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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 ‘벌거벗은 임금님’ 헌법재판소 (2)

헌재의 호모포비아와 왜곡된 성폭력 관념

합헌 결론을 이미 전제한 ‘심판 대상의 축소’

한편, 합헌 의견과 위헌 의견은 모두 위헌법률심판의 대상을 군형법 제92조 전체가 아니라 “기타 추행” 부분만으로 한정해서 판단했다. 위헌 제청된 본래 사건에서 피고인이 ‘계간행위’가 아닌 ‘추행행위’로 기소된 것이기 때문에 심판대상을 축소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합의에 의한 사적 성행위를 처벌하는 것의 위헌성을 심사하는 이상, 그 행위의 한 형태인 ‘계간’ 역시도 당연히 심판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헌재가 밝히듯 ‘계간’은 ‘기타 추행’의 유일한 예시이므로, ‘계간’ 부분 없이는 ‘기타 추행’의 의미가 무엇인지 판단할 수도 없다. 만약 이렇게 심판대상을 축소한 후 “기타 추행” 부분만이 위헌으로 결정되었다면, 그 부분의 효력은 없어지게 되고 군형법 제92조는 “계간을 한 자는 1년 이하에 징역에 처한다”라는 조항으로 바뀌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실제로는 ‘계간’ 행위 역시 위헌적이라는 심판 결과가 나오더라도 ‘계간’ 부분은 군형법에 남아 ‘위헌이지만 위헌이 아닌’ 모순적인 결과가 발생하게 된다.

이런 점까지 생각해 본다면, 결국 헌법재판소(아래 헌재)는 “계간을 한 자”를 징역형으로 처벌하는 것은 아예 헌법적으로 문제가 없음을 전제하고 심판했다거나, 이 조항 전체가 이미 합헌이라고 인정한 채 심판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적법하게 위헌제청된 법률에 대하여 ‘위헌성 여부를 심사’해야 할 헌법기관이, 스스로 그러한 권능을 부여한 헌법을 어겨가면서 ‘합헌성 정당화’만 하고 있었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동성애혐오를 담은 피켓. 헌재의 시각도 다르지 않다.

▲ 동성애혐오를 담은 피켓. 헌재의 시각도 다르지 않다.


헌법재판소의 호모포비아

헌재는 어떻게 이렇게 ‘위헌적인’ 심판을 하게 되었을까? 이는 기본적으로 헌재의 동성애혐오증(호모포비아)에서 비롯된다. 이미 언급했다시피 헌법재판관들은 현실과 달리 동성애자가 마치 성폭력을 저지를 가능성이 큰 것처럼 접근했고, 이미 첫머리부터 “동성애는 혐오적이고 비도덕적”이라는 도식을 제시하였으며, 이성 간의 성행위에 대해서는 단순히 ‘성적 교섭행위’라고 표현하면서 동성 간의 성행위는 굳이 ‘비정상적인 성적 교섭행위’라고 하면서 “동성애는 비정상적”이라는 도식까지 명시하였다. 또한 “동성 간의 성적 행위와 이성 간의 성적 행위에 대한 차별은 차별적 취급으로 인하여 관련 기본권에 대한 중대한 제한을 초래할 사정이 발견되지도 않는다”고 하면서 동성애에 대한 차별로 인해 기본권의 중대한 제한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아 버린다. 심지어 위헌의견을 낸 김종대 재판관은 위헌의견을 추가로 보충하면서 ‘군의 정신전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군내에서의 동성애를 금지할 필요성이 있다’라고까지 한다. 이성애는 금지하지 않아도 되고 동성애는 금지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렇게 호모포비아를 당당하게 이름을 걸고 표출하는 것을 보면 아득하기까지 하다.

평등원칙 위배를 심사해야 하는 헌재가 처음부터 이렇게 동성애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동성애를 차별하고 있는데, 대체 이런 차별은 어디다가 심판을 요청해야 하나. 일찍이 유럽인권재판소는 영국의 동성애자 군복무 금지정책이 유럽인권협약을 위반하는지 여부를 심판한 사건에서,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공동생활이 군인들 사이에 혐오를 불러일으키고 군 작전 수행능력의 저하를 가져온다는 영국 정부의 주장에 대해 “편견에 가득 찬 주장으로서 증명되지 않는 명제”라고 일축한 적이 있다. 한국의 헌재야말로 이렇게 동성애혐오증(호모포비아)에 사로잡혀 “편견에 가득 찬 증명되지 않는 명제”로 동성애를 차별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성과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관념

헌재의 결정문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헌재 결정의 이면에는 “남녀간의 섹스는 섹스이지만, 남성간의 섹스는 성폭력이고, 여성간의 섹스는 섹스가 아니다”라는 왜곡된 관념이 있다는 것이 확인된다. 남성간의 섹스를 처벌하는 것의 위헌성을 판단하면서, 자꾸만 남성간의 성폭력을 처벌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도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도식 속에서는 남성이 둘이서 섹스를 했다고 계속 주장해도 그건 성폭력 또는 추행으로 추정되고, 여성 둘이서 섹스를 했다고 이야기하면 그건 섹스도 성폭력도 아닌 것이며, 남성이 여성에 대해 성폭력을 가해한 경우에도 일단 그것은 섹스로 추정되는 것이다. 이것은 순전히 이성애자 남성의 시각이 특화된 것에 불과하다. 페니스가 두 개이면 오직 폭력인 것처럼만 보이고, 페니스의 등장 없이는 섹스가 가능하지 않을 것만 같은 이 빈한한 상상력과 동성애공포증(호모포비아)을 헌재는 그대로 결정문에 투영시킨다.

