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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진의 인권이야기] 차별의 당사자가 된다는 것

지난해 9월 우연히 한 신문 기사를 읽게 됐다. 기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강서구의 한 지역은 대표적인 서민 주거지 중 하나인 영구임대아파트와 일반분양아파트가 함께 몰려있는 지역이다. 이곳에 초등학교가 두 곳 있는데, 한 곳은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 사는 아이들이 주로 다니고(ㄱ초등학교) 다른 곳은 일반분양아파트 단지에 사는 아이들이 주로 다닌다(ㅌ초등학교)고 한다. 임대아파트는 임대아파트끼리 분양아파트는 분양아파트끼리 붙어있다 보니 지리적인 조건상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지만, 사실은 일부 분양아파트 단지에 사는 사람들이 자녀들을 더 가까운 ㄱ초등학교를 놔두고 일부러 더 먼 ㅌ초등학교에 보낸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에 교육청이 승인해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물론 그 분양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교육청에 집단민원을 넣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ㄱ초등학교가 곧 없어질 상황에 놓였다. 이 지역 옆에 거대한 규모의 도시개발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도시개발사업과 함께 이곳에 새로운 학교가 들어설 계획이기 때문이다. ‘삐까번쩍한’ 아파트 단지 내에 새로운 초등학교가 생기는 대신 ㄱ초등학교는 없어지고, ㄱ초등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은 근처에 있는 다른 학교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이에 ㄱ초등학교 학부모들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결국, 가난한 임대아파트 주민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의 결과가 아니냐는 것이다.

기사에 따르면, ㄱ초등학교 학부모들은 “(임대아파트 아이들이 분양아파트 아이들과 함께 학교에 다닐 경우) 아이들이 서러움을 느끼며 학교에 다닐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잘못된 교육행정 탓에 조손가정·결식·장애아동이 많은 ㄱ학교는 섬처럼 고립돼 거지집단으로 낙인찍힌 지 오래”라고 인터뷰를 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공원에서 만난 ㅌ학교 애들이 ㄱ학교 다닌다니까 거지라고 놀렸어요. 같은 반 지혜(가명)한텐 원숭이라며 욕했어요. ㅌ학교 가면 훨씬 놀림을 많이 받을 거예요.”라며 차별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림: 윤필]

▲ [그림: 윤필]


처음 이 기사를 읽었을 때만 해도 ‘또 이런 일이 생겼구나.’ 정도로 생각했을 뿐, 담담했다. 하긴 임대아파트 주민들에 대한 차별이 알려진 것이 비단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었으니까. 그런 사례를 들을 때마다 ‘어이없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것도 여러 번 반복되다 보니 ‘또 그런가 보다’ 정도로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신문 기사에는 작은 지도가 함께 실려 있었는데, 그 동네가 왠지 눈에 익다 싶더니 얼마 전 버스 타고 지나가면서 보았던 마곡 도시개발지구가 떠올랐다. 그래, 바로 거기였다. ‘여기도 서울인가’ 싶던 도심 속 거대한 황무지. 그 황무지 바로 옆에 있던 ㄱ초등학교도 그제서야 기억이 났다. 그러고 보니 기사의 내용은, 두 블록 정도 떨어져 있긴 하지만, 바로 내가 사는 임대아파트 단지의 이야기였다. 그땐 내가 그곳으로 이사 간 지 한 달이 채 안 되었을 때였다. 그러자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내가 ‘거지’라고 놀림을 당한 것 같고, ‘원숭이’가 된 것 같았다. 이제까지 우리 아파트 옆에 있는 분양아파트 단지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날 거지로 봤겠구나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도 들고, 내가 우리 아파트 단지에 드나들던 것, 그 근처를 배회하던 것, 심지어 집에 가기 위해 아파트 단지 앞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던 것까지 모두 신경이 쓰였다. 그때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날 경멸적인 혹은 동정적인 시선으로 봤을까, 우리 아파트 단지에 사는 다른 사람들은 날 어떻게 생각했을까, 비교적 어린 나이에 이런 곳에서 살게 되어서 불쌍하다 생각했을까 등등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다 꼿꼿하게 반응하는 것 같았다. 불쑥불쑥 화도 많이 났다. 실제로 그 후 며칠 동안은 집 근처에 있을 때면 괜히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살피다가 때론 적대적인 시선으로 ‘응대’하기도 했다.(물론 상대방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땐 나름 이런 계획도 세웠다. 에잇, 일반분양아파트 것들에 대한 복수다! 밤에 몰래 가서 그놈들 아파트 단지 앞에다가 똥이라도 퍼부어 놔야지! ‘다행히’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나의 생각은 참 어이없었지만, 그때 나의 몸의 반응만큼은 잊을 수 없다. 처음에 나의 이야기인 줄 몰랐을 때에는 임대아파트 주민들의 ‘가슴이 아프다’, ‘서럽다’, ‘싫다’, ‘낙인’, ‘분통’, ‘차별’ 등 이런 말들이 머리로만 ‘(상황이)옳지 않다’고 이해되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막상 나의 문제로 인식되었을 때에는, 그건 마치 나의 존재를 뒤흔드는 것만 같았다. 나의 세계와 나의 모든 것이 침해당하는 느낌이었다. 어렵게 어렵게 구한 이 집에 대한 나의 애정이 컸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한데, 그만큼 나의 자부심에는 깊은 상처를 입었다.(지금은 임대아파트 찬양론자가 되었다. 주로 나이 많고 가난하고, 때론 장애인인 이웃들도 너무 좋다(아직까지는ㅋㅋ).)

당시 같은 신문 독자 투고란에는 ‘ㄱ초등학교 이전 사건’과 관련된 아파트에 산다는 사람의 다음과 같은 내용의 투고가 실렸다.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아름다운 아파트 환경이 아닙니다. 먹고사는 것이 보장되고, 문화생활로 마음의 여유도 얻을 수 있는 사람다운 삶입니다. 가난하다고 차별받지 않는 삶입니다. …정부뿐만이 아니라 사람들도 어려운 사람들을 정부에 기대어 살려고 하는 도둑이나 실패자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글의 내용을 보면 투고자가 고등학생이나 입시생으로 예상되는데, 어린 나이에 벌써 저런 ‘삶의 경지’에 이른 것을 축하해줘야 할지, 위로해줘야 할지……. 글을 읽는 내내 가슴이 저릿저릿했다.
덧붙임

구석진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