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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 날다] 관계 속에 차별 있다!

차별의 실이 얽은 그물망

차별의 반대는 무엇일까? 여성부 폐지 논란이나 군 가산점 부활 논쟁 등 남녀차별의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역차별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여성부가 있으면 남성부도 있어야 한다.”, “그럼 여자도 군대에 가라.”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말대로라면 ‘획일적인 같음’이 차별의 반대말이 된다. 인내심을 가지고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더라도, 그렇다면 누구를 기준으로 ‘같아야’ 하는 걸까? 또한 그 기준은 차별적이지 않은가?


날개 달기 - 차별의 그물을 촘촘하게

세계인권선언 제2조에는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그 밖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기타의 지위 등에 따른 어떠한 종류의 구별도 없이, 이 선언에 제시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며 반차별의 원칙을 전면에 내걸고 있다. 하지만 차별이 무엇인지 제대로 정의내리지 못할 때 반차별을 위한 대안들이 오히려 차별을 조장하기도 한다. 또한 차별을 특정 집단의 문제인 냥 얘기하면서 그 집단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 뭔가를 베풀거나 배려하면 되는 것처럼 차별의 문제를 왜곡시킬 수도 있다. 반차별을 외치는 사람들조차 ‘차별은 나쁘다’는 대전제에 가려 혹시 반차별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워왔던 건 아닐까.

지난 2월, 들이 준비한 ‘교원 인간감수성향상 심화워크숍’에서 만난 교사들과 함께 인권의 잣대로 차별을 정의하기 위해 차별이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풀어봤다.


우선 꿈틀이 수만큼 성, 인종, 국적, 나이, 장애 여부 등이 다른 인물이 담긴 사진이나 그림을 오려서 준비해 한 명당 하나씩 나눠준다. 한 명씩 나와서 꿈틀이가 가지고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 설명하면서 차별의 그물망을 만들어 가는데, 처음은 돋움이가 인물을 설정해 준다. 붙이는 사람을 중심으로 차별을 받을 때는 빨간색을, 차별을 할 때는 파란색으로 화살표를 표시하도록 했다. 이때 꿈틀이는 사진이나 그림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다양한 정체성을 부여해 인물의 특징을 좀더 풍부하게 만들어 주어야한다. 또한 꿈틀이가 붙인 한 명 대 여러 명과의 관계에서 차별의 그물망을 만들 수도 있으며, 앞서 발표한 꿈틀이가 붙인 인물이 아니라 다른 인물과 작동하고 있는 차별의 고리를 찾아내도 된다.

“이름은 박싱싱이에요. 빨리 취직해서 일을 하고 싶은데 지방대 출신이라 그런지 자격증도 많은데 취직은 잘 안 되고…. 오늘도 부모님 눈치 보며 길거리에 나와 있는 중입니다.”

돋움이가 처음 시작하는 사람을 이렇게 소개하자, 한 꿈틀이가 나와 차별의 그물을 엮어낸다.

“박싱싱 씨의 여자친구예요. 여자가 뭔 취직이냐, 빨리 시집이나 가지 이런 얘기를 들으면서 살고 있어요. 사회적으로는 남성에 비해 차별받는 위치라고 생각해요.”

“여성 정규직 교수예요. 이름은 나교수. 결혼을 했던 여성이에요. 사회적으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고민하다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하고 이혼했어요. 처음 남성(박싱싱)과 여성(그의 여자친구)이 우리 대학을 나왔어요. 그래서 성적을 부과할 수 있는 권력을 갖고 있지요. 반면 그 두 사람이 이성애자라고 가정했을 때는 상대적으로 차별 받는 입장이라고 볼 수 있어요.”



조금씩 살을 붙여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자 한 인물이 ‘온전히 인권의 피해자이거나 가해자’일 수 없음이 관계에서 드러나면서 차별의 그물도 점점 복잡해졌다. 인권의 잣대가 변하지 않고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맥락에 따라서’ 차별을 받는 사람은 누구인지 살펴야 함을 차별의 그물이 보여주기도 했다.

“저는 봉화 읍내에서 일하는 의사에요. 나이가 들어서 탈모 증세도 있고 돈도 많이 필요한데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돈이 안 되잖아요. 돈도 안 되는 진단만 받고 그러셔서 제가 좀 차별했어요.”

“저는 봉화 병원에서 청소 일을 하다가 다리를 다쳐서 병원에서 잘렸어요. 병원에서 일할 때 에이즈 환자를 차별 했었어요. 이 할아버지는 (남편인데) 난봉꾼이고, 할머니를 많이 괴롭혔어요. 남편한테 차별을 받았지요.”


