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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 학교 폭력 규제 대책의 문제점

학교 폭력 정국 1년을 돌아보며

학교 폭력 정국이 펼쳐진 지 만 1년이 지났다. 매일같이 쏟아지던 대책들, 특히 작년 8월 교과부의 학교 폭력 가해 사실 생활기록부 기재 방침이 논란이 되면서 사회적 논의는 더 뜨거워졌다. 하지만 학교라는 공간에서 매일을 살아가는 사람들, 즉 학생들이 무엇을 경험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듣는 사람은 없었다. 늘 ‘전문가’ 집단이 등장했고 학생들은 폭력의 배경이미지로 소비되었다. 급기야 디베이트(토론) 학습 열풍과 학교 폭력 예방교육은 학생들을 당사자에서 학교 폭력을 학습해야 하는 학습자로 변화시켰다. 이제는 전문가집단이 만들어낸 가상의 학교 폭력 ‘이미지’에 대해 배우고 공부해야 한다. 반면, 가해 사실 생활기록부 기재 정책이 지금 시행되고 있다는 것은 학생들이 잘 모른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사실 학교를 둘러싼 정책에서 학생이 소외당하는 것은 예전부터 그랬다. 하지만 2012년 버전은 더 심해졌다. 학생들은 (잠재적) 범죄자집단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덮어썼으며 학교 내 의사결정과정에서 더욱 철저하게 배제당하게 되었다. ‘덜 컸다’라는 기존의 근거 외에도 ‘무서운 10대’(폭력성), ‘상대방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의 결여’(비도덕성) 등의 이미지들이 배제의 근거로 뿌리내렸다. 학생들은 말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서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로 격하된 것이다.

폭력을 인식할 필요가 없는 학생들

학교 폭력은 곧잘 일진과 왕따라는 말로 전환된다. 그리고 일진을 없애기 위한 학교 폭력 대책, 아니 일진 규제 정책들이 동원된다. 하지만 일진이 강조되면 강조될수록 ‘가해’는 일진에게만 국한되는 단어가 되고 ‘피해’는 왕따에게만 해당되는 개념이 된다. 즉, 일진이나 왕따로 돌출되지 않는 학생들에게 가해와 피해는 상관없는 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오히려 더 폭력에 둔감해지고 폭력을 인식할 필요가 없어졌다.
일진-왕따 접근이 가지는 또다른 문제점은 학교 폭력을 개인 간에 일어난 싸움으로 치부하면서 학생들을 철저하게 ‘개인’으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단일한 행위로 이루어진 학교 폭력 사건을 대할 때에도 학생 간의 관계나 집단의 관점에서 보지 않는다. 피해자를 조사하고 가해자를 조사해 각각 분리된 개인으로서 기록하고 각기 다른 조치를 고안해낸다. 학생들을 보호하겠다는 정책도 학생들 간의 연대나 교류를 모두 끊어놓는 방식이다. 학생들은 결국 더 통제하기 쉬운, 더 나약한 존재가 되었다.

[사진: 전북지역 시민들의 학생부 기재 거부 응원 퍼포먼스 (출처: 교육지키미원정대)]

▲ [사진: 전북지역 시민들의 학생부 기재 거부 응원 퍼포먼스 (출처: 교육지키미원정대)]


학교 폭력은 누가 ‘책임’져야하는 짐 덩이가 아니다

범인(가해자)을 찾아내고 문제(누가 잘못했는지)를 찾아내 없애고자 하는 방식의 학교 폭력 대책은 사회적이고 공적인 문제를 개인들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여겨지게 만든다. 그리고 역경매와 같이, 하겠다고 나서는 개인에게 특정한 보상을 주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보상은 문제를 해결하는 취지에 부합하기 보다는 얼마나 더 유혹적인가 다시 말해 얼마나 더 기존 구조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할 수 있는 수단인가에 따라 평가된다. 대표적인 것이 또래 상담 혹은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부담임제, 청소년멘토제 등이다. 학교 폭력 대책으로 언급되는 이러한 제도들은 대부분 일정 수의 ‘문제’ 학생들을 담당해주는 학생에게 스펙을 보장함으로써 입시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게 해주는 방식이다. 학교 내에서 학교 폭력을 대처하는 방식도 여교사 반에 남교사를 부담임으로 배정하여 교사의 물리적 힘을 강화하는 방법이라든가 기록을 무기로 학생들을 협박하는 방식 즉 기존의 권위주의를 답습하는 방식이 가장 손쉽게 동원된다. 학교 폭력 대책으로 대다수의 교육청에서 하는 MOU 체결은 광고효과와 기업이미지 제고를 노리는 사업주들에게 새로운 시장이 되었다. 복지재단이나 학원 등에서 시작된 이러한 방식은 대기업에까지 확대되어 학교 폭력 예방에 동참하고 있다는 광고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린워시(*)와 다를 바 없는 ‘학폭워시’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학교 폭력 규제 대책이 아니라 평화를 위한 정책을

학교 폭력은 하루 이틀 된 문제가 아니다. 오래된 문제는 한 번에 해결하기 힘들다는 건 뻔히 예상되는 것이다. 이젠 학교의 체질을 바꾸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폭력에 대한 탈피가 아니라 평화를 지향점으로 잡고 평화로운 학교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계획들을 단․장기 정책으로 고민해야한다. 문제지점을 찾아 그것을 없애는 방식으로, 한 번에 해결하려 하거나 통제하고 억눌러서 학교 폭력을 규제해보려는 대책은 1년 동안 역효과만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부디 2013년에는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해서 목격하는 일은 없기를.

(*) 그린워시(greem wash) : 환경을 뜻하는 그린과 겉치레를 의미하는 화이트워시의 합성어로 기업이 실제로는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나 겉으로는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내세우는 행위를 말한다)
덧붙임

진냥 님은 "교사로 밥을 벌어먹은지 십년차. 청소년들의 은혜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