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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학교를 다닌 경력’을 넘어서는 무엇

[삶, 세상2] 두 명의 정훈 씨를 만나 학력을 말하다

우리 사회에서 학력이 우수하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일까?국민학교 때 매달 시험을 봐서 평균이 90점이 넘는 학생들에게 학력우수상을 주었다. 그 때 학력우수상을 타서 부모님께 칭찬받고 싶었던 발칙한 몇 명이 작당을 했다. 서로 집단 커닝을 한 것이다. 커닝은 성공했고 한 분단에서 모두 학력우수상을 받는 상황이 의아했지만 물증이 없었기에 우리는 무사히 학력우수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집단 커닝을 통해 ‘학력’, 즉 배울 힘(정확히 말하면 사기 칠 힘)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내었다.

이번 [삶, 세상] 인터뷰는 그러한 학력 차별의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이번에 인터뷰에 응해준 한 분은 공교육 중심의 학력 문제에 회의를 느끼고 탈학교하였지만 지금은 다시 그 공교육 체제로 들어갔지만 여러 고민을 가진 정훈 씨이다. 다른 한 분은 대학을 나왔지만 사회에서 학벌 문제로 차별을 받아온 또 다른 정훈 씨이다.


학력의 틀에서 벗어나다

탈학교를 고민했던 정훈 씨는 어떻게 학교를 벗어나게 되었을까?
“공교육의 한계에 답답함을 느끼고 거기에 편입되기 싫었죠. 청소년 운동을 했는데 그것 때문에 선생님과 갈등도 많았습니다. 부모님은 반대하셨지만 제 뜻이 워낙 완고해 언제까지 자퇴하겠다고 학교에 통보를 했고 부모님도 결국 자퇴 동의서에 사인을 하셨죠.”

정훈 씨는 그 다음 해 미국에 계신 할아버지가 직접 편지까지 보내며 간곡히 부탁해서 검정고시를 보았지만 오랜 기간 공교육의 틀에서는 벗어나 있었다. 그 기간 동안 정훈 씨가 느낀 학력 사회 밖에서의 생활은 어떠했을까?

“돈을 벌려고 해도 인문계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취직할 만한 곳이 없어 서빙이나 전단지 나누어주는 알바 등을 했었습니다. 중퇴를 한 이후 원하는 교육을 받을 곳이 없어 힘들었죠. 지금은 민예총이나 참여 연대 등 다양한 곳에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그런 기회도 많지 않았고 공부를 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힘들어 그런 정보를 접하기 어려웠죠. 그것보다 더 힘든 것은 외로움이었습니다. 관심사가 같은 친구를 만나기가 힘들었죠. 그리고 학교에서 만나던 친구들과도 만날 기회가 적어졌고 만나도 생각의 차이, 처지의 차이 등에서 대화가 많이 단절되는 느낌이었죠.”

특히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여자 친구와 헤어진 이유도 학력 문제가 컸죠. 그 나이 대에 대학을 가야 정상적이라고 보일 텐데 그렇지 않은 모습 때문에 많이 싸우게 되었죠. 주변 친구들과도 그런 부분에서 갈등이 많았어요. 사교의 장으로서 역할을 하는 학교에서 박탈되어 있는 상태다 보니 내가 그 친구들을 만나 내 이야기를 하더라도 ‘또 그 이야기를 하냐?’같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더라고요.”

그런 그에게 학력은 어떤 의미였을까?

“학벌을 지적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학력은 쉽게 문제되지 않는 것 같네요. 배워야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군대에서도 예전부터 학력에 제한을 두었던 것도 같은 이유였고…. 고등학교면 고등학교, 중학교면 중학교, 대학도 이제는 80% 가까운 사람들이 다니니까 그 나이에 따라 사람을 몰아넣고 있는데 그럼으로써 다양한 기능을 하고 있어요. 사교라든지 취업, 그리고 학벌과 함께 그 사람을 증명해내고 차별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증거가 되는 것 같죠. 개인적으로 사교의 장으로서 학교는 참 좋았습니다.”


