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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노동자’로 모이다

유령이 아닌 노동자로! 청소노동자 행진

이제껏 그들은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었다. 청소부, 환경미화원, 등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던 그들이 오늘은 ‘노동자’라는 단순하지만 의미 깊은 이름으로 불리는 날. '청소노동자'라는 낯선 이름 앞에 6월 5일 마로니에 공원에 모인 청소노동자들은 대략 200명에서 300명가량. 그 외 청소노동자의 행진을 지지하는 시민까지 합치면 500명가량의 사람들이 이곳에 모였다. 아무도 자신들을 노동자라고 부르지 않았고, 스스로도 노동자가 아닌 유령인 것처럼 살았던 그들은 처음으로 노동자의 이름으로 한 자리에 모였다.



그들의 숨겨진 삶은 아픔이었다. 어느 직장을 가나 밥 먹을 시간과 장소는 보장이 되는 법인데, 그들은 최소한 먹을 곳도 시간도 없었다. 쉼 없이 일하고 받는 월급은 최저임금 수준에 못 미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참고 일하고, 자식들을 먹여 살리고, 집안을 꾸려 나갔다. 나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모두들 겪는 일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부당한 일이었다. 그리고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서는 뭉쳐야 했다. 왜냐하면 다른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이 사회의 노동자이므로. 아무 것도 안하고도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도 있는데, 열심히 일하고도 법으로 정한 그 대가조차 받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억울한 일이므로. 최소한 노동자로, 인간으로 대접받아야 할 그 중요한 것이 지켜지지 않고 있으므로. 2009년 10월. ‘따뜻한 밥 한 끼’ 조차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는 열악한 노동 조건의 청소 노동자의 사정이 알려지면서, ‘따뜻한 밥 한 끼’ 캠페인을 위한 준비 모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3월부터 시작된 캠페인으로 청소노동자의 사정이 시민들에게 알려지고, 시민들의 마음이 모아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유령이 아니다

조그만 움직임 속에서, 이제까지 노동조합에 가입한 청소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자리에 모이는 행진이 기획되었다. 이제까지 각 대학별로 청소노동자들이 모인 적은 있었지만 청소노동자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이는 자리는 처음이었다. 이 사회에서 유령 취급을 받았던 그들이 스스로 ‘노동자’로서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날. 6월 5일, 마로니에 공원에서 3시로 계획된 그 행진을 위해 준비하는 손길들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 사회에 숨어 살던 그들이 모였다. 모이니까 많다. 많으니까 힘이 된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함께 하니까 더 이상 무섭지 않다. 함께 목소리를 모아 ‘우리는 노동자!’라고 외쳐 본다. 청소노동자를 위한 지지메시지들도 낭독되었다. 코미디언이며 지금은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는 김미화 씨는 ‘전 여러분은 엄마 같은 분이라 생각해요. 없으면 표 확~나는 엄마 있잖아요.’라는 지지메시지를 보냈고, 강미현 건축사는 ‘이제부터라도 건물을 설계할 때는 근로약자를 위한 공간을 꼭 배려하겠습니다.’라는 메시지로 청소노동자를 응원했다. 연세대학교 청소노동자들로 구성된 에어로빅팀이 분위기를 한껏 살렸고, 이화여대 청소노동자들도 트로트를 개사한 곡을 멋들어지게 불러서 앵콜 요청까지 소화했다. 마지막 민중가수 류금신 씨의 무대 때에는 앰프가 꺼지는 사고가 있었음에도 청소노동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한 목소리를 내고 박수를 하며 음악이 끊어진 간극을 메웠다. 음악이 나오지 않아도, 30도를 웃도는 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그들은 자리를 떠날 생각을 않고 박수를 하고 입을 모으며 그렇게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이것이 집회가 아니라 ‘축제’였음을 깨닫는다. 억지로 모여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닌, 함께 즐기고 누릴 수 있는 축제. 모인 사람 모두가 직업과 나이를 막론하고 모두 소중한 존재가 되는 축제. 그러므로 그것은 청소노동자만을 위한 자리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서로 존중하는 가운데 결국 존중받는 것은 스스로라는 사실을 우리는 서로를 보는 눈빛 속에서, 웃음 속에서, 손뼉 속에서 가슴 벅차게 느끼고 있었다.

세상을 향한 외침, 우리는 노동자!

노래로, 춤으로, 삶으로, 꿈으로 하나 되는 청소노동자의 축제는 거리 행진으로 마무리된다. 연세대학교 청소노동자들과 대학생들로 구성된 풍물패가 앞장을 서고, 그 뒤를 무수한 청소노동자들이 따랐다. 이제껏 그렇게 많은 수의 청소노동자가 함께 거리를 걸었던 적이 있었을까. 그것도 당당하게 분홍색 풍선을 들고. 이제까지 유령처럼 살았던 청소노동자들은 오늘 이 거리의 주인공이 되고, 이제껏 그들이 먼저 비키기를 기다렸던 시민들은 자신들이 먼저 비켜주며 호기심이 담긴 눈으로 청소노동자의 행진을 본다. 다시 마로니에 공원으로 돌아왔으나 축제는 끝나지 않았다. 시간제한이 없었다면 밤새도록 놀 기세였다. 풍물패들이 신나게 연주하는 가운데 너나 할 것 없이 어우러져 춤추기 시작한다. 무대와 관객, 말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 버리는 사람과 치우는 사람, 모든 차별과 편견이 그 순간만큼은 저만큼 밀려난 듯이, 이곳이 우리가 꿈꾸었던 그 모든 것인 듯이.

마지막으로 우리는 분홍 풍선을 든 채 가운데로 모였다. 그리고 함께 마음을 모아 ‘우리는 노동자!’를 외치고 우리의 손에서 이제까지의 행진을 아름답게 꾸며준 분홍 풍선을 날려 보낼 준비를 했다. 하나, 둘, 셋! 함성과 함께 분홍 풍선들이 하늘을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이제껏 억눌렸던 그들의 소망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빛깔로 하늘을 수놓는다.



축제의 끝. 그리고 시작. 행진은 풍선을 날리는 것으로 끝이 났으나 그들의 진짜 행진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청소 노동자’로서.

덧붙임

옥수수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사회권팀 자원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