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오름 > 인권교육, 날다

[인권교육, 날다] 준비부터 인권교육은 시작된다

기획단계에서 꼼꼼하게 챙겨야하는 것들

인권교육에는 ‘기성복’이 없다. 꿈틀이의 체형이나 옷의 용도 등을 고려하지 않을 때 인권교육은 좀처럼 맵시를 내기 어렵다. 인권교육이 꿈틀이 스스로 자기 경험과 생각을 인권의 언어로 성찰하고, 변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특성과 조건들을 고려한 맞춤복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기성복과는 달리 옷감을 고르는 것부터 재단, 그리고 바느질과 마무리까지 매번 새롭게 맞춤복을 준비해야 하는 게 인권교육가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인권교육가가 숙련된 솜씨를 발휘하기 위해 인권교육 기획에서부터 꼼꼼 챙겨야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날개 달기 - “여보세요~ 인권교육 좀 해주세요”

인권교육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만큼 교육 요청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요청하는 교육을 모두 소화할 만큼 인권교육가가 충분하지 못한 게 지금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들’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인권교육가를 양성하기 위한 활동들을 하고 있다. 지난 6월에 ‘들’의 활동회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워크숍도 이런 이유에서 마련된 자리였다. 체험과 논의를 통해 인권교육의 원칙과 방법론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4월 진행한 워크숍에서 함께 나눴기 때문에 이번에는 실제 '들'로 들어왔던 교육신청 사례들을 재료로 삼아 인권교육을 기획해 보기로 했다.

더불어 날갯짓 - ‘백문이 불여일행’

인권교육의 원칙이 뭔지 머릿속에 들어와 있다 하더라도 직접 인권교육을 기획하고 진행해볼 때 인권교육의 의미와 가능성들이 보다 선명해질 수 있을 게다. 3모둠으로 나눠 각각 다른 교육신청서를 2장씩 나눠주고 인권교육을 기획하기 위해 더 알아야 하는 정보들은 무엇인지, 목표는 무엇으로 잡아야 하는지, 인권교육 활동이 가능한지, 마지막으로 역으로 수정 제안할 것들은 없는지 등을 찾아보기로 했다.

<사례 1>

▸소속단체 : ○○청소년종합지원센터
▸목적 : 학생인권의식 신장
▸대상 : 중학교 1,2,3학년 전교생
▸인원 : 93명
▸일시 : 2009년 ×월 ×일
▸교육시간 : 3시20분-4시05분(45분)
▸장소 : ○○중학교
▸원하는 내용 : 학교 내의 인권침해 종류와 인권침해에 대처하는 방식 등을 학교폭력과 연관 지어 해주시면 될 듯합니다.

<사례 2>

▸소속단체 : ○○ 성폭력상담소
▸목적 : 학교폭력과 아이들 이해하기
▸대상 : 강사양성과정 모집인
▸인원 : 30여명
▸일시 : 2009년 ×월 ×일
▸교육시간 : 오전 10시~오후 1시
▸장소 : ○○ 교육장
▸원하는 내용 : 학교 청소년을 대상으로 성폭력 예방교육을 하기 때문에 학교폭력이나 학생 인권에 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갈수록 학교나 청소년 관련 단체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인권교육 요청이 많아지고 있다. <사례 1>과 <사례 2>는 공통으로 학교폭력에 대한 대응법을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대상이나 시간 등은 다르다. 특히 <사례 1>은 한꺼번에 많은 인원을 대상으로 교육을 해야 하고, 주어진 시간은 45분이다.

<사례 1>을 기획한 모둠은 교육 요청 자체가 ‘폭력적’이라고 딱 잘라 말한다. “일단 전교생을 강당에 모아놓고 일방적으로 주입식 교육을 해야 하는 것 자체가 반인권적이다. 게다가 45분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특히 자신의 인권을 존중받아 본 경험이 없는 학생들에게 학생들 간의 폭력만을 주제로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공허할 따름이다. 교육을 요청한 기관에서 오히려 학년을 나누고, 시간도 늘리는 게 필요함을 이야기해야 한다. 또 학교와 학생, 교사와 학생간에 발생하는 폭력이나 학생 인권 자체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어야 함을 역제안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례 2>도 <사례 1>과 마찬가지로 학교폭력에 대한 수정 제안이 필요하다고 보고, 더불어 청소년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할 계획인데 전체 교육 내용에 정작 청소년에 대한 보호와 통제의 시선을 깰 수 있는 주제가 없음을 설명하면서 청소년 인권을 교육에 포함시킬 수 있도록 제안하기로 했다.