학력의 또 다른 벽, 학벌

지방에서 태어나 청주의 한 대학을 나왔고 서울에서 대학원까지 마친, 학력 자체로 보면 고학력인, 지금 직장을 다니고 다른 정훈 씨는 학벌에 의한 차별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학력은 또 하나의 신분증이라고 할 수 있죠, 각 기관마다 신분증이 있듯이 어디 대학교 출신인지에 따라서 그 사람을 달리 보게 되니깐요. 뭐 면접을 보든 업무적인 측면에서 실적을 내던 간에 일단 학력을 가장 먼저 보고 그 다음에 그 사람을 판단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학벌이 낮은 사람은 더 좋은 평가를 받기가 힘든 세상이죠. 물론 지금은 학벌로 인한 차별이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사람들 마음속에서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 같네요. 하나의 예로 학벌에 의한 차별에 대해서 거의 대다수 사람들이 겉으로는 없어져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도 결국 ‘우린 서울대잖아’라는 말을 무의식중에도 가지고 사는 것 같아요. 즉 사회 분위기상 밖으로 이야기 하지는 못하지만 내적으로 다 학벌에 대한 우월의식이나 차별에 대한 의식들을 가지고 있는 거 같아요.”

직장 생활에서 정훈 씨는 계속 학벌의 벽을 느낀다고 했다. 특히나 학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직장 분위기에서 승진을 위해서 대학원을 다니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했다.

“밖으로 대 놓고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좋은 학교 출신은 학벌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거죠. 서울대>연ㆍ고대>서울소재대학>지방대>전문대 뭐 이런 식으로 나누어지는데 1등에서 2등의 차이는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못 느끼지만 1등과 3등, 4등의 차이 그리고 2등과 4등의 차이는 크다고 생각합니다.”

학력, 학벌의 벽이 없었다고 상상한다면 무엇이 바뀌었을까?

“학력 문제가 없었다면 승진에 있어서 조금 더 빨리 승진했겠죠. 그리고 자신의 의견이나 보고서를 윗사람한테 올릴 때 그 프로젝트를 정하고 진행하는 것이 좀 더 많거나 빨리 결정되어서 주도적으로 할 수 있었을 거 같은데요.”

그런 그에게 학력, 학벌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일단은 소속감을 가지고 있고 그 소속감으로 인해서 이 사회에서 주류 혹은 생존하는데 필요한 요소라고 느껴지죠, 다만 모든 것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이런 측면이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학력은 그 사람의 능력으로 대변되는 경우가 있고 특히 전문적인 분야에 대해서는 그 사람에 대한 신뢰를 상징하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방대 출신과 유명대학 출신이 거의 동일한 보고서를 올려도 평가가 달라지고 물론 설명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그 차이에 비해서 받아드려지는 것은 훨씬 크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학력의 틀 안으로 들어가다

학력에 대한 거부감으로 어려움을 겼었던 정훈 씨는 결국 군대를 다녀와서 다시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정훈 씨는 자신이 거부했던 그 틀로 왜 다시 들어가게 되었을까?

“아까 말한 외로움이 컸죠. 제도권 밖에서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도 적었고요. 무엇보다 외로움이었습니다. 군대에 들어가면서 외로움 때문에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고민하게 되었죠. 내 고민들이 쉽게 없어지는 것 같아 부끄러웠지만 외로우니 대학에서 또래 집단과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간절함이 있었어요.”

대학에 다시 들어간 지금 그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을까?

“대학을 진학하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화제를 공유할 수 있는 친구가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이 좋았죠. 그리고 친구들, 자보 등을 통해 내가 원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었죠. 이런 것은 사회에 있었으면 쉽게 얻지 못할 정보였을 겁니다. 또래 집단과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뻐 대학 초반에는 정말 열심히 술 먹으며 사람 만나며 지냈었죠.”

