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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에 비친 인권 풍경] 국가 폭력의 현실과 피해자들 ②

‘가해자가 될 수도 있는 피해자’인 전,의경의 현실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경찰의 강경진압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촛불정국과 올해 초 용산참사, 지난 6·10 범국민 대회 등만 살펴보더라도 최근 경찰의 폭력진압의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경찰’과 ‘폭력’이 함께 이야기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제가 전·의경이다. 이들은 커다란 집회나 시위가 있을 때마다 현장에 동원되는 역할만 아니라 강경진압이 문제시 될 때마다 경찰의 책임자가 아님에도 경찰‘대표로’ 온갖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실제 그들에게 주어진 권리는 매우 적다. 양심에 따라 시위 진압을 거부했던 이길준 의경은 1년 6개월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한 마디로 전·의경은 위로, 아래로 ‘낀 사람들’이다. 달리 말하면 구조적으로 국가권력-국가폭력의 대리인으로서 폭력 행사를 종용받아서 ‘낀 사람’이기도 하며, 현장에서는 시위대와 보호해야할 권력자 사이에 ‘낀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러하기에 국가폭력의 또다른 피해자라는 말이 나온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2007년 4월부터 2009년 3월까지 의경으로 복무하였던 전 방범순찰대 소속 K씨(25)를 만나보았다.

자신의 의경시절 경험을 얘기하고 있는 모습

▲ 자신의 의경시절 경험을 얘기하고 있는 모습


처음 의경에 지원하게 된 계기는?

의경의 경우는 지방보다 서울에 자리가 많아서 서울에 배치 받을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집이 서울이라서, 서울 쪽에서 복무하고 싶었다.

의경의 일반적인 업무는 어떤 것들이 있나?

평상시에는 경찰 직원들과 함께 교통업무를 하거나 방범순찰을 도는 것이 방범순찰대의 주된 업무이다. 그러나 관할 구역 내의 집회나 큰 집회가 일어나게 되면 집회 현장에 지원을 나가게 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수면 부족과 열악한 식사환경, 격심한 노동 강도 등의 측면에서 전·의경 제도를 강제노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근무환경은 어땠나?

군생활 자체는 어디나 힘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의경생활이 일반 군복무에 비해 특별히 힘들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집회현장에 나가 있을 때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고 말할 수는 있다. 보통 집회가 시작되기 몇 시간 전부터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촛불시위 때는 3박 4일을 버스에서 살아야 했던 적이 있다. 일일 3교대 원칙이 지켜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잠은 버스에서 자야 했다.

지난 6·10 범국민대회 후 강제 해산과정에서 경찰이 시민들을 방패와 삼단봉으로 폭행하는 충격적인 영상이 공개되었다. 이를 두고 경찰 측은 현장 대원의 개별적인 판단이라 일축했다. 이에 대해 경찰 고위 관계자의 책임회피라는 비판이 많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실제 시위현장은 아주 급박하다.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서는 신중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여유가 없고 판단에 착오가 생길 수 있다.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흥분 끝에 격한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위치에 그 대원을 서게 한 것은 결국 경찰고위관계자 아닌가? 결국은 경찰 고위관계자가 안고 가야할 문제이다.

경찰들의 과잉진압을 거론하면서 빠지지 않는 것이 전·의경 비판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전·의경 역시 또 다른 피해자라는 시각도 상당수 존재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외부에서 우리를 피해자라고 얘기해 주면 고맙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우리의 상황을 이해해 주는 거니까.

의경에 지원을 할 때, 집회 시위 현장에 동원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몰랐나?

물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타의 시위와 촛불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촛불 이전에는 대체로 특정한 이익집단의 집회가 대다수를 이루었고, 거기에 필요한 집회관리(경찰은 ‘시위진압’ 대신 ‘집회관리’라는 용어를 쓴다고 한다.)는 어느 정도 예상을 했었다. 그러나 작년과 같은 촛불시위는 기존의 시위와 달리 국민 대다수의 뜻이었고, 공적인 이익을 위한 성격이 강했다. 그렇기 때문에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신념에 위배되었던 측면이 상당부분 있었다.

구체적으로 작년 촛불 때 집회현장에 동원되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당시에 이명박 대통령은 분명 잘못을 했고, 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집회현장에서도 ‘나와 맞선 사람들’이 아닌, ‘나와 내 뒤에 있는 사람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촛불시위대가 청와대로 진출하고자 했을 때는 막아야만 했다. 그것은 이명박 대통령 개인의 보호가 아니라 대통령 관저 보호 차원의 문제였다.

전·의경제도 폐지론에 대한 생각은?

찬성이다. 전·의경 제도는 없어져도 된다. 그런데 사실 문제는 전·의경 제도 자체보다는 업무내용에 있다. 본업무보다도 오히려 시위진압 업무가 주가 되고 있는 상황이 문제라는 거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전·의경이 항상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정부의 책임회피라는 느낌이 강하다. 집회관리는 직업경찰이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문제 생겼을 때, 책임론 공방도 줄고, 양심의 문제도 없을 것이다. 전·의경은 집회관리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2008년 경찰청 앞에서 촛불집회 보장과 전의경제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 (사진 출처 : 민중언론 참세상)

▲ 2008년 경찰청 앞에서 촛불집회 보장과 전의경제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 (사진 출처 : 민중언론 참세상)



K씨(25)는 지금 복무중인 전·의경 후배들에게 “부디 다치지 말고 무사히 전역하라”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그가 지적한 바와 같이 현 전․의경제도에서 가장 큰 문제는 업무내용에 있다. 대한민국 전·의경의 임무 어디에도 ‘시위진압’ 혹은‘집회관리’는 없다. 그렇다보니 지금 도 어딘가에서 자신의 양심과는 상관없는 시위진압을 위해 대기 중인 전․의경들이 있다.

국가 폭력이 물리적 폭력만이 아니라 개인에게 원치 않는 일을 강요하는 제도적 폭력까지 포함하는 의미라면, 분명 전․의경제도 그 자체가 국가 폭력임에 틀림없다. 폭력적 질서-제도인 전․의경제도가 없어지지 않는다면, 전․의경 같은 ‘국가 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도 있는 피해자’들은 끊임없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덧붙임

융(Jung)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