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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문헌읽기] 이란의 애도하는 어머니들(Iran's Mourning Mothers)의 연대 메시지

‘애도’가 절실한 시절이다. 지나친 슬픔이란 없다. 슬퍼하고 또 슬퍼할 뿐이다. 연이은 죽음의 소식들에 문득 흘러간 동영상을 찾아보게 됐다. 80년대 한국 사회에선 많은 젊은이들이 독재에 저항하다 죽어갔다. 장례식은 흔한 광경이었다. 한 장례식에서 민주화운동의 지도자였던 문익환 목사는 연단에 올라 추모사 대신에 민주화를 위해 죽어간 이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애절하게 불렀다. 1987년 이한열 열사 장례식 때였다.

난 그때 그 자리에 없었다. 그 다음 해에 다른 곳에서 나는 문 목사의 절규를 듣게 됐다. 문 목사는 연단 위가 아니라 연단 아래에 섰다. 두 팔을 벌려 하늘을 어울러 받들었다. 그리고 애절하게 부르기 시작했다. “전태일 열사여, 김세진 열사여, 박종철 열사여, 이한열 열사여….” 한없이 이어진 외침이 수십 분 넘게 이어졌던 것 같다. 죽어간 이들이 그리도 많았던 것이다. 가슴이 먹먹해지던 순간이었다.

강산이 몇 번이 바뀌었지만, 요즘 들어 ‘◯◯여!’를 목 놓아 부르고 싶은 심정인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오늘, 우리가 부를 이름이 참으로 많기 때문이다.

자신이 죽으면 장애아들이 정부지원을 받을 거라며 목을 맨 아버지여!
고시원비가 밀리고 살기 힘들다며 물에 뛰어든 10대 소녀여!
등록금이 없어서 불 피우고 목 조르고 약을 먹은 청춘들이여!
쪽방에서 나 홀로 죽음을 맞는 노인들이여!
직업병 인정도 못 받고 직업병으로 죽은 일류기업의 노동자여!
예술로 밥 먹으려 하냐는 조롱 속에 죽어간 창작자여!
직장에서 쫓겨나고 가족 잃고 화병 얻어 죽어간 노동자여!
우리의 탐욕 때문에 산채로 묻혀 죽은 돼지와 소들이여!
땅 장사를 불필요한 삽질을 정화사업으로 포장하여 죽어가는 강들이여!

슬퍼해서 어쩔 거냐고 묻기 전에 일단 깊이 슬퍼하자. 애도가 우리 할 일의 시작이지 않을까 한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이란의 ‘애도하는 어머니들(Mourning Mothers 또는 Park Laleh Mothers)’의 연대 메시지이다. ‘애도하는 어머니들’은 ‘검은 상복의 어머니들’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가 정권에 목숨을 잃은 피해자 가족들의 모임이다.

[사진 출처: Asian Human Rights Commission, www.humanrights.asia]

▲ [사진 출처: Asian Human Rights Commission, www.humanrights.asia]


1988년, 40여 명의 이스라엘 여성들이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을 예루살렘에서 결성했다. 이 여성들은 팔레스타인 봉기에 대해 웨스트 뱅크와 가자지구 침공으로 대응한 이스라엘 당국에 맞서 항의했다. 이어서 아랍 여성들도 ‘전쟁, 부정의, 군사주의’에 대항하여 평화를 요구하는 운동에 참여했다. 같은 해 이란에서는 정치적 양심수들에 대한 무자비한 살상이 저질러졌다.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4,500명에서 1만 명에 이르는 이란의 정치수들이 이 해에 살해되거나 실종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들의 가족들은 죽은 이의 시신조차 받지 못했고, 어떤 식으로든 장례를 치르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학살된 이들은 대량 매장된 것으로 알려졌다. ‘애도하는 어머니들’은 이에 맞서 싸웠고, 80년대의 파국을 반복하지 말라는 운동은 3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계속되고 있다. 2010년 1월에는 ‘애도하는 어머니들’의 회원 상당수가 체포되기도 했다.

‘애도하는 어머니들’은 이란의 테헤란에 있는 라레 공원에서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모여 침묵시위를 한다. 무슬림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던 이란의 인권운동가 시린 에바디(Shirin Ebadi)는 전세계 어디에서나 토요일 저녁 7시에서 8시 사이에는 검은 옷을 입고 연대를 보여달라고 호소한 적이 있다.

‘애도’를 계속하고 있는 이들 어머니들이 최근 민중항쟁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튀니지와 이집트의 어머니들에게 연대의 메시지를 발표했다. ‘같이 슬퍼한다.’는 말보다 더 큰 연대는 없을 것 같다.

민주화 운동을 위한 투쟁, 그리고 오늘날 ‘삶’을 위한 투쟁의 목표가 다르지 않고, 정권의 폭력에 의한 희생과 기업과 시장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 사회의 방호벽 없이 쓰러져간 이들의 희생이 다르지 않다. 부디 우리의 깊은 애도를 받아달라고 손 모아 빌고 싶다.

이란의 애도하는 어머니들(Iran's Mourning Mothers)이 최근의 민중항쟁에서 자녀를 잃은 튀니지와 이집트의 어머니들에게 보내는 연대의 메시지(2011년 2월 1일)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여러분에 대한 우리의 공감과 깊은 애도를 받아주세요. 모하메드 부아지지(Mohammad Buazizi, 경찰의 모독과 압수에 분신 항거한 튀니지의 28살 난 노점상)의 경우처럼 자유와 더 나은 삶 말고는 요구한 바 없는 이들이, 이란에서 우리의 젊은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생명을 잃었다는 소식에 우리는 아주 비통했습니다.

당신들의 목소리가 전해졌고 당신들의 나라가 승리를 느끼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압니다. 당신들이 자녀를 잃고 비통해하고 있다는 것을요. 자녀들이 결코 못 돌아올 길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떠남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유의 달콤한 향기를 가져다 줄 겁니다.

우리는 우리의 연대 운동에 동참을 호소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고통과 슬픔을 더 큰 목소리로 함께 외치고 우리의 모성애를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퍼뜨릴 수 있도록요. 우리가 말하는 모성애는 세계의 우정과 평화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사랑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고 평화와 자유를 주장합시다.

우리, ‘이란의 애도하는 어머니들’은 그날을 소망합니다. 자유가 자녀를 잃은 우리의 슬픔을 줄여줄 그날을. 우리는 그날을 소망합니다. 모든 정치적 양심수들이 풀려나고, 고문과 사형이 폐지되고, 우리의 모든 나라들에 이런 극악한 행위를 저지른 책임자들이 정의의 심판을 받게 될 그날을. 그렇게 해야 인권 침해의 비밀은 드러나고, 우리는 어떤 공포도 없이 우리의 남아있는 자녀들의 미래를 건설하는데 집중할 수 있을 겁니다.
덧붙임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