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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의 인권이야기]단체 활동을 다시 시작한지 2개월 된 활동가 넋두리

4년간 몸담았던 단체 활동을 정리하고, 10개월을 쉬었습니다.
이전 단체를 들어갈 때 너는 이곳에 얼마나 있을 생각이냐는 동료의 물음에 5년이라고 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특별한 원칙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5년은 활동해봐야 계속 갈지, 멈추어야 할지 정할 수 있을 것 같았었죠. 그 5년을 채우지 못하고 나온 이유는 활동을 정리하는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길게 하자면 길고 짧게 하자면 짧은 여러 이유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계획보다는 짧은(?) 쉼을 갖고 다시 돌아온 곳이 지금 활동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입니다.

나름 한바탕 푹 쉬고 돌아와 여유가 있으니 내가 있는 곳과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 볼 여유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활동을 시작하며 사람들과 이렇게 지내야지 했던 다짐들도 돌아볼 여유가 생겼죠.

‘아무리 바빠도 사람들이랑 인사도 많이 하고, 수다도 많이 떨어야지!’

제가 있는 사무실은 대충 30여명의 활동가가 25평 남짓한 공간을 바글바글 사용합니다. 가끔 사무실을 둘러보면 오랫동안 사람들과 이야기하지 않고 모니터만 바라보고 일하는 이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그 복잡한 사무실 속에서 그 사람의 자리가 섬처럼 보입니다. 또 어느 날은 나름 구석에 있는 제 자리에서 한참을 일하다가 뒤를 바라보면 사람들이 대부분 사라져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 옆에 있는 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혹 일이 너무 많지는 않은지, 안색은 어떤지, 요새 무엇이 즐거운지, 힘든지 알려면 얼굴보고 하는 인사부터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물론 쉽지는 않습니다. 인사를 하며 말을 걸고, 사정을 살피고, 같이 웃고 우는 것이 누구에게나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이 다짐은 열심히 지켜볼 요량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꼭꼭 활동 내용을 잘 공유해야지!’

여느 곳과 같이 장판(장애인운동판의 줄임말) 역시 매우 빠른 대응이 요구되는 곳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활동보조 기준이 강화되는 복지부 지침이 나온다든지, 인권침해 시설이 드러난다든지 하는 경우들을 말하는 거죠. 그리고 장판은 매우 고된 방식의 운동을 고수하는 곳입니다. 우리는 공장을 멈출 수 없으니 세상을 멈추기 위해 도로를 점거하기도 하고, 공공기관을 점거하기도 하며, 1년의 절반 또는 그 이상을 거리에서 싸웁니다.

문제는 그러다보니 각각의 사안들을 충분히 공유하고, 함께 대응을 논의하고, 일을 분담하는 것이 녹록치가 않다는 것이겠죠. 그래서 결국 내용을 빨리 파악하는 이에게 각종 정보와 정책적 역량이 필요한 일들이 집중되고 그렇지 않은 이에게는 내용을 잘 몰라도 할 수 있는 것들, 그래서 덜 중요해 보이는 일들이 집중됩니다. 서로 일은 일대로 고된데 기분은 기분대로 나쁜 그런 상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함께 하는 운동 어디쯤을 같이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상태, 기계적인 노동의 반복, 그러다 한명씩 지르듯 활동을 그만두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이런 상황을 중지하기 위해 무얼 시작해야 할까하는 고민 속에 나온 다짐입니다. 지루하고 힘들더라도 가능한 같이 하고 있는 활동의 내용을 공유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어디쯤에서는 진가를 내보이겠죠.


‘같이 활동하는 이들과 속상한 게 있으면 바로바로 이야기해야지!’

사실 시간과 마음의 여유만 있다면 같은 활동공간에 있는 사람과 속상한 일이 생겼을 때 바로 이야기하고 푸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겠다 싶습니다. 문제는 그런 시간,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과 그 안에 내부 권력이 작동할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거겠죠. 가끔 감정의 날카로움으로 날아온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가슴이 턱! 하고 막히는 경우, 이런 상황을 그냥 마음에 꾹꾹 담아두다 결국은 서로 무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편 내부 권력이 작동하여 공간 내 누군가의 의견이나 활동이 억눌릴 경우 주변인과 당사자의 침묵은 그 공간의 대다수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에 가시처럼 걸리는 일들을 상대방으로부터 듣는 연습, 상대방에게 말하는 연습을 꾸준히 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천천히 가야지. 천천히 같이 가야지...’

지난 활동들을 돌이켜 보면 바빴습니다. 참... 바빴습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면 그렇게 바빴던 일 중에 절대 놓치면 안됐던 일들은 사실 또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정확하게는 내가 아니면 안됐던 일들은 별로 없었건만, 나 아니면 안 되는 것처럼 일을 했던 것이겠죠.

‘도현아,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라.’

장애운동가 정태수 열사가 후배와의 술자리에서 하셨다는 말입니다. 내가 혼자 하면 당장은 결과와 성과가 빨리 나타나는 것 같아도 그 안에 함께 할 내 옆의 사람이 없다면 그 성과에 의미를 두기 어렵다는 배움을 저는 얻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사람이다’라는 게 2개월 된 활동가의 다짐입니다. 내 바로 옆에 있는 이들, 조금 더 넓은 공간에 함께 있는 이들, 그리고 대중이라고 말하는 이들과 같이 호흡하고 실천하기 위한 노력들이 분명 내 활동을 더욱 풍성하고 즐겁고 의미 있게 해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전 일단 그렇게 기대하겠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4월 20일은 ‘장애인차별철폐투쟁의 날’입니다! 광화문 광장으로 오시면 장애인권운동가와 즐거운 한판을 하실 수 있어요. 꼭 놀러오세요!
덧붙임

윤경 님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