그렇지만 아직 학력에 대한 그의 고민과 갈등은 진행형이었다.

“사람을 하나의 능력으로만 재단하고 그것의 정도를 통해서만 인정받게 되는 것이 학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학력을 얻는 것은 개인의 능력문제로 치부되죠. 그렇지만 학원을 다니고 입시를 준비하는 것, 등록금을 내는 문제 등에 있어 경제적인 문제를 벗어날 수 없는 것 같아요. 즉 돈이 있어야 얻을 수 있는 것이 또한 학력인 것이죠. 어느 학교를 졸업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가 능력이 있다는 곳을 공인해 주는 것 같습니다. 마치 답은 정해져있고 그것은 학력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죠. 하지만 수많은 책과 주장 중 교수의 주장에 동의한다고 학력을 얻게 되고 그것이 마치 그 분야의 전문가, 지식인으로 인정되는 것을 동의하기가 어려워요. 그리고 학력을 얻는다는 것은 체제에 순응하는 것 같습니다. 군대에서도 학교에서도 저항은 그 집단에 소속되지 못하게 탈락시킴으로써 무마되는 것 같죠. 고학력자가 되면 될수록 그것은 더 체제에 쉽게 적응하였다는 표시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결국 그는 외로움, 공부에 대한 욕심으로 들어간 대학에서 다시 나오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누군가 학력을 고민하고 있다면?


탈학교를 고민했던 정훈 씨는 정작 누군가 옆에서 그런 고민을 이야기한다면 자신이 어려웠던 경험들 때문에 쉽게 말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사실 답이 안 나와요.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말하고도 싶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쉽게 말할 수 없죠. 그러다 보니 보수적으로 심사숙고하라고 이야기를 하게 되죠. 그렇다고 탈학교를 하지 말라고 말리지는 않아요. 게다가 외부 교육이 체계적이지도, 공인되지도 않으니…. 다만 주변에서 그런 친구들이 서로 뭉쳤으면 합니다. 서로 뭉치면 외로움, 힘든 것을 서로 나눌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대안교육도 참여하는 사람들의 배우고 싶은 욕망을 자발적으로 지원하는 체제였으면 좋겠죠.”

학력 사회에서 열심히 자신의 재능을 펼치려고 노력하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정훈 씨는 어떠할까?

“일단 그 학력에 대해서 인정하고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수밖에는 없는 거 같아요. 그리고 자기가 속한 집단에서 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하는 것을 자신이 가지도록 노력하는 것인데 저는 그것을 성실과 주어진 일에 대해서 어떠한 경우에도 그것을 정해진 시간에 한다라는 일에 대한 신뢰를 사람들한테 줌으로써 다소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학벌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갈등을 일으키기 보다는 조금은 힘들고 어렵겠지만 참고 견디면서 자신의 주어진 일에 대해서 성실하게 수행해 나간다면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인터뷰는 경험, 문제의식, 현재의 처지 등이 모두 다른 두 명을 인터뷰하였다. 그렇기에 그들의 대안도 상당히 달랐다. 하지만 결국 그들 두 명 모두 학력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자신을 자신으로 보이게 하는 것에 장애를 주었다고 여기고 있다는 것에서는 공통점을 지녔다.

처음 직장을 구할 때 이력서에 초등학교부터 최종 학교까지 출신 학교를 쓰는 칸이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도대체 이것들이 왜 필요한지, 정말 이런 것들이 내 관심사, 능력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는지…. 남자들은 처음 만나면 먼저 나이를 묻는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서열이 확인되면 대부분 군대를 어디 나왔는지, 학교를 어디 나왔는지를 묻는다. 결국 누군가를 구분하고 집단화하고 서열을 매기는 그런 질문들이 너무 일상화된 지금…학력은 다만 자신의 관심사를 넓히기 위한, 자아실현(?)을 위한 도구 이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덧붙임

* 초코파이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