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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준의 인권이야기]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틀 (1)

종합적 프레임의 필요성

<편집자 주> 이번호 [김명준의 인권이야기]는 하나의 글이지만 분량이 길어,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두 개의 글로 나누어 싣습니다.


이제 지난 기사에서 남겨둔 두 가지 질문에 대해 검토해보기로 하자. 두 가지 질문은 이것이다. “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된 권리들, 혹은 미디어와 관련된 권리의 내용들은 무엇이며, 그 총체를 우린 무엇이라 부를 것인가?” “인권운동 혹은 인권을 보장해야 할 국가나 독립기구(국가인권위원회)는 미디어/커뮤니케이션과 관련해서 어떤 프레임을 갖고 어떤 영역에 걸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

물론 이 두 가지 질문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다. 권리에 대한 프레임이 없다면 인권 행위자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일 것이고, 실천적인 역할에 대한 고민이 결여된다면 프레임은 현학적이거나 탁상공론에 불과할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이 질문들에 대한 정리된 답변이 준비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강조하려는 것은, 여전히 이 질문들이 가설적 답변과 만나면서 발전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선 실천적인 역할에 대한 구상을 전제로 권리 개념의 프레임과 관련된 문제들부터 검토해보기로 한다.

A. 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된 권리들의 등장과 확대

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된 권리의 개념은 흔히 언급되는 ‘표현의 자유’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존재해왔다. 우리나라 헌법만 하더라도 표현의 자유뿐만 아니라 알 권리, 프라이버시권 등을 명시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각종 법안에서 그리고 법적 개념으로 정식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사회적으로 존중되거나 합의되어온, 다양한 권리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방송법에서 중요시되는 권리중 하나는 이른바 ‘시청자 주권’ 개념이며, 그러한 권리의 보장을 위한 방법으로서 시청자위원회를 설립하거나 시청자운동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개념은 대의제적 방송 시스템(국민을 대신해서 전문가들이 방송하는 시스템)을 주요한 방송 시스템으로 놓고 그러한 방송 시스템이 복무해야 할 대상인 시청자의 다양한 권리들을 강조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청자 주권 개념의 연장선에 놓여있으나 동시에 ‘비전문적인 시청자-전문적 방송사’의 대칭 관계를 넘어서는 민중의 자기표현과 미디어에 대한 참여를 강조하는 개념으로 대표적인 것은 퍼블릭 액세스권이다.

또 다른 예로, 정보통신 분야에서 발전해온 개념인 ‘정보인권’이 있다. 이 개념은 아직 그것의 구체적인 법적 표현이나 포괄 범위는 모호하지만 주로 정보기술의 발전에 따라 등장한 새로운 매체 혹은 재편된 기존 매체 분야에서 부각되는 표현의 자유나 프라이버시의 보호 등을 포괄하는 것으로서 이미 대중적으로 공인되어 있으며 주요 정책 개념(2008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사업 영역 중 주요 분야로 언급되어 있다)으로 자리잡고 있다.

더 많은 예들을 언급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이 우리 삶의 중요한 영역으로 부각되고 성장해가면서 다양한 권리들도 이론적, 실천적으로 부각되고 형성되어온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일 것이다.

B. 종합적 프레임의 필요성

이러한 권리의 확대, 권리 개념의 형성 과정은 그 자체로 사회적 진보의 한 표현이겠지만, 그 변화와 발전의 과정에서 우리에게 부각되는 한 가지 과제는 다양한 권리들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종합적 프레임을 설정하는 것이다. 종합적 프레임의 설정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필요하다.

첫째, 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된 다양한 권리들이 등장하고 부각되는 과정에서 각각의 권리들의 상호관계 및 그 권리가 포괄하는 범위와 지시하는 내용이 보다 정확히 밝혀져야 하며, 각각의 권리가 지닌 위상과 상호관계를 해명할 수 있는 프레임이 없이 이러한 시도는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정보인권’은 그것이 특수한 IT기술의 영역에서 존재하는 권리인지 아니면 새로운 정보기술에 의해 전면적으로 규정되는 커뮤니케이션 시스템 전반과 관련된 권리인지 해명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 개념은 지나치게 폭넓은 개념이 될 수 있다. 아니면 인터넷이라는 특정 매체에 제한되거나 프라이버시권의 약간 확장된 변종 개념 사이를 모호하게 넘나들며 현실과 괴리될 것이다. UN의 WSIS 회의(정보사회를 위한 세계정상회의)에서 첫 번째 논쟁거리가 ‘정보사회’의 포괄 범위였다는 사실은 이러한 개념 설정이 왜 필요한가를 입증하는 사례의 하나이다.

둘째, 미디어 융합 상황에 따른 정책 집행 기구의 개편이 진행되는 현재의 상황에서 권리 개념의 종합적 프레임은 올바른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이다. 예를 들어 통신의 영역에서 발전해온 보편적 서비스 개념은 방송의 영역에서 난시청 해소와 쌍을 이루고 있으며 그 종합적 내용과 개념 설정은 필수적이다. 이와는 결을 달리 하는 예로,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퍼블릭 액세스권의 의미를 둘러싼 고민이 있다.

퍼블릭 액세스권은 가용 채널의 제한성(전통적 방송은 특정 주파수 대역 내에서 제한된 채널 숫자를 지닌다), 채널간의 기술적 평등성(채널 간에는 위계가 없다) 및 한 채널당 프로그램 편성 시간의 제한성(프로그램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선형적 편성을 기초로 하는 방송의 최대 편성시간은 하루 24시간이다)을 기초로 하는 방송에서의 개념이다. 이 개념은, 가용 채널이 무제한이며, 채널간의 위계가 존재하고(IPTV의 첫 번째 화면은 일종의 폐쇄된 포털과 같으며 특정한 채널이나 콘텐츠는 어느 수준의 디렉토리 속에 있느냐에 따라 노출도가 달라진다) 편성 시간의 제한이 없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그 철학의 올바름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정책 의제로 종합되어 재구성되지 않으면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셋째, 사회운동 및 독립기구 등을 모두 포괄하여 사회의 각 영역이 어느 정도로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영역에 대해 이해하고 자신의 구체적인 전략과 정책으로 가져갈 것인가를 판단하기 위해서도 종합적 프레임은 필수적이다. 사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지만, 만일 종합적 프레임의 설정과 그에 따른 실천이 이어질 수 있다면 이런 상상이 가능할 수도 있다. 커뮤니케이션이 모든 사회운동 및 국가 영역에 걸쳐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 사회의 커뮤니케이션이 고도로 (신자유주의적인 기준이 아니라 인권의 확장이라는 기준에서) 발전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된 특화된 운동 주체 및 정책 범주의 축소로 표현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덧붙임

김명준 님은 미디액트 소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