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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길을 묻다] 섹슈얼리티, 국가와 시장의 상업적 경계에 서서

편집자 주

페미니즘은 억압받는 여성의 문제에서부터 억압을 굳게 만들고 성별화시키는 가부장 사회와 이성애주의에 맞서 싸워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눈, 공사분할의 함정과 차별감수성을 사회에 제기하며 인권이 지향해야할 바를 보여주었습니다.
3·8 세계여성의 날을 앞두고 페미니스트들의 고민을 ‘젠더, 섹슈얼리티, 계급’ 측면에서 풀어내려 합니다.

비가 세차게 내리치면 빗방울이 땅에 부딪치는 소리에 주변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MB와 경제위기로 온 신경이 한 곳에 몰려있습니다. 사라진 것처럼 여겨지는 소리를 듣고 앞을 보려면 우리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국민 모두의 가장이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으로서
어떻게든 이 분들의 고통을 덜어드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특별히 지금이야말로 가족의 격려가 가장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힘들 때 우리가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곳은 결국 가족이 아니겠습니까?
실직한 나의 남편, 우리 아버지도 따뜻한 가족의 사랑으로 격려하면 반드시 다시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지금의 어려움이 ‘가족의 가치’를 새롭게 되새기는 귀한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 이명박 대통령 3차 라디오 연설 중 (2008. 12. 15.)



가부장적 신자유주의

작년 말, 대통령의 연말연시 훈화말씀은 참으로 의미심장했다. 첫째는 “대통령=국민가장”의 봉건적 등식이었고, 둘째는 남성생계부양자라는 시대착오적 전제였으며 셋째는 가족주의 회귀 내지 신가족주의의 천명이었다. 경제위기를 서민들에게 전가하면서, 격려로 대통령의 임무를 다하려는 태도도 참 어이가 없었다. 더 어이없는 일은 대통령이 직접 ‘힘들 때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가족밖에 없다’고 하며 현 정권이 공공성의 ‘ㄱ’에도 관심이 없는 신자유주의 선봉임을 공언한 일이었다.

가부장적 신자유주의는 가족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나라의 남편이자 아버지를 자처하는 자는 경제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 개별 남성가장들에게 뼈 빠지게 일하라고 하며, 그에 대한 보상으로 가장의 권위와 여성의 보살핌을 제공해준다.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모든 가족구성원과 국민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의무와 쾌락은 모두 아버지를 중심으로 짜여진다. ‘아버지’의 말씀이 정상이며, 법이라는 사실은 그것을 따랐을 때 경제적 보상이 뒤따른다는 강력한 근거로 뒷받침된다.

물론 이러한 경향이 처음은 아니다. 봉건시대에도, 근대국가 이후에도 대통령과 국가, 신은 항상 ‘아버지’로 표상되어왔다. 지난 10년간 우리는 어쩌면 가장 온화한 가부장 아래에 있었는지 모른다. 단지 이번에는 효율성의 위계에 따라 가차 없이 국민을 죽이고 살리는 폭군 아버지라는 차이만 있을 뿐. 여성주의적 입장에서 국가를 인식한다는 것은 따라서, 근본적으로 양가적일 수밖에 없다. 점점 심화되어온 신자유주의는 이러한 권위와 규범으로부터 아무런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 점점 더 국가의 권위와 신자유주의가 결합되면서, 그 질서에서 벗어난 존재들은 아예 경계 밖으로 던져지고 있다.

그간 온화한 가부장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여성인권은 그러한 지배질서와 크게 배치되지 않는 듯 보였다. 여성과 관련해 많은 것들이 법제화되었고 제도화되었다. 여성운동을 지원하는 여러 가지 사업들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과 관련해서는 거리를 보였다. 여성들의 인력을 활용한다면서 질 낮은 일자리에 밀어 넣으며 여성고위층들과 철저하게 양극화시켰다. 그리고는 고위층 여성들을 앞세워서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었다고 선전했고, 이것은 일자리를 잃은 남성들의 여성혐오를 부추겼다. 결혼률 저하도 출산률 저하도 눈이 높아진 여성들의 탓이라고 몰아세웠다.

전국 101개 사회단체가 14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차별금지법안의 훼손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 출처: 차별금지법 대응 및 성소수자 혐오 차별저지를 위한 긴급 공동행동(www.lgbtact.org) ]<br />

▲ 전국 101개 사회단체가 14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차별금지법안의 훼손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 출처: 차별금지법 대응 및 성소수자 혐오 차별저지를 위한 긴급 공동행동(www.lgbtact.org) ]


섹슈얼리티가 소비로 수렴될 ‘새로운 자유’

그런데 성적 쾌락을 소비하는 어려움은 줄어들었다. 좁은 의미에 사고파는 성뿐만 아니라, 매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사야하는 것과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들이 셀 수 없이 늘어났다. 꽃미남을 비롯해서 여성들이 소비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문화들도 늘어났다. 실제로 많은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그러한 문화에 동참한다고 느낄만한 장치들도 마련되었다.

