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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형제복지원]<5> 형제복지원과 시설문제, 침묵의 카르텔을 깨기 위한 과제들

1987년 <형제복지원>에서 일어난 끔찍한 인권유린은 20년이 훌쩍 지난 후에야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약자들을 위해 설립된 ‘사회복지시설’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기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때의 그 사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단지 형제복지원 사건이 여전히 ‘미결’ 상태이고,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피해보상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왜 이런 충격적인 일이 발생할 수 있었는지를 철저하게 살피는 것, 그리고 여전히 유사사건들이 잠재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 그래서 앞으로는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촘촘한 예방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바로 이 사건의 ‘현재성’을 말해주고 있다.

‘시설 재테크’를 탄생시킨 공공영역의 사유화

사회복지시설에서 발생하는 인권유린사건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사회복지시설이 사유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실 한국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공공영역을 민간이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너무 많다. 즉, 사립학교, 민간병원, 민간사회복지시설, 민간어린이집, 민영주택 등의 비중이 공립학교, 공공병원, 공공사회복지시설, 국공립 어린이집, 공공주택에 비해 지나치게 크다는 것이다. 사회복지시설도 마찬가지다. 사회복지시설의 상당수는 ‘민간’이 소유와 경영을 직접 책임지고, 국가는 관리감독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한 발 물러서 있는 구조다. 문제는 사회복지시설이 재테크나 탈법적인 상속/증여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빈번한데도 국가가 그것을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것은 국가가 자초한 일이나 다름없다. 국가가 책임지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을 민간에게 맡기는 대가로, 민간사회복지시설을 통해 사적인 이익을 챙기는 것을 사실상 묵인한 것이 지금의 이 오도된 현실을 낳은 원인이기 때문이다.

이 구조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재산이 30억이 있다고 해도 요즘 같이 금리가 낮을 때는 예금을 하는 것만으로는 재미를 보기 어렵다. 또한 자신의 자식에게 이 돈을 증여하거나 상속하게 되면 절반 가까운 돈을 세금(증여세, 상속세)으로 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 돈을 출연하여 사회복지법인을 설립하는 것이 ‘기발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법인이 땅을 사고 시설운영에 필요한 건물만 지어 놓으면, 시설의 운영비는 국가의 각종 지원으로 충당할 수 있으니 추가 투자도 불필요하다. 본인 또는 친인척들에게 시설장 등의 직책을 주고 합법적으로 월급을 지급할 수도 있다. 법인 명의로 차량을 구입하여 사적으로 이용하거나 사사로운 물품구입이나 서비스이용을 비용 처리하는 것 또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러한 류의 꼼수는 수없이 많다. 이렇게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할 수 있다면 사회복지법인을 설립하는 것이 다른 재테크보다 훨씬 더 이득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것이 바로 ‘전 재산을 출연하여 사회복지법인을 설립한 사회사업가’의 이면이다. 물론 모든 사회사업가가 이렇게 불순한 의도로 사회복지법인을 설립하고 운영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렇게 악용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이고, 그것이 가능한 구조가 방치되어 왔다는 점이다.

물론 가장 근본적인 해법은 어린이, 병자,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을 사회복지시설이나 병원에 사실상 감금하는 것을 ‘보호’라고 여기는 시혜적인 시선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불가피하게 시설에서 보호해야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것이 예외가 아닌 원칙이 되어 버린 현실은 분명히 문제다. 약자들도 보통 사람들이 사는 공동체 내에서 불편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지, 그들이 살기 어려운 세상을 만들어 놓은 채 사회에서 격리된 시설에서 보호하겠다는 발상은 가당치 않은 것이다. 또한 사회복지시설은 원칙적으로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직접 책임지고 운영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부족한 부분을 민간에서 보충하는 식으로 분담이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2012년 3월 2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 2012년 3월 2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피해자 국가상대 손해배상 청구" 기자회견 모습 <사진 출처 : 비마이너>


사회복지법인의 규제와 감독

하지만 이미 수많은 민간사회복지시설이 현존하고 있는 상황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민간사회복지시설에 대한 공적 규제가 시급한 과제다. 사회복지법인이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공공재’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이에 따른 적절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그 규제의 기본적인 얼개는 2011년 이른바 ‘도가니법’으로 알려진 사회복지사업법의 개정으로 어느 정도 마련되었다. 이에 따르면, 법인 이사회의 3분의 1을 사회복지위원회/지역사회복지협의체의 추천을 받아 구성하도록 했고, 친인척 등 특수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이사 현원의 5분의 1을 초과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개정 법률에 따라 사회복지법인의 이사 교체가 순차적으로 완료되면, 시설이 탈법적이고 비윤리적으로 운영될 가능성은 한층 줄어든다.

시설과 관리감독기관인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와의 유착관계를 깨는 것도 중요하다. 사회복지시설의 운영비의 상당수는 국가의 지원에 의해 충당되고 있기 때문에, 국가가 철저히 관리감독하기만 해도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에바다복지회, 청암재단, 성람재단, 성실정양원, 그리고 영화 <도가니>로 잘 알려진 광주인화원 사건 등 사회복지시설에서의 인권유린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관계기관과의 부당한 유착이 있었다. 여기에는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뿐만 아니라, 이들을 감시해야할 책임이 있는 검찰, 경찰, 법원 등 수사/사법기관들까지 가세한 경우도 있다. 관리감독기관과 사법당국이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문제해결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이와 동시에 감사원 등 외부 감시기구, 국민권익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인권 옴부즈만 등 외부의 인권기구들의 역할도 중요하고, 지역의 다양한 공동체 그룹과 시민사회단체, 종교기관, 언론들도 건전한 민간감시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도 꼭 필요하다. 이러한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감시망이 협력적으로 작동할 때 사회복지시설로 잇속을 챙기려는 사람들의 전횡을 막을 수 있고, 그들을 둘러싼 ‘침묵의 카르텔’을 깰 수 있다. 이미 그들이 구축하고 있는 강고한 네트워크와 수십 년간 축적된 각종 노하우에 맞서기 위해서는 그 감시망 또한 빈틈없이 구축되지 않으면 안 된다.

1980년대 <형제복지원> 사건 같은 충격적인 일이 2013년에 똑같이 반복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건을 낳은 구조적인 요인들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다양한 방법과 수위로 어떤 식으로든 재발될 수 있다. 법인 이사회의 공적 구성, 관계기관의 철저한 관리감독, 부당한 유착관계의 청산, 제3의 기구의 감시, 권리구제기관을 통한 개별적 인권침해사건의 효과적인 처리, 수사/재판기관의 엄정한 법집행, 시민사회와 언론의 감시 등 다양한 기제들이 효과적으로 협력하지 않는다면, 어느 틈엔가 새로운 문제들이 그 틈새를 노리고 등장할 것이다
덧붙임

홍성수 님은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