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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장갑’이 아니라 ‘인권’이 필요하다

HIV/AIDS 감염인 차별하는 병원

서울의 A대학종합병원이 수술용 특수장갑이 없다는 이유로 HIV/AIDS감염인의 고관절 전치환술(인공관절 시술)을 거부한 것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차별이라 판단하였다. 그 이유로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감염인 수술용 특수장갑이 필요하다기보다 HIV나 B형 간염 등 혈액 감염 가능성이 있는 환자들을 시술할 때 항상 착용해야 하는 기본 장비면 충분하다”는 점을 들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7월 7일에 A대학종합병원장에게 향후 동일한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 수립 및 인권교육 실시를, 보건복지부장관에게 A대학종합병원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HIV감염인을 제일 많이 진료하는 병원에서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환영할 수만은 없다. 위 사례는 한국에서 HIV감염인이 진료거부를 당하는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위 사례의 A대학종합병원은 한국에서 HIV감염인을 제일 많이 진료하는 병원 중 하나이다. 한국에서 HIV감염인이 확인된 지 26년이 된 오늘날 HIV감염인을 제일 많이 진료하는 병원에서 진료거부가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로도 다른 병원에서는 더 빈번하게 HIV감염인의 진료를 거부하고 있을 것이란 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간 HIV감염인들은 맹장수술을 비롯한 수술거부, 구급차 수송과정에서 응급처치 거부, 정신병원 진료거부를 당해왔음은 물론이고 HIV와 상관없는 피부발진, 감기, 충치 등의 치료를 거부당해 왔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가벼운 질환을 치료하기위해 1,2차 의료기관을 방문하여 진료거부를 당한 감염인은 감염내과가 있는 대학병원 등의 종합병원으로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1,2차 병원을 전전하다 진료거부를 피하기위해 대기시간이 길더라도 감염내과의 협진의뢰를 받아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대학병원을 갔는데도 진료거부를 당한다면, 그것도 HIV감염인을 제일 많이 진료하는 대학병원이라면 HIV감염인은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


HIV감염인들이 병원에서 당하는 차별은 진료거부 뿐만이 아니다. 위 사례의 A대학병원만 하더라도 감염인A씨는 ‘특수클리닉’이라고 적힌 공간에서 치과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치주과는 3층에 있지만 A씨가 치료를 받은 ‘특수클리닉’은 5층에 있고 청소 비품같은 것을 넣어두는 곳이기도 했다. A씨는 ‘특수클리닉’이란 이름에 대해서도 심리적 부담을 느꼈다고 한다. 감염인 B씨는 작년 치주과 앞에 “우리 병원은 AIDS청정지역입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보고, HIV감염인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주고 에이즈낙인을 강화시킨다며 철거를 요구하기도 했다. 감염인 C씨가 입원했을 때에는 병실에 있는 수거함에 HIV표식이 되어있는 스티커가 붙어있었다고 한다. 감염인 E씨가 입원했을 때 식판에 ‘HIV일반식’이라는 메모가 들어있어 항의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다른 환자들과 달리 식판을 주황색 폐기물 봉투에 싸서 내놓아야 했다고 한다.

진료거부, 개인의 몫으로 남겨두면 안돼

이번 국가인권위의 권고로 인해 HIV감염인들이 병원에서의 차별을 문제제기하거나 진정하는 사례가 늘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차별의 발생보다 더 큰 인권적 문제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지 못하거나 거부를 당한 경우에도 그것을 시정하기 위한 문제제기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의료법 제15조(진료거부 금지 등) ①항은 ‘의료인은 진료나 조산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환자들은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거부당했을 때 이 상황이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어렵다. 또한 의료기관을 상대로 개인이 ‘진료거부’임을 증명하고 싸울 수 있는 법적, 제도적 구제조치가 미흡하다. 이것은 단지 HIV감염인 뿐 아니라 힘없는 모든 환자들이 당면하는 문제이다. 더군다나 사회적으로 위축되어있는 HIV감염인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HIV/AIDS감염인에 대한 진료거부의 경우에는 그 동안 ‘특수장갑’의 미비와 같은 구체적인 사유조차 없이 ‘HIV감염인을 진료해본 적이 없어서’라든지 ‘HIV감염인을 치료할 장비가 없어서’, ‘병실이 없어서’와 같은 불명확한 이유를 들어 치료를 거부하였다. 심지어 아무 설명도 없이 다른 병원에 가보라고 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이 현실이다. 병원에 항의하거나 이유를 물어도 병원이 HIV감염인의 의견을 무시하면 그만이고, 보건복지부에 민원을 제기하면 ‘진료거부는 위법’이라는 원론적인 답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더 적극적으로 용기를 내어 이번 경우처럼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 진정을 하더라도 현행법 테두리 내에서 위법적인 근거를 우선하여 기각 또는 각하당하기 일쑤이다. 최후의 수단으로 고소 고발의 형태로 법정에서 해결하기 위해서는 HIV감염인들은 자신의 신원을 노출해야 하는 또 다른 사회적 위험에 내몰리게 된다.

권고를 넘어 실질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HIV감염인들이 개별적으로 병원에서의 차별문제에 대해 질의하거나 시정을 요구하여왔지만, 매번 HIV감염인들이 개별적으로 시정을 요구하고 시정이 되었는지 확인하는 방법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병원에서 HIV감염인에 대한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에이즈 감염인의 인권에 대한 공중보건의사 인식 조사(이진석 외, 2004)」에 따르면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의 407명의 공중보건의(일반의 128명, 전문의 141명, 치과의사 138명)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일상생활에서의 전염 가능성에 대한 지식수준은 전체적으로 정답률 50~60% 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감염인의 눈물과 침에 노출되는 경우와 감염인을 문 모기에 물리는 경우의 전염 가능성에 대한 정답률이 각각 26.4%와 37.0%로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감염인이 성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43.6%였다. 에이즈가 ‘격리와 활동제한 등 특별한 관리와 감독이 필요한 질병’이라는 응답이 52.2%인 것으로 나타나 부정적인 인식과 태도가 보다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염인 입원시 일반인 혹은 의료인이 알 수 있도록 별도 표시를 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도 90.7%에 이르렀다. 위의 설문조사가 우리나라 의료인들의 인식을 모두 보여준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처럼 의학적 근거와 상반된 정보와 반인권적인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병원에서의 HIV감염인 차별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번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는 한 사례에 국한된 것이라기보다 HIV감염인을 제일 많이 진료하는 병원에서조차 진료거부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병원에서의 HIV감염인 차별에 대한 심각성을 경고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A대학병원은 지체 없이 HIV감염인 치료에 있어 차별적인 관행을 고치고 인권교육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또한 보건복지부는 A대학병원뿐만 아니라 모든 의료기관이 HIV감염인의 진료를 거부하는 일이 없도록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덧붙임

권미란 님은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