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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_세상] “가스 한번 안 끊겨본 사람 있나요?”

꽤 추운 날이었다. 김경자 씨(가명)는 국화꽃을 들고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들 민수(가명)와 함께 사무실로 들어섰다. 김경자 씨는 2007년 6월부터 가스, 전기, 수도, 인터넷, 의료보험, 전화 등 각종 공과금이 몇 개월째 밀렸다. 그러다 얼마 전에야 가스요금을 포함한 몇 가지 공과금을 낼 수 있었다.

“아이고, 무슨 꽃을 들고 오셨어요?”
“에이...그래도 제가 늦어서 미안해서요. 사무실에 꽂아두세요.”

추운 날씨에 몸을 녹이라고 차를 권했더니 김경자 씨는 괜찮다며 사양했다.

“남편이 가구점을 운영하고 있는데 곧 접을 생각이에요. 그 가구점은 이전에 남편이 사원으로 일하다 밀린 월급 대신 인수받게 된 건데...” 김경자 씨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옆에 앉은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고개를 숙인 채 손톱만 만지고 있던 아들은 땅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급 4000원의 일

김경자 씨가 남편과 함께 맞벌이할 때는 그렇게 집안 형편이 어렵지 않았는데, 김경자 씨가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도 일을 정리하면서 갑작스럽게 어려워졌다. 그래서 김경자 씨는 단추공장에서 단추 다는 일을 서둘러 구했다. 그리고 지금 주급을 받으며, 시급 4000원의 적은 돈으로 하루에 5~6시간을 일하고 있다.

“왜 이렇게 됐는지 잘 모르겠어요. 가게도 잘 안 돼 정리하게 되고...남편이 어서 일자리를 다시 구해야 하는데...의욕이 없나 봐요. 사실 남편 나이에 직장 구하기 어렵죠. 그래도 직장은 구해야 하는데, 구해야 하는데...”

말끝을 흐리는 그녀 눈에서 눈물이 흐를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편안해 보이는 얼굴이 되레 당혹스러웠다. 가난한 사람들은 나약하거나 독하거나 하는 극단적인 두 가지 이미지로만 존재한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가난한 사람들을 힘겹고 안타까운, ‘나와는 다른’ 사람들로 여기게 만든다. 김경자 씨는 이미지가 아닌 현실에서 가난을 살아내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다.

“가스 대신 부탄가스로 물 데워 써요”

잠깐 넋 놓고 생각하는 사이 김경자 씨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술술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음...저희 집 가스가 끊긴 게 6월 말부터 10월 중순이었나? 10월 말쯤인가? 어쨌든 5개월 정도 끊겼어요. 예전에도 몇 번 끊긴 적이 있었는데 아시는 분들이 도와줘서 근근이 이어나가고 있었어요. 근데 이번에는 너무 오랫동안 밀려서 끊기더라고요. 한 동네 아주머니가 집 뒤에 있는 가스밸브를 열면 다시 쓸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열어서 며칠 썼는데, 며칠 뒤 가스공사 직원이 와서 바로 ‘핀’을 꽂아놓고 가더라구요. 못 열게.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부탄가스를 썼죠.”

김경자 씨 말은 계속 이어졌다.

“저희 집이 반지하거든요. 햇빛이 자주 들어오지는 않지만 그래도 살 만하거든요. 7, 8월 여름엔 찬물로 씻어도 괜찮고요. 그런데 요번 여름에 비가 굉장히 많이 왔잖아요. 씻는 건 둘째치고 보일러를 돌리지 못해서 벽에 곰팡이가 잔뜩 피고, 빨래도 잘 안 마르는 등 집안에 습기가 가득했어요. 너무 싫었죠. 나중엔 기분까지 축축해지더라구요. 9월로 넘어가니 슬슬 쌀쌀해져 방바닥은 차갑고, 애들한테 아침에 밥은 어찌어찌 해주어도 반찬도 잘 못해주고...애들이 씻어야 하는데 차가운 물만 나오고...그래서 어쩔 수 없이 부탄가스 여러 개 써가며 물 데워서 쓰고 그랬어요. 애들한테 젤 미안하죠.”

밀린 가스요금은 20만 원이 훌쩍 넘었다. 김경자 씨는 급한 대로 단추공장에서 일주일 동안 일해서 받은 돈 8만 원이라도 내서 가스를 이어보려고 했다.

