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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식 ‘정치’ 검찰의 무리한 기소

법원 무죄 판결 잇따라

최근 몇 가지 중요한 시국사건에 대해 법원의 무죄판결이 잇따르면서 검찰과 정치권의 반발이 크게 표출되었다. 여러 사건에 대한 정치적 입장이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법원의 결정에 대해 검찰이 승복할 수 없다거나 판사가 정치적·이념적으로 편향되어 있는 결과라거나 하는 감정적 반응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사법부는 법적으로 문제된 사안에 대해 최종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는 헌법 기구이고, 사건의 당사자인 검찰로서는 상급법원에 상소할 수 있는 정상적인 방법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수단체가 판사 개인에 대한 과격한 시위나 집권당의 대표나 국회 원내대표와 같은 비중 있는 정치인들이 사법부에 대해 내놓은 직설적인 비판을 보면 이들이 오히려 문제를 정치적으로 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하튼 정치적 압박에 밀려 사법부는 스스로 법원 개혁방안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형사단독 판사에 대해 최소한의 경력을 요구한다거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의 경우 형사단독판사 3인으로 구성된 재정합의부에 배당할 수 있다는 것 등이 주요 내용이다. 이것은 보수정치권의 요구를 일면 수용하면서도 그 동안 법원 안팎에서 요구한 내용을 반영한 지혜로운 해결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앞으로 진행상황과 결과를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법원의 개혁은 사법개혁의 중요한 의제이다. 이미 지난 10여년 전부터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법원 개혁방안이 여러 차례 제시되었다. 여기에는 법원 내부 관료조직의 핵심체로 꼽히는 법원행정처의 개편이나 평판사와 부장판사, 법원장, 대법관으로 이어지는 법관들의 계층구조를 포함한 인사제도의 개혁이 주요 내용이다. 따라서 이번 법원의 개혁방안이라는 것은 이와 같은 핵심적인 내용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다소 부분적인 것이다.

검찰 개혁, 사법개혁의 우선 과제

그런데 검찰의 경우는 어떠한가? 검찰 개혁이야말로 지난 수년간 사법개혁의 첫 번째 과제로 인식되어 왔다. 최근 검찰이 법원의 판결에 대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것도 이렇게 몇 년간 계속되어 온 검찰의 수세적 입장에서 비롯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여하튼 검찰로서는 법원 판결의 편향성이나 이에 따른 법원의 구조개혁이 거론되는 상황이 싫지만은 않을 것이고 사법개혁의 관심이 다시 자신들에게 돌아오지 않도록 몸조심(?)하려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전국검사회의에서 검찰총장이 말했다는 검사들의 단합요청이나 ‘의연하고 당당하게 대처’하라는 발언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제도개혁의 문제를 떠나 이번 사건들의 구체적인 내용과 관련하여 검찰의 무리한 기소가 문제의 원인이었음을 지적하는 견해가 많다. 예컨대 정연주 전 KBS 사장은 국세청과의 행정소송에서 법원이 제시한 조정안을 받아들였을 뿐인데 이에 대해 배임죄의 혐의가 적용되었다. 또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는 국회에서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폭력행위에 대해 공무집행방해죄로 기소되었다. 법원은 단순폭행죄라면 몰라도 공무집행방해죄는 인정되지 않는다며 검찰에 공소장 변경까지 요구했지만 검찰은 응하지 않았다. 또한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에 대해서는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을 넘어 자연인으로서 정부당국자의 명예를 훼손했고 쇠고기 수입업자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것이 기소의 내용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범죄혐의가 담당 판사가 특별히 진보적인 이념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일반적인 법률가의 시각에서 볼 때도 형사기소할 정도의 중요성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소권을 갖고 있는 검찰이라 하더라도 모든 범죄사건을 다 기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할뿐더러, 수사기관이 발생하는 모든 범죄를 파악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형사소송법은 검찰에게 자신이 수사한 사건이라 하더라도 그 중요도에 따라 기소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인정해 주고 있다. 이를 기소편의주의라 한다. 기소편의주의를 도입한 취지는 수사기관과 법원의 업무 부담을 고려하고 전체적인 국가의 정책이나 사건의 개인적·사회적 영향 등을 감안한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기소재량 또는 기소권이 공정하게 행사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가령, 기소해야 할 범죄사건을 기소하지 않거나 반대로 기소하지 않아도 될 사건을 무리하게 기소하는 경우이다. 전자에 대해서는 우리 법률이 검찰에 항고제도나 법원에 재정신청 등으로 고소인이나 고발인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뚜렷한 법적 구제수단이 없다. 후자의 경우를 가리켜 검찰의 ‘공소권 남용’이라고 한다. 여러 명의 피의자 가운데에서 특정한 사람만을 선별적으로 기소한다거나 검사 개인과의 특별한 관계로 인해 어떤 사람을 보복기소하는 경우 등이 그 예가 된다.

검찰이 노리는 것들

물론 이같이 남용된 기소에 대해서도 피고인이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으면 된다는 해결책이 있다. 앞서 예로 든 최근의 사건들이 이런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문제는 수사에서 구속, 기소와 재판을 거치는 형사절차가 피고인에게 신체, 정신적으로 적지 않은 충격과 피해를 주고 있다. 무죄를 선고 받기 전 100여일 동안 구속되어 있었던 박대성씨(미네르바)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뿐만 아니라 검찰은 기소를 통해 법원의 재판결과와는 관계없이 애초 자신들이 의도했던 바를 이룰 수 있다. 미네르바와 PD수첩의 기소를 통해 언론의 자유는 위축되고 정부에 대한 비판은 어느 정도 통제될 수 있었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을 기소하겠다는 엄포, 그리고 실제로 대표적인 몇몇 사람에 대한 수사와 기소는 시민들의 정치적 표현과 집회의 자유를 봉쇄하는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문제는 처음부터 ‘정치적인 것’이었다. 검찰은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당의 의도를 고려하여 민감한 시국사건에 대해 법적으로 무리한 기소를 감행하였고, 법원의 무죄판결이 잇따르자 이제 판사 개인의 정치적 성향 탓이라고 몰아붙인다. 보수언론과 정치권이 검찰의 주장에 장단을 맞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기소된 피고인들의 개인적인 고통은 물론이고 사회 전체적으로 언론과 표현의 자유 등 정치적 자유는 위축된다. 이러한 모든 사태에 작용한 검찰의 정치적 의도는 무엇일까. 기회만 있으면 ‘엄정중립’을 강조하고 ‘정권의 검찰’이 아닌 ‘국민의 검찰’을 내세우는 습관(?)에도 불구하고, 이 정부 들어 청와대의 민정수석과 검찰 수뇌부 사이에 핫라인이 부활하고 시국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들이 검찰 내 여러 요직으로 승진하였다는 사실은 검찰, 특히 고위직 검사와 정치권력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해묵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또 문제인 것이다.

덧붙임

최정학 님은 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