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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보자 폴짝]정의를 버리는 법원은 가라

할 일을 빼앗긴 정의의 신

그리스∙로마 신화 이야기가 나오면 여러분은 어떤 신의 얘기가 제일 먼저 기억나나요? 신들의 제왕이면서 우르르 쾅!쾅! 번쩍이는 번개를 손에 들고 있는 제우스인가요? 아니면 아름다운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화살을 가지고 다니며 장난을 치는 귀여운 모습의 에로스인가요? 미네르바는 어떠냐구요? 그렇군요. 창과 방패를 가지고 갑옷을 입고 있는 전쟁과 지혜의 여신인 아테네의 다른 이름이 바로 미네르바지요. 음… 하지만 대한민국의 미네르바는 감옥에 갇히고 말았지요. 미네르바 뿐 아니라 그리스․로마 신들 중에 어린이 친구들에게 꼭 할 말이 있다는 신이 한 명 있네요. 미네르바 못지않게 속상한 일이 있다는 그 신의 얘길 한 번 들어볼까요?

할 일을 빼앗긴 정의의 신 ‘디케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 중에 한 손에 칼을 들고 다른 한 손에 저울을 든 여신을 본적이 있지요? 그게 바로 저랍니다. 저는 정의의 신, 디케라고 해요. 어떤 이들은 법의 신이라고도 부르지요. 신들 중에는 칼을 들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저처럼 저울을 든 신은 흔하지 않으니까, 금새 알아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천으로 눈을 가리고 있거나 눈을 감고 있어요. 다, 이유가 있지요. 저는 정의와 불의를 판정하는 신이기 때문에 공정한 판정을 위해 눈을 가리고 있답니다. 답답하겠다고요? 네, 조금 답답할 때도 있고 살짝 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혹시라도 눈으로 보면 맘에 드는 대로 판정할까봐 꾹 참고 있어요. 그런데 최근에 정말 속상한 일이 생겼어요. 제가 공정하게 판정하려고 몇 천 년이나 눈을 가리고 있었는데, 대한민국에 와서 그게 모두 헛일이 되어 버렸답니다.

법원도 믿을 수 없어ㅠ,ㅠ

TV에서 법원이 작년 촛불집회 사건을 한 명의 판사한테만 몰아줬다고 들었어요. 그것도 촛불집회를 부정적으로 보는 판사한테요. 너무 엄청난 일이라 저는 제 귀를 의심했어요. ‘설마...’하고 말이에요. 원래 법원에서는 재판해야할 사건들을 판사에게 순서대로 골고루 나눠 주거든요. 좀 더 공정한 판결이 되기 위해서지요. 만약에 어떤 사건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판사한테 관련 사건을 다 맡기면 모두 심하게 벌을 줄 위험이 있잖아요. 또 담당판사에게 윗자리에 있는 판사 ‘심한 벌’을 주라고 말하면 눈치 보면서 지시대로 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아예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재판해야할 사건을 골고루 판사에게 맡기는 거예요. 일단 그렇게 하면, 조금은 공정해질 수 있으니까요.

어린이 친구들도 알고 있겠지만, 법원은 정의를 지켜야 하는 곳이잖아요. 판사는 개인의 좋고 싫음에 휘둘리지 않고 누군가의 압력이나 지시에 흔들리지 않고, 법에 따라 양심에 따라 판결해야 해요. 많은 사람들은 법원에서 억울한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정의를 되찾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하지만 최근 대한민국 법원에서 일어난 일은 몇몇 사람의 맘에 따라, 정부의 맘에 따라 법원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서 화가 납니다. 사람들이 법원도 믿을 수 없다고 한심해 하고 있어요. 저는 공정함을 위해 눈을 가렸었는데 요즘엔 오히려 부끄러워 눈 뜰 수 없을 정도랍니다. 정말이지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겠지요?

촛불연행자에 대한 검찰의 벌금형 약식기소에 항의하며 불복종 선언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 출처 : 민중언론 참세상)<br />

▲ 촛불연행자에 대한 검찰의 벌금형 약식기소에 항의하며 불복종 선언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 출처 : 민중언론 참세상)



정의를 위한 법이 되려면

그래서 제가 어린이 친구들을 찾아 온 것이에요. 혹시 “법이랑 재판 같은 것은 나하고 상관없어.”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나요? 하지만 법은 생각보다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있어요. 여러분이 8살이 되어 학교에 다니게 된 것도, 아플 때 병원에서 적은 돈으로 치료받는 것도 법으로 되어 있답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는 것, 다른 사람을 때리지 않는 것만 법으로 되어 있는 게 아니지요.
사람들은 정의를 찾으려고 법원에 오는데 이런 수많은 법들이 모두 정의를 지키는 법일지 의문이에요. 특히 최근에는 더욱더 법과 정의 사이의 거리가 먼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픕니다.

미네르바를 잡아가두는 법과 법원은 정당한가요? 집회의 권리는 헌법에도 나와 있는데 경찰은 왜 집회가 불법이라고 하면서 찻길이랑 도로를 막고 있는 걸까요? 인터넷에서 실명으로 글을 쓰도록 하는 법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거 아닌가요? 일제고사 때 현장학습을 알린 선생님이 학교에서 쫓겨나는 것은 정당한 일인가요?

사이버 3대악법에 항의하는 피켓(사진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 사이버 3대악법에 항의하는 피켓(사진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두려움을 넘는 믿음

법이지만 정의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때때로 법은 경찰과 검찰, 법원 같이 강력한 힘으로 사람들 마음속에 꼭 지켜야할 ‘두려운 것’으로 자리 잡기도 해요.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에는 두려운 마음만 있는 게 아니랍니다. 법이 정의로워야 한다는 믿음은 두려움보다 도 먼저 자리 잡고 있었거든요. 잘못된 법집행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보다 부글부글 마음속에서 화가 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는 게 바로 그 증거지요. 화가 나지는 않아도,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지고 있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법과 법원이 하는 일에 관심이 없으면 정의를 잃어버릴지도 몰라요. 저도 영영 어린이 친구들을 만날 수 없게 될 수도 있어요. 눈을 크게 뜨고 법원이 제멋대로 하지 않나, 또 법을 만드는 사람들은 제대로 만들고 있는지 꼼꼼히 살펴봐야 해요. 그리고 잘못된 법은 잘못됐다고 말하고, 고쳐가야겠지요? 미네르바 사건이나 일제고사처럼 생활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살피는 것도 바로 그런 일 중 하나겠지요.
덧붙임

고은채님은 인권교육센터 '들'의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