▲ 밀린 가스요금은 20만 원이 훌쩍 넘었다. 김경자 씨는 급한 대로 단추공장에서 일주일 동안 일해서 받은 돈 8만 원이라도 내서 가스를 이어보려고 했다.



가스 끊겠다는 ‘파란딱지’의 경고

밀린 가스요금은 20만 원이 훌쩍 넘었다. 급한 대로 단추공장에서 일주일 동안 일해서 받은 돈 8만 원이라도 내서 가스를 이어보려고 했다. 그러나 가스공사로 연락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구구절절 말했는데도 가스공사에서는 밀린 돈을 전부 내야 가스를 다시 공급해주겠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래서 뭐, 약간 도움을 받아서 냈어요. 지금은 난방도 잘 되고 좋죠. 재작년, 작년 겨울에는 매달 가스비가 8만, 9만 원 정도 나왔어요. 그게 몇 달만 밀려도 20만 원이 훌쩍 넘으니까, 막 돈이 불어나는 게 무섭고 그랬어요. 근데 참 웃긴 게요, 전기랑 수도세는 많이 써도 2~3만 원이 나오는데 가스는 안 쓸 때도 많이 나오고, 특히나 겨울에는 거의 10만 원이 나와요. 저희 동네 둘러보면 계량기에 파란딱지 붙여놓은 집이 많이 보이거든요. 그게 가스 끊기기 직전이라는 경고 같은 건데, 그런 거 붙은 집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런 거 보면 내 일 같죠.”

도시가스요금을 한 달 못 내면 ‘독촉장’을 받게 된다. 두 달 밀리면 ‘공급중지 예고서’가 날아오고, 예고서가 정한 3개월을 넘기면 가스가 끊긴다. 가스공사는 이런 집의 가스밸브를 잠그고, 아예 핀까지 꽂아버린다. 그럼 그 집 사람들은 밥도 못 짓고 따뜻한 물도 못 쓰고 싸늘한 방바닥에서 잘 수밖에 없다. 물론 가스공사에서 인정할 만한 사유가 있는 가정이거나 저소득층에 한해 가스공급중지가 미뤄지기도 하나, 이런 사례는 극히 드물다.

“가스비가 또 오른다던데. 수도세도 오르고, 학비도 오르고...안 그래도 다른 것도 물가가 다 올라서 힘든 상황인데...가스비는 서민들에게는 좀 배려를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우리 동네도 가스비 때문에 힘들어하는 집이 정말 많거든요. 아껴도 아껴도 많이 나온다고 푸념들 하죠. 정말 작은, 조끄만 집도 매달 10만 원이 넘게 나오니까요. 아줌마들과 이야기해보면 생활비에서 가스비 지출이 가장 크대요. 그러니 가스 한번 안 끊겨본 사람이 있겠어요?”

가스요금이 또 오른다는 얘기를 할 때 지금껏 편안해 보이던 김경자 씨 낯빛이 사뭇 심각해졌다. 고개를 푹 숙이며 겁난다, 죽고 싶다는 말만 되뇌었다.

2005년 서울시 통계자료에 따르면 단전가구는 3만6426가구, 단수된 가구는 819가구 그리고 단가스 가구는 3만3422가구다.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지난달부터 도시가스를 사용하는 가구는 월 평균사용량 기준으로 약 1209원(부가세 포함)을 추가로 부담하게 된다. 도시가스의 평균 도매요금은 2.8퍼센트 인상되었고, 세제곱미터당 567.39원에서 583.55원으로 조정되었다. 도시가스의 인상, 어떤 기준으로 인상하는 걸까?

2005년부터 꾸준히 계속된 인상에 대해 가스공사는 도시가스 원료비가 유가와 환율에 연동되어 있어서 2개월마다 조정되고 지난 몇 개월간의 유가상승으로 가스요금이 인상되었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이러한 요금인상, 즉 세율 조정은 서민들이 주로 난방용으로 사용하는 등유세율에 비해 지나치게 낮아서 형평을 맞추기 위한 것이라 말한다.

“제가 어려워하는 점도 보이는데, 오히려 남들의 어려운 점이 더 잘 보여요”

“제가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직장생활을 했는데, 좀 무리했나 봐요. 과로도 하고... 그래서 류마티스 관절염에 걸렸어요. 그래서 일을 한 5시간? 6시간 정도하면 쑤시고, 아프죠. 한달에 한번 정기검진을 받아야 하는데 한번에 5~6만 원 정도 나가요. 부담이 되기도 하고... 그래서 2만 원 정도? 약만 타서 먹고 있어요. 예전에는 의료보험 연체 때문에 혜택도 잘 못받았는데, 그래도 지금은 조금 나아진 편이에요.”

