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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 교과서를 던져라

'국가'에 갇힌 도덕 교과서

[교과서를 던져라 ①] 도덕 교과서 뜯어보기 (1)

도덕과 윤리 교과서는 다른 교과서와 첫 페이지부터 다르다. 국기에 대한 맹세로 시작하는 것이 바로 그것! 태극기와 함께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라는 국기에 대한 맹세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다. 도덕(윤리)이란 인간으로서 지켜야할 도리나 바람직한 행동기준을 뜻하는데, 그것과 국가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자유롭고 주체적인 인간을 국가와 민족이라는 틀 안에 가둘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가지며 중학교 도덕 1, 2, 3권과 고등학교 전통윤리, 윤리와 사상, 시민윤리 교과서를 살펴보았다.

국기에 대한 맹세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노력에도 끄떡없이 도덕 교과서의 첫 페이지는 맹세로 시작된다.

▲ 국기에 대한 맹세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노력에도 끄떡없이 도덕 교과서의 첫 페이지는 맹세로 시작된다.


자신을 위한 도덕이 아닌 남을 위한 도덕

도덕 또는 윤리는 ‘선’이라고 하는 보편적 가치에 대해 인간으로서 내릴 수 있는 판단과 행동이다. 그런 결정을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므로 도덕 교육은 자신의 욕망을 자율적으로 규제하고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하지만 교과서에는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과 공동체를 위한 도덕만 강조되고 있다. 개인의 자아실현이 언급될 때조차 공동체의 발전과 복지 증진을 위한 것만이 올바른 삶이고 진정한 자아실현이라고 가르친다.

인간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 사회가 필요로 하는 역할을 자기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분담하여 사회의 발전을 위해 기여할 때만이 진정한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을 수 있다.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32쪽)

남을 위한 삶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과 성찰 없이 오로지 남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사는 게 옳다는 ‘가르침’은 무엇이 더 나은지 결정하고 실행해야하는 주체자의 판단이 결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노예와 같은 사람을 키워낸다. 김상봉은 한국의 도덕교육이 여러 외관상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참된 자유인이 아니라 노예를 기르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자신보다 타인, 개인보다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도덕 교육은 전체를 위한 소수의 희생쯤은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하고, 국가주의, 전체주의의 바탕이 된다. 교과서에서 아예 노골적으로 국가를 위한 희생을, 목숨까지 내놓는 희생을 본받으라고 가르치기도 한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사람들 중 …… 구체적인 예를 들면, 일찍이 홀몸이 되어 삯바느질과 식당 운영으로 고생하며 모은 재산을 장학금으로 내놓은 할머니, 일제 강점기 3·1운동 당시, 종로 경찰서에 근무하면서 독립 선언서를 인쇄하는 현장을 목격하고도 보고하지 않고 나중에 체포되자 독약을 먹고 자살한 한국인 형사, 그리고 6·25 전쟁 중에 조국과 겨레를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바친 수많은 전몰장병들……. (중학교 도덕 1, 37-38쪽)

공동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강조하고 찬양하는 동안 개인은 집단적 가치를 실현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희생에 대한 요구는 더욱 정당화되며 ‘생명’의 존엄성은 더더욱 손상될 수밖에 없다.

인류가 아닌 국가와 민족을 위한 도덕

교과서에서 강조하는 공동체를 위한 희생, 그 실체가 무엇인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 공동체는 전 인류, 모든 생명이 아닌 바로 국가와 민족이다. 그 구성원인 시민들이 국가라는 기구를 통해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교과서는 국가를 도덕적이고 선한 절대적 실체인 것처럼 나타낸다. 이것은 공동체를 위한 희생을 강조하는 도덕과 결합하여 국민을 국가의 번영을 위한 도구와 수단으로 만들어버린다. 역사적으로 국민에 대한 국가의 책임보다 국가에 대한 국민의 책임이 훨씬 컸던 한국의 상황에서도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인 행동이 되어버린다.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성찰이나, 둘 사이 갈등 상황이 발생할 때 기준이 되어줄 수 있는 윤리와 가치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애국·애족 활동에 따라 그 유형과 사례를 제시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유형은, 국가와 민족의 독립과 생존이 위험에 빠졌을 때, 국가의 보전과 국토의 수호를 위해 자기의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싸우는 것이다. 둘째 유형은 경제 발전을 이룩하여 국가의 부를 쌓는 데 공헌하고, 국민 복지와 환경을 개선하여 모든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이바지하는 것이다. …… 구체적인 사례로는 1970년대에 …… 우리 국민들을 오랜 가난과 구습에서 벗어나게 한 새마을 운동의 추진에 참여한 사람들의 노력을 꼽을 수 있다. …… 반대와 난관을 무릅쓰고 국토의 대동맥에 해당되는 경부고속국도의 개통을 이루어낸 국가 통치자, 기업인, 근로자들 또한 그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중학교 도덕2, 231-233쪽)

