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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위의 밀월심사, 어디까지?

사상통제 저항하며 인권영화제 행정소송 제기

돈으로 협박하는 것보다 치사한 일은 없다. 더구나 그 주체가 국민의 동의를 얻었다고 하는 최고 권력을 가진 국가기구라면 말이다. 국가 기구 안에 ‘자리들’을 차지한 소수 몇몇이 ‘공공자원’을 이용해 선택하고 배제할 수 있는 권력을 휘두를 때, 우리는 국가의 존재에 대해 의심할 수밖에 없다.

1월 28일 인권운동사랑방 <인권영화제>와 인디포럼작가회의, 참여연대 <공익법센터>는 영화진흥위원회(위원장 조희문, 아래 영진위) 앞에서 ‘2009 인권영화제 사업지원거부를 취소하라는 행정소송’을 하며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1월 28일 영화진흥위원회 앞에서 ‘2009 인권영화제 사업지원거부를 취소하라는 행정소송’을 하며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있다.<br />

▲ 1월 28일 영화진흥위원회 앞에서 ‘2009 인권영화제 사업지원거부를 취소하라는 행정소송’을 하며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있다.



2009년 12월 24일 영진위는 2009년 영화단체 지원사업에 응모한 인권운동사랑방과 인디포럼작가회의 등에 대해 “불법시위를 주최, 주도하거나 적극 참여한 단체”에 보조금 지급을 제한하라는 기획재정부 「09년 예산 및 기금운영계획지침」에 따라 지원을 거부했다. 기획재정부의 지침 역시 문제이지만, 스스로를 “독립성을 보장받는 분권자율기관”이라 칭하는 영진위가 그 지침을 그대로 수용했다는 점은 예술 활동마저도 정권의 입맛에 맞게 길들이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인권영화제가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기자회견을 개최한 것은 기획재정부의 예산지침을 따르는 영진위의 결정이 ‘위법’하고 ‘차별’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영진위는 인권영화제 지원 거부의 근거로 「09년 예산 및 기금운영계획지침(기획재정부, 아래 지침)」이행을 제시하고 있다. 지침에는 “불법폭력 집회, 시위 참여단체에 대하여는 지원을 제한한다”는 내용이 있다. 그렇지만 인권운동사랑방이 인권영화제를 주최하는 것은 불법집회와는 아무 관련이 없고 불법집회를 개최한 적도 없다.

영진위는 사업지원을 판단할 때, 인권영화제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노력이나 문화공공성을 증진하기 위한 잣대가 아닌 불법집회참가 여부에만 초점을 두었다. 2009년 4월 말 영진위 영상문화조성팀 김종호 팀장은 인권영화제로 전화를 걸어 “인권영화제가 작년 촛불 집회에 나간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했고 5월 초에 또다시 전화를 걸어 “광우병대책위에 소속되었느냐?”라는 질문을 했다. 이렇듯, 영진위는 직간접적으로 인권영화제에 대한 판단(촛불 집회 참가 단체)을 통해 인권영화제를 선정대상에서 배제시켰다. 영진위의 결정은 매우 자의적인 공권력 남용에 해당한다. 비단 인권영화제 뿐만 아니라 기획재정부 ‘지침’에 따라 정부에 비판적인 사회단체들도 재정적인 불이익을 경험하고 있다.

박주민 변호사는 “인디포럼작가회의는 촛불집회에 참가하지도 않았고, 인권운동사랑방은 2008년 촛불집회를 주최한 광우병대책위 소속도 아니었다.”며 “영화발전기금을 제한하는 이유와 불법집회 참가가 관련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무엇보다 박주민 변호사는 ‘불법집회 참가’ 사유가 ‘불법’에 대한 불이익을 준 것이 아니라 ‘정부비판’에 대한 불이익을 준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즉 국가가 지원금을 통해 사상통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함께 행정소송을 기획한 참여연대 공익법 센터 박경신 소장은 기획재정부 지침에 따라 지원 단체를 선별하는 행위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이어야 할 국가기구가 재원을 분배하는 데 있어서 차별 행위라고 지적했다. 정부와 다른 정책이나 입장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이유로 공공재를 분배하는 데 있어서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박경신 소장은 “정부보조금은 정부정책에 찬성하느냐 안하느냐로 정해지는 게 아닌 ‘공익활동’이다. 정부홍보비가 아니다. 관변단체만을 육성하는 게 아니다.” 고 주장했다. <공익법센터>는 “(인권영화제의 경우)예비심사점수가 월등히 높음에도 최종심사에서 탈락된 예가 없던 전례를 깨고 재심의할 것이라는 답변만을 되풀이하다가 2009년 12월 말에서야 재심의 및 최종결정을 하였을 뿐 아니라 탈락사유에 대해서도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렇듯 최근 영진위의 활동에 대한 비판은 독립영화계 전반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2009년도 사업 지원 뿐 아니라 독립영화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의 위탁업체 공모 결과도 납득할 수 없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기존 운영자들이 우수한 성적으로 평가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번 공모에서 줄줄이 탈락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운영자들의 자격에 대한 의심이 제기되고 있다.

인디포럼작가회의 이송희일 감독은 “영진위가 접신이 들렸는지 유령단체에 지원을 한다. 독립영화전용관의 새로운 운영단체는 ‘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다. 그런데 이 단체는 만들어진지 두 달밖에 안되었다. 소속인들 중 독립영화관계 인사가 아무도 없다.” 고 말했다. 이러한 영진위의 결정은 선정과정에서 어떤 검증절차를 거쳤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지원거부 행정소송과 영화인들의 적극적인 반대 움직임은 단순히 국가의 지원이나 자본의 수혜를 받겠다는 요구가 아니다. 오히려 국가나 자본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선언과 같다. 정권이나 자본의 기준에 맞추지 않고 자율적인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영화계는 자생적인 활동을 다양하게 펼치고 있다. 미디액트를 다른 공간에 꾸리기 위한 움직임, 관객이 직접 씨네마데크를 만들기 위한 모금 운동 등이 그렇다.

국가는 자신의 말을 거스르면 ‘처벌’하겠다는 채찍을 동원하면서도 내 말을 잘 듣고 나에게 반대하지 않으면 ‘당근’을 주겠다는 정책을 노골화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의도대로 사회단체와 독립영화단체들이 길들여지지는 않을 것이다. 영진위의 위법과 차별 행위를 재검토할 몫은 이제 사법부로 넘겨졌다.


덧붙임

윤미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자원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