앳된 얼굴의 아들 민수는 계속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을 만지작거리거나,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가 어색했는지 김경자 씨는 민수에게 할 이야기 있느냐고 물어보기도 하신다. 민수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얼마 전에는 쌀이 떨어진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아침에 밥도 못해먹고, 얘들은 그래도 학교에서 급식하고 그러니까, 그래도 미안하더라구요. 앞집이나 친한 사람한테도 쌀이 떨어졌다고 이야기하기도 좀 그렇고, 그래도 그저껜가? 센터에 지원을 받으면서 김치를 준다길래 쌀을 달라고 하니까 주셨어요. 염치가 참 없었는데...”

말을 하시며 작게 웃으셨다. 지금도 전기와 수도, 그리고 인터넷과 의료보험이 조금씩 밀려있는 상태라고 하신다. 중학생인 딸은 한 달에 15만 원씩 낸다. 그런데 아들은 등록비나, 여타 다른 돈을 25만 원 정도 내야 한다. 근데 얼마 전 등록금을 면제 받았다고 하시며 아까보다는 좀 더 환하게 웃는다.

“예전에 월세가 밀렸었어요. 그래서 방을 빼야 할 상황이 생겼었는데, 뭐 빼고, 뭐 빼고 이러니까 500만 원짜리 집을 구해야 하더라고요. 막막했어요. 지금은 도움을 많이 받아서 괜찮아졌는데, 그때 생각하고 지금 또 생각해보면 제 어려운 점도 보이지만 오히려 주변 동네사람들이 더 많이 보이는 거 같아요. 조금 있으면 대통령 선거하잖아요.
글쎄요...대통령이 되는 사람이라면 정직하고, 평등하고, 빈부격차도 많은데, 하여간 제가 잘 알지 못하는데 그래도 이렇게 딱 보면 사는 사람은 돈을 계속 벌고, 어려움 사람은 계속 못 벌고, 그런 격차를 조절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서민들의 고통, 그리고 내가 처했던 그런 가스가 끊기고, 그런 걸 볼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서, 현재 가스나 수도, 뭐 그런 게 연체되고 그런 상황도 중요하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밑에서부터 알아가야죠, 격차가 많이 벌어지고 하니까 사회적으로도 많이 암울할 것 같아요. 그런게 권력으로 된다는 것도 참 슬픈 일이지만 그래도 체계를 어느 정도 만들고 해서 이러한 것들은 좀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항상 이렇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죠.”

산업자원부 홈페이지

▲ 산업자원부 홈페이지



단 한 순간의 행복, 그러나 이어지는 고통

얼마 전인 12월 6일, 산업자원부와 한국도시가스협회가 올 겨울, 돈이 없어 가스 요금을 내지 못한 서민들에게 그동안의 연체요금을 나눠서 낼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 ‘따뜻한 겨울나기’라는 이 제도는 연체 도시가스요금을 분납할 수 있게 하고 내년 5월까지는 취약계층에 대한 가스공급 중단도 유예하겠다고 한다.

물론 취약계층에게는 굉장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산자부와 가스협회가 명시한 기간은 2007년 10월부터 2008년 5월까지다. 즉, 이 기간까지만 가스공급 중단을 보류하고 그 다음 하절기에는 끊어버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더군다나 이 정책은 지속적인 정책이 아니라 일시적인 정책이므로 취약계층들은 다음 하절기에는 곰팡이, 그리고 습기와 싸워야 할 것이고 동절기에는 또 다시 차가운 방바닥, 차가운 물과 싸워야 할 것이다. 밥을 못해먹는 것은 물론,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편안하고 아늑한 주거생활도 누릴 수 없다. 가장 기본적인 생활요건, 즉 가스나 전기 등이 끊기는 것을 일시적인 정책으로 무마하려는 산자부와 가스협회의 정책은 일시적으로는 효과가 있겠으나 추후 또 다시 되풀이 될 일상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 따뜻한 물과 아늑하고 편안한 집 등 기본적으로 우리가 누려야 생활을 우리는 언제쯤 맘 편히 누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