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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과 민원인은 어떻게 적이 되었나?

올해 들어 벌써 3명의 사회복지 공무원들이 자살을 했다. 업무가 너무 많아서 힘들다는 유서를 남긴 이도 있고,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도 있었다. 개별 인간의 모든 죽음은 사회적이다. 그 사회적인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 죽음의 행렬은 멈출 수도 있고, 끝없이 이어질 수도 있다.

잇따른 사회복지 공무원들의 자살 사건을 접하고 중앙정부와 각 시군구 등 지방정부에서 업무경감과 사기진작을 위한 대책들을 쏟아내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전문상담 치료마련, 비상연락망 및 CCTV 설치, 수당 인상 및 인사 가점 등 대체적으로 임시방편적 대책들이다. 이 중에서 경남 김해시가 내놓은 방안은 경악할 만한 것이었다. 사회복지공무원들에게 호신용으로 가스총과 전기충격기 지급(4월 10일 발표)하겠다는 것이다.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 잘못된 보도인 줄 알았다. 언론기사는 가스총과 전기충격기 등 개인 호신장구를 8월까지 구입해 공무원들에게 지급하겠다는 계획과 함께 "동 주민센터 여건상 혼자 가정 방문을 갈 때가 많은데 기초생활 수급자 중에는 강력범죄를 저지른 출소자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도 있어 불안할 때가 많다"는 시 관계자의 인터뷰를 담고 있었다. 이후 ‘오죽했으면 이런 방안이 나오겠냐’며 김해시의 대책에 동조하는 기사들이 연이어 쏟아졌다.

김해시에서 이런 황당한 조처가 나오게 된 배경은 지난해 생계비 감소를 항의하러 온 민원인의 ‘행패’때문이라고 한다. 사회복지공무원의 업무가 과중하고 그에 따르는 정신적 고충이 상당한 것은 사실이다. 또한 수급탈락 및 생계비 감소 등 항의성 민원으로 인해 복지공무원들의 스트레스가 심각한 것도 익히 알고 있는 바이다. 나 역시 수급자들과 함께 동사무소와 구청을 찾아가면 “우리도 정말 죽겠다”, “며칠 전 동료가 너무 힘들어 유산을 했다” “인권단체니깐 우리의 인권도 좀 이야기 해 달라”라는 하소연을 여러 번 들었다. 정말 고단함이 묻어 있는 얼굴로 호소하였다. 하지만 호신장구를 손에 쥐어주는 것으로 공무원들의 고충이 완화될 수 있을까? 또한 민원인들이 찾아와 상담을 하고 민원을 제기하려고 하는데 옆에 무기가 놓여있다면 누가 ‘감히’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사회복지 공무원과 민원인의 갈등 원인은 복지정책

사회복지 공무원과 민원인 사이에서 가장 큰 갈등을 만드는 요소는 단연 ‘부양의무제’를 둘러싼 기초생활보장제도이다. 부양의무자 재산 소득에 대한 일방적 조사로 수급권을 ‘우선박탈’하는 현재의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가난한 이들을 계속해서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정기적으로 조사를 거치고 나면 전국에서 수급자들의 자살 소식이 들려왔다. 사회복지통합전산망이 구축된 2011년 한해에 16만 명 정도가 수급자에서 탈락했고, 작년 말 기초생활수급자 수는 141만 명으로 제도가 만들어진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보건복지부 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도 비수급 빈곤층이 400만 명 정도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광범위한 사각지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가난한 이들의 유일한 소득보장체계인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갈수록 축소되어 사회안전망의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고 빈곤층의 삶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반면 사회복지공무원들은 수급자들의 전화통화 거래내역 등 사생활까지 일일이 감시해야 하는 감정노동과 과로로 죽어가고 있다. 게다가 사회복지공무원이지만 부양의무제, 추정소득, 근로능력 평가 등 독소조항으로 반쪽이 된 기초생활보장제도 틀 안에서 지역주민들을 위한 복지실현을 하기보다 ‘부정수급자 색출’이라는 임무를 수행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당장 생계가 끊긴 수급자들이 달려와 호소하는 애절한 사연과 절규는 방관하거나 무시할 수 있도록 자기방어 본능을 키우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런데 이제 와서 분노한 민원인들의 욕설과 위협에 대해 사회복지공무원들이 각자 총으로 맞서서 자신을 보호하라니! 민원인과 공무원을 서로 적으로 만들어버리고, 국민 앞에서는 '국민 맞춤형 복지'를 실현하겠다고 말하는 박근혜 가짜 복지정부가 이 안타까운 죽음의 진짜 범인이다.

사진 출처 ; 전국공무원노동조합

▲ 사진 출처 ; 전국공무원노동조합


필자는 이 황당무계한 정책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 김해시에 물었다. 김해시는 민원인에게 폭행을 당하거나 심리적 위협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 호신장구가 필요하고, 가스총과 전기충격기는 호신장구의 예시를 들어서 말한 것일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변하였다. 권리주체인 ‘시민’은 사라져 버리고, 법으로 보장되지도 반영되지도 못하는 시민들의 분노는 ‘행패’로 정리되어 버린다. 이는 최근 경범죄처벌법에서 가난한 이들의 마지막 생계활동인 구걸행위를 처벌대상으로 포함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난한 사람들을 ‘잠정적 범죄자’로 바라보고 있는 우리사회의 빈곤에 대한 차별의식과 범죄화 경향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가난이 범죄로, 게으름으로, 부도덕함으로, 부끄러움으로 표현되는 이 사회에 당당히 맞서 ‘인권’으로 연대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적이 아닌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동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임

아요 님은 인권운동연대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