접 성행위를 해당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행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청법은 이와 같은 형태의 범죄를 아우르지 못하며, 재판부 또한 이를 아동·성범죄 ‘이용’ 음란물이 ‘아니’라고 판결하는 해석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아청법은 올 6월 19일부터 시행되었기 때문에 관련 초기 판결에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강간과 성추행 중심의 신체접촉 위주의 성범죄를 중심으로 피해의 강도를 획일적으로 위계화하고, 성범죄로부터 청소년·아동을 보호하겠다며 특화된 법률을 만든 것이 무색하게 적용 범위의 협소함으로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이번 판결 결과가 법률 제정 취지에 맞게 성범죄로부터 아동·청소년을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누구나 상식적으로 ‘성범죄’라 인정할만한 것조차 ‘범죄’로 해석하지 않고 있는데 말이다.

이번 사건을 보니 아청법 시행의 부작용에 대해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다. 사회의 범죄는 점차 지능화 다양해지고 성범죄 또한 예외가 아닌데 ‘청소년의 직접적 성행위’가 있어야 ‘청소년 이용 음란물’로 한정짓는 경직된 법안과 재판부가 이러한 사회의 속도를 제대로 따라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렇지 못할 경우 수많은 이들(피해자와 그들의 가족)이 사회 안전망의 부재 속에 고통스러운 싸움을 외롭게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덧붙임

코린 님은 언니네트워크 운영지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