꿈틀이들이 차별의 그물을 엮어갈수록 사진이나 그림 속 인물들은 다양한 정체성(차이)을 가진 인간으로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성이나 노인 등 하나의 정체성만으로 그 집단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성, 국적, 나이, 외모, 성정체성, 경제적인 상황이나 사회적인 지위 등에 따라 차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세밀화를 그려갔다. 더욱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정체성이 필연적으로 차별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차이와 그렇지 않은 차이가 끊임없이 ‘선택’되는 과정을 통해 차별의 그물망이 만들어짐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더불어 날갯짓 - ‘차별’이 ‘오해’를 만날 때

이야기를 더해 갈수록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차별에 대한 오해들이 드러나기도 했다.

“저는 여기 있는 전체 사람들을 다 차별하는 사람(부시)이에요. 그런데 반대로 전체로부터 차별받기도 해요. 모든 사람이 저를 싫어하잖아요.”

“이 여자는 기독교인이에요. 그런데 스님을 싫어해서 차별한다고 했어요.”


‘부시’나 불교인처럼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거나 싫어하는 대상이라는 것만으로 차별일 수 있을까. 만약 그것을 차별로 인정할 때 부시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부시를 좋아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종교에 대한 개인의 호불호도 마찬가지. 오히려 사회적인 관계에서 주류 종교를 가진 집단 외에 다른 종교는 모두 이단으로 취급되거나 인정되지 않을 때 종교에 대한 차별을 말할 수 있을 게다. 자칫 사람들이 좋고 싫음을 차별의 잣대로 가늠할 때, 차별이 가지고 있는 부당함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게 된다.

““저는 이 면접관이 잘랐어요. 대학 때 다리를 다쳐서 장애를 갖게 됐어요.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능력도 있는데 취직이 안돼요.”

“이분은 듀이 씨예요. 저는 태어날 때는 남성. 어렸을 때 아빠가 매일 나쁜 일이 있을 때마다 엄마를 때렸어요. 그러다 보니 야비한 남성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여자 옷을 입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엄마가 ‘남자가 이게 뭐냐?’ 이렇게 말하셔서 저는 매일 눈물로 지새우고 있어요.”

“저는 20대 취업을 앞둔 여성이에요. 나교수가 제 엄마이고, 저 남자가 저를 찬 남자예요. 먹는 걸 좋아해서 비만이 됐는데, 엄마가 잘 챙겨주지 않았어요.”


차별을 무엇으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차별을 해결하는 방법 또한 달라질 수 있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비교해서 능력이 뒤지지 않는데도 취직이 안 되는 것만이 차별이 아니라 그 기준을 ‘비장애인’으로 상정한 것에 대한 부당함을 지적하지 않을 때 장애인에 대한 근본적인 차별은 사라질 수 없다. 또한 딸을 돌보지 못한 엄마가 차별을 했다고 할 때 차별의 화살은 무뎌지게 된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거나 돌봄 노동을 여성 개인에게만 지우고 있는 사회로 향해야 할 차별의 화살이 엄마에게 돌아갈 때 차별을 풀어내는 길은 요원해진다.

더불어 사회적 소수자들이 특수한 상황에서 특별한 문제를 가진 사람으로 묘사될 때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돋움이가 정리할 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머리를 맞대어 - 그물망이 차별을 잘 잡으려면

현실에서 소수자들이 어떤 차별을 겪고 있는지에 대한 공감을 넘어 차별이 나, 너, 우리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차별에 대해 오해를 풀어내는 것은 차별을 인권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야심차게 준비한 ‘차별의 그물망’도 그 중 하나! 그런데 차별을 받는 사람과 하는 사람의 관계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구분했던 화살표의 색은 별다른 기여를 못하고, 오히려 꿈틀이만 헷갈리게 만들기도 했다. 또 두 사람의 관계에서 차별을 찾다보니 오히려 차별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기도 했다. 예를 들어 뚱뚱한 여성에 대한 차별은 날씬한 여성이 가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3자에 의해 일어나기도 하는데 이런 점을 차별의 그물망에서는 드러내기 쉽지 않았다. 시작 전에 꿈틀이에게 이런 한계를 설명해주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반드시 인권의 가해/피해가 아니라 이들이 처해 있는 사회적인 위치를 말하는 것임을 짚어줄 필요가 있다.
덧붙임

영원님은 인권교육센터 '들'의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