이 도식의 의미를 이렇게 살펴보면, 결국 이와 밀접히 관련된 도그마가 “성폭력은 섹스의 일종이다”라는 것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성폭력은 ‘폭력’이지 ‘섹스’가 아니다. 따라서 성폭력을 규율하는 것과 섹스를 규율하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을 다루는 것으로서 그 방법이나 규제의 정도도 달라야 한다. 그런데도 헌재는 이런 단순한 논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군형법 제92조가 폐지되면 군대 내에서 동성 간 성폭력을 규율할 수 없다고 호들갑을 떠는 국방부의 주장들도 이런 차이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다.

군대 내 성폭력은 그것이 이성 간에 발생하건 동성 간에 발생하건 실효성 있게 규율해야 한다. 그래서 군형법에 성폭력을 일반형법에 비해 중하게 처벌하는 조항들이 규정되어 있다. 군형법 제92조는 성폭력을 규율하기 위한 조항도 아니므로 성폭력이 일어날 가능성을 근거로 이 조항의 존재근거를 삼을 수는 없다. ‘군대 내에서 마지못해 상관의 요구 때문에 성관계를 하는 경우를 어떻게 처벌해야 하는가?’라고 반박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 역시 당연히 성폭력을 처벌하는 규정에 의해 처벌받아야 하는 것이지, 합의에 의한 성관계를 무조건 처벌해야 한다는 근거가 될 수도 없다. 성폭력과 섹스가 다르다는 단순한 논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성폭력도 섹스의 일종’이라는 말은 기실 성폭력을 저질러놓고서는 ‘상대방도 즐겼다’, ‘화간이다’라고 주장하는 이성애자 남성들의 폭력적 관념구조일 뿐이다.

군형법 92조 합헌 결정을 규탄하기 위해 헌법재판소 앞에 모인 사람들.

▲ 군형법 92조 합헌 결정을 규탄하기 위해 헌법재판소 앞에 모인 사람들.


사회의 인권 수준이 후퇴하고 있다

사실 헌재는 군형법 제92조에 대하여 이미 판단한 바가 있다(헌법재판소 2002. 06. 27. 선고 2001헌바70 결정). 당시의 합헌의견은 거의 유사한 취지로 이번 결정에서도 반복됐다. 그러나 위헌 의견은 달랐다. 당시 2명의 헌법재판관은 강제에 의하지 않은 동성 간 성적 행위가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에 어떤 위해를 가한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국제적으로 동성 결혼의 인정이 확대되고 있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국가인권위원회법의 제정으로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평등권 침해로 인정하기에 이르렀으므로 강제에 의하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행위를 금지하고 징역형으로 처벌하는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어 위헌이라고 명시했다.

약 10년 전에도 이러한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했고, 이번 위헌제청사건에서는 이를 뒷받침하는 논거들과 해외사례를 공개변론과 변론요지서, 각종 참고자료 등을 통해 제시하였지만 어째서 더 헌재는 후퇴한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일까? 헌재의 인권의식 수준이 10년 전보다 더 후퇴했다는 것은 결국 전반적인 이 사회의 인권의식의 후퇴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소수자에 대한 인권 수준은 대다수의 인권 수준을 가장 잘 반영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또 한편으로 뒤집어 보면 인권의 후퇴를 방어해야 할 헌재가 도리어 차별과 인권침해의 논리를 설파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헌재 결정이 모든 이들의 문제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벌거벗은 임금님’ 헌법재판소

헌재의 이번 결정의 또 하나의 중요한 근거는 ‘안보상황’과 군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이라는 특수성 때문에’를 반복하는 것은 기본권 보장을 위해 존재하는 헌재가 할 말이 아니다. 진정으로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을 옹호한다면, ‘군이라는 특수성이 있다 하더라도’라는 접근을 하는 것이 우선적이고, 상식적이다. 그러나 헌재는 군대 내의 기본적 인권의 보장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너그러운 태도를 보인다. 국방부의 불온서적 금지 사건에서도 헌재는 헌법의 이름으로 면죄부를 주었다. 이런 헌재의 태도 때문에 국방부는 헌법 위에 앉아 반성할 줄을 모르고, 인간의 존엄성을 살필 새 없이 ‘뺑이만 치는’ 군대 이야기는 네버 엔딩 스토리이다.

이렇게 헌재는 이번 결정에서 호모포비아와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도그마, 그리고 군대 내 인권침해에 대한 너그러움을 가지고, 단순한 논리적 오류를 수차례나 반복하면서 ‘군대 내 동성애는 무조건 처벌, 이성애는 괜찮음’이라면서 차별을 가한다. 헌법의 이름으로 자행된 차별을 우리는 어디에다 호소해야 하나.

작년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은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인권이사회 회의에서 각국에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법률을 철폐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군형법 제92조 같은 법률을 폐지하란 뜻이다. 이런 국제적 흐름을 타지 못하는 헌재는 정말이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만 이 말을 전한다면 헌재는 또 다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것은 차별 아니다.” 스스로만 벌거벗은 줄 모른 채 행진하는 ‘벌거벗은 임금님’이 따로 없다. 그렇다면 일반 시민들이 알려주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 이 사회의 인권 후퇴를 막고 이 사회를 보호할 수 있다. 우리가 다그치고 말해줘야 한다. 헌재는 마냥 벗어놓은 헌법의 옷을 지금 입어야 한다고.
덧붙임

가람 님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침해․차별 신고 및 지원을 위한 네트워크’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