<사례 3>

▸소속단체 : ○○ 중학교
▸목적 : 도덕교과와 관련된 인권교육 구체적으로 알기
▸대상 : 도덕교사
▸인원 : 25명
▸일시 : 2008년 9월 첫째 둘째 주 하루씩 총 2회
▸교육시간 : 1시간 반(1회)
▸장소 : ○○ 중학교
▸원하는 내용 : 구체적으로 도덕교과에서 관련된 내용으로 인권교육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중1 2-(1), (2)자아의 발견과 실현> 단원에서 ‘나’의 소중함에 대해, <중1 3-(3)이웃 간에 서로 돕고 사는 길>에서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내용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교과목을 인권과 연결시켜 교육을 진행하고자 하는 교사들과 함께 하는 인권교육은 어떻게 기획해야 할까. “실제 도덕이 도덕적이지도 않고, 심지어 반인적이며 보수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단원에서 인권과 관련된 단어 몇 개만 끄집어내 교육을 하는 게 아니라 도덕 교과를 인권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권교육가도 중학교 도덕교과서를 검토해봐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 전까지 준비를 위한 시간이 충분한 지 살펴야 한다.”

위의 사례들처럼 교육을 요청하는 기관이나 실무자는 당장 주어진 조건이나 벌어진 현상, 문제에만 매몰돼 정작 살펴야 하는 것을 놓칠 수 있다. 따라서 인권교육가는 이들이 인권적인 시야를 가지고 교육을 기획할 수 있도록 시간이나 인원, 장소, 교육의 내용 등을 역으로 제안하고, 안내해야 한다.

더불어 날갯짓 2 - ‘낯섦’이 ‘두려움’이 되지 않기 위해

인권교육에서 인권교육가는 자신에게 익숙한 꿈틀이만을 만날 수 없다. 낯선 이들과 함께 교육을 해야 한다면 기획에서 더 고려해야할 것은 무엇일까.

두 번째 모둠에는 성매매 경험이 있으며 지적장애 정도가 경미하거나 경계에 있는 청소녀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과 발달장애 또는 정신지체청소년과 보호관찰청소년이 함께 참여하는 교육을 기획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

두 사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대상을 잘 모른다는 게 이유였다. 대상에 대한 이해가 없을 경우 실제 어떤 내용과 방식으로 인권교육을 진행할지, 시간이나 돋움이는 얼마나 필요한지 등에 대한 상이 전혀 잡히지 않는다. 그렇다면 모르는 대상에 대해서는 모두 ‘NO'라고 하는 게 답은 아니다. "우선은 기획단계에서부터 인권교육가는 교육 신청을 한 기관이나 실무자 또는 대상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나 기관의 실무자와 상의를 하면서 인권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필요하다면 교육 전에 미리 가서 교육에 참여하게 될 대상을 직접 만나는 것도 적극적으로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럴 때 인권교육은 기성복이 아니라 맞춤복으로서 맵시를 낼 수 있으며, 꿈틀이의 역동적인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머리를 맞대어 - ‘해야 하나’의 기로에서

<사례 4>

▸소속단체 : ○○ 고등학교 영재교육원
▸목적 : 정의, 인권, 법 교육
▸대상 : 중2 - 각 학교에서 선발된 학생
▸인원 : 총 45명 1학급
▸일시 : 2009년 ×월 ×일
▸교육시간 : 13:00-14:30 (90분 강좌 1타임)
▸장소 : ○○고 강의실
▸원하는 내용 : 캠프로 진행되며, 선발된 학생이니 또래 학생보다 능동적이고, 주체적일 것으로 판단됨. 다소 깊이 있는 사고를 요구하는 것이 가능하며, 좀 더 주체적인 활동도 가능할 것으로 판단됨.


인권교육 신청이 들어올 때 모든 교육을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부득이하게 못하는 경우라면 어쩔 수 없지만 <사례 4>처럼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기본적으로 캠프 참여자의 선발과정 자체가 차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체 캠프의 목표와 인권교육의 목표가 배치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교육 요청이 온다면 거절하겠다.” VS “그렇다고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것도 문제지 않냐? 누구나 인권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한계가 있더라도 인권교육을 진행해야 하며, 교육 시간에 그런 문제의식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실제 ‘들’에서는 <사례 4>의 교육을 거절했다. 첫 번째 이유와 더불어 한정된 인권교육가들의 역량으로 봐서 다른 교육이 더 우선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여전히 고민은 남아 있다. 인권교육이 프로그램으로만 머무르지 않는다고 할 때 기획 단계부터 인권교육은 진행된다고 볼 수 있다. 인권교육가가 자신의 문제의식을 충분히 전달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서도 실무자나 기관에 새로운 문제의식을 던져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함께 교육에 참여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가지고 인권교육을 할 것인지에 대해 꼼꼼하게 챙겼다고 하더라도 인권교육이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인권교육가가 기획에서 챙겨야 할 것들을 놓치고 간다면 그 교육은 인권교육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덧붙임

영원 님은 인권교육센타 ‘들’의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