성소수자들을 둘러싼 환경은 어떠한가. 국가차원에서 혐오를 표출하는 일은 거의 없었고, 국가인권위 설립 때도 차별로 명시되었다. 성소수자 단체들도 매년 안정적으로 퀴어문화축제를 여는 등 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무엇보다 성장한 것은 퀴어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게이, 레즈비언 포털 사이트가 성장했고 전용 바bar들이 이태원, 홍대등지에 크게 늘어났다. 심심치 않게 커뮤니티 내에서 계층 격차때문에 상층부의 게이, 레즈비언들이 별도의 비밀모임을 해나가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돈 좀 버는 게이를 위한 초호화 해외 관광 서비스 등도 시작되었다. 그리고 게이와 레즈비언, 성전환자의 소득격차는 눈에 보일정도로 확연하다. 2007년 한국 성소수자 사회의식조사에 따르면 특히 여성동성애자, 여성양성애자, 성전환자남성 등의 소득이 낮았다. 정체성을 넘어서 이제는 경제적인 능력으로 커뮤니티가 분할되고 재구성되고 있다. 먹고사는 문제가 목전에 있을 때, 나머지들은 그 중요성을 떠나서 ‘드러내고 발산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냥 ‘감내하고 참게’ 될 가능성이 많다. 돈 좀 있는 사람들은 그 자원과 지위를 지키느라, 돈이 없어서 생존의 문제에 매달리는 사람들은 여유와 기회를 박탈당해서 성소수자들은 사회에서 사라지고 있다.

한편 게이를 중심으로 문화산업에서 재현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한 문화적 파급력은 컸다. 케이블티비에는 동성애자들의 커밍아웃 스토리를 다룬 프로그램과 성전환자의 수술과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 등이 신설되었다. 성소수자들도 주체적으로 돈이 적게 들고 자유로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나갔다. 문화컨텐츠를 재가공, 이용하는 행위와 온라인 활동은 성소수자 뿐만 아니라 경제위기 시대에 마음 갈 곳 잃은 사람들의 안식처이자 활력이 되었다.

그러니 가장 보수적인 기독교적 교리를 내세워 순결과 정상을 강조하는 이명박은 온라인을 비롯한 문화를 지배하기 위해서 혈안이다. 성소수자들은 지금 반정부세력으로 낙인찍혀있지는 않아서 사이버모욕죄의 1차적인 대상은 아니겠지만 작년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논란에서 그러한 온라인 장악시도가 어떤 영향을 끼쳐올지 예상 가능하다.

무지개깃발을 들고 있는 모습<br />

▲ 무지개깃발을 들고 있는 모습


이제 우리는 어떤 주체가 될 것인가

성이 소비의 문제로 이동했다고 해서 사라지거나 다른 무언가로 대체되지는 않는다. 집이 보금자리가 되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가출한 10대 성소수자들도 성소수자로 살아간다. 사회적인 지위와 가족과의 관계 때문에 결혼한 게이도 깔끔하게 ‘일반’ 남성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개인의 자유와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지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국가, 자본, 보수주의라는 트라이앵글을 깨나가려면 ‘정체성의 자유’는 어떻게 획득되어야 하며, 국가에 맞선 인권의 요구의 방향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성의 문제를 다시 제기한다는 것은 ‘억압된 자들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동시에 그들이 ‘소비의 주체’로만 불려져 왔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성의 해방이라는 문제는 이제 국가와 자본이 허락해왔던 ‘자유’의 허구를 인식하고, 그동안 여성들의 언어로 만들어져왔던 이야기들과 소수자들의 하위문화와 공동체를 통해서 모아진 목소리들이 어디를 향할 것인가를 정리하는 것이다. 성에 관한 의제는 이제 인정과 포함을 넘어서 갈등과 투쟁의 문제가 되고 있다. 약자의 권리가 신장되면 그것에 대한 반동과 혐오도 성장한다.

이제 이러한 문제를 정치적인 의제로 다루면서 민주주의와 정의의 문제로 가져와야 한다. 이 때, 정치적인 시민권과 경제적인 권리를 부르짖는 ‘주체로 참여’하기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는 여성주의운동에서 중요한 과제이다. 여성이, 성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사회적인 주체가 되고자 나섰을 때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가. 그 이후의 이야기들을 만들어야할 때다.
덧붙임

타리님은 진보신당 성정치기획단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