국가주도의 경제개발은 많은 문제점을 불러일으켰다. 경제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많은 피해자들이 생겨났으며 구조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민주화에 대한 요구는 짓밟혔다. 다른 교과서도 아니고 ‘도덕’ 교과서에서 이를 애국·애족의 좋은 사례로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배집단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고 주입시키려는 현재 도덕 교육의 정체성을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부분이다.



‘우리’에 대한 우월감은 ‘너희’에 대한 비하로

과학이 발전하기 이전의 전통사회에서는 자연을 지배의 대상이 아닌 숭배와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았다. 농경사회라면 어디든 경천, 생명존중, 공동체 협동정신이 있었다. 이렇게 민족을 초월하여 나타났던 정신을 우리 민족의 고유한 특성으로 설명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지나치게 자의적이며 자민족 중심주의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계속 강조하고 있는데, 민족의 특성은 비교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다양한 역사와 환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특성들은 다양성으로 존중받아야 할 것인데도 우리가 남들보다 ‘우수’하다는 평가의 근거가 되고 있다. 이는 다른 민족의 특성을 상대적으로 비하하는 인종주의의 시작이 될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남편에 대한 아내의 순종을 강조하던 전통적인 부부관이 무너지고, 서양 문화의 영향을 받아 평등한 부부 관계가 강조되면서 남편과 아내의 역할 분담을 둘러싸고 갈등이 생기고 있다. …… 이 밖에도 서양 문화의 영향으로 결혼관이 바뀌면서 이혼이 급속히 증가하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중학교 도덕3, 138쪽)

자문화 중심주의는 자신들의 문화에 대한 성찰과 비판을 배제한 채 문제의 원인을 다른 문화에서 찾기도 한다. 전통적인 가부장제 질서와 성역할 강조로 인해 생기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그 원인을 서양문화에서 찾고 있다. 이는 우리의 전통문화가 어떤 특성이 있는지 묻지 않고 서구의 문화에 비해 더 우월하다는 판단만 내린 채 교육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스스로 복종하게 만드는 교육

지금까지 살펴본 도덕과 윤리 교과서의 정체성은 첫 페이지의 태극기와 국기에 대한 맹세가 대변하고 있다. 시대에 따라 여러 차례 변화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비판적이고 맹목적으로 국가·민족 정체성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 오히려 가시적이고 폭력적인 형태의 국가주의가 아니라 스스로 복종하게 만드는 교육으로서의 국가주의는 더욱 세련되어졌다. 자율성도 창의성도 없이 국가에 대해 맹목적인 충성을 배우고 체제에 순응하며 자라는 국민들은 그 사회 내에서 일어나는 군사적이고 집단적인 폭력을 수긍하고 그것에 동조하게 된다. 더 나아가 전체주의, 국수주의, 자민족 중심주의로 인한 전쟁에도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렇게 반평화적인 도덕을 학생들 역시 재미없어하고 별로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 인류와 모든 생명에 대한 관심과 애정, 평화적 감수성을 가진 인간을 양성해내는 도덕 교육은 언제쯤이나 가능한 것일까?

<참고한 책>

김상봉(2005), 『도덕교육의 파시즘』, 도서출판 길
전영록, 「국가·민족에 대한 성찰, 인류학적 태도 가르쳐야」, 우리교육 2006년 7월호

덧붙임

여옥 님은 '전쟁없는 세상'(http://withoutwar.org)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