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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대로 참고 살래? 비싼 대로 견디면서 살래?

주거실태조사를 겉치레로 만들어버리는 뉴타운계획

세입자의 59.6%가 임대아파트의 적정규모로 66~99㎡(20~30평)를 희망했다는 성북구청의 2007년 초 주거실태조사 결과. 그런데 이 결과를 반영하도록 되어있는 재정비촉진계획(2007년 6월 공람)에서 60㎡(18평) 이상의 임대아파트는 지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구청에서는 이 계획이 주거실태조사 결과를 반영한 계획이라고 주장한다. 도대체 어디에서 어긋난 것일까. 그리고 이 계획은 장위뉴타운 세입자들의 삶을 어떻게 뒤틀어놓을까.

50만 평을 한꺼번에 갈아엎는 장위재정비촉진계획

장위재정비촉진계획은 성북구 장위동 일대 약 56만 5천평을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하는 거대한 개발계획이다. 이 중 존치관리구역(개발하지 않고 남겨두는 구역)은 6.51%밖에 되지 않는다. 1, 2차 뉴타운 사업지구에서 평균 24.64%였던 것에 비해, 장위뉴타운은 거의 모든 구역을 갈아엎는 방식으로 계획이 수립되었다.

현재 장위재정비촉진지구 안에 살고 있는 인구는 2만 7천 세대, 7만 명이 넘는 규모다. 현재 계획에 제시된 것처럼 2007년부터 9개 구역에서 개발사업에 들어간다면 1만 6천 여 세대가 한꺼번에 임시거주지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주변 지역의 임대료 폭등과 전세대란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도 2~3년 고생한 후 돌아와서 살기 좋아진다는 보장이라도 있다면 어쨌든 견뎌볼 만할 수도 있다.

재정착해서 살기 좋아지는 계획이 어떤 것일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의사가 확인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개발사업은 재개발·재건축 조합의 손익계산에만 맞춰 진행되었지만 뉴타운사업을 규정하는 도시재정비촉진을위한특별법은 계획 수립 전에 주거실태조사를 의무화했다. 또한 주거실태조사 결과를 계획에 반영하도록 했다. 성북구 역시 2006년 8월 장위뉴타운 1,516가구를 방문면접했다. 그러나 현재의 장위재정비촉진계획에는 장위뉴타운 거주가구의 79.6%를 차지하는 세입자들의 바램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이제 주거실태조사에서 드러난 세입자들의 의견과 장위재정비촉진계획을 비교하면서 살펴보자.

높은 곳에서 바라본 장위뉴타운 일대. 개발이 시급하지도 않은, 이 넓은 땅을 모두 갈아엎어 발생할 혼란과 고통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 높은 곳에서 바라본 장위뉴타운 일대. 개발이 시급하지도 않은, 이 넓은 땅을 모두 갈아엎어 발생할 혼란과 고통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세입자들의 기대가 무시되는 과정

장위재정비촉진지구 주거실태조사 결과와 장위재정비촉진계획 중 임대아파트 건립계획비율을 표로 재구성하면 아래와 같다. 한눈에 살펴볼 수 있듯이 임대아파트의 적정규모에 대한 수요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넓은 면적에 대한 욕구를 그대로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요즘 20~30평이 과도한 욕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아파트는 애초에 지어지지 않는다. 임대아파트의 전용면적 비율이 60㎡(18평) 이하로 제한되어있기 때문이다. 현재 장위뉴타운 세입자들의 절반이 60㎡ 이상의 주택에 거주하는 것과 비교해 봐도 비현실적이다.



전용면적이 제한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평형 배분을 달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평형 배분의 기준이 되는 것은 서울시 도시재정비위원회 심의기준(2007.3)이다. 적어도 40%는 40㎡(12평) 이하의 주택을 짓게 되어있다. 그러나 심의기준 안에서라도 넓은 평형에 가깝게 지을 수 있는데 왜 40㎡ 이하의 아파트 비율이 가장 많은 것일까.

성북구는 “임대차 희망 규모 및 임대차 지불가능력을 고려하여 배분”했다고 밝히면서 예상 전세가를 제시했다. 서울시 강서구 둔촌동 주공임대아파트(51㎡)를 기준으로 임대보증금과 월임대료를 전세가격으로 환산해 아래와 같이 제시했다. 임대차 지불가능력을 따져 싼 아파트를 더 짓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결국 세입자들이 원하는 적정규모에 대한 기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임대아파트 공급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경제력만을 기준으로 평형을 계획한 것이다. 게다가 재개발임대아파트의 임대료는 건설원가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입주 시점의 임대료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성북구가 세입자들의 임대료 부담을 ‘걱정’해 임대아파트 건립계획을 세운 것일까. 그렇다고 보기에는 초소형 임대아파트도 4천만 원인 정책과 3천만 원 이하를 적정임대료로 제시한 세입자가 50%인 현실의 괴리가 너무 크다.

19%로 차례가 돌아오는 세입자들은 어떤 이들일까

그래서인가. 어차피 장위뉴타운의 임대주택은 현재 세입자 가구의 19%밖에 들어갈 수 없는 숫자로 계획되어있다. 장위재정비촉진계획에서 예정하고 있는 주택공급물량은 모두 2만 4천 여 호, 이 중 임대주택은 4,106호(17.13%)에 그치고 있다. 장위재정비촉진구역 안에 거주하는 세입자는 21,404 세대다. 아무런 조건에 구애받지 않더라도 19%의 세입자밖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들어가게 되는 세입자는 어떤 이들일까. 66㎡ 이하를 희망한 사람들일까, 아니면 5천만 원 정도의 전세가격을 부담할 수 있는 사람들일까.

성북구로부터 받은 주거실태조사결과에는 현재 세입자들의 임대료 수준이 나와 있지 않아 서울시 자료(<레디앙> ‘대한민국주택지도’에서 재인용)를 참고해보자. 성북구의 평균전세금은 5,490만 원, 월세가구 평균보증금은 1,179만 원, 평균 월임대료는 24만 원이다.

재개발임대아파트의 임대가격을 고려하면 평균전세금이나 평균임대료 이상을 부담할 수 있는 사람들이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그만한 임대료 부담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굳이 그 임대료를 들고 60㎡ 이하의 임대아파트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 반면, 평균전세금이나 평균임대료 이하로 거주했던 사람들은 집이 조금 좁은 걸 참아보려고 해도 임대료를 부담할 수 없어 들어갈 수 없다.

대표적인 주거빈곤층인 지하/반지하방, 옥탑방 세입자들은 어떨까. 성북구의 지하/반지하방 거주민 비율은 10.2%다. 이들은 대부분 세입자일 텐데 이들이 부담하는 현재 임대료 수준으로 임대아파트 입주는 거의 불가능하다. 임대료 부담이 덜한 다가구매입임대주택 등으로 세입자대책을 준비할 계획이 있냐는 질의에도 성북구는 묵묵부답이다.

헌집 줄게 새집 다오=싼 집 줄게 비싼 집 다오? 좁은 집 다오?

장위뉴타운 세입자들은 지역이나 주택에 대한 불만 사항으로 주택노후(20.7%), 적은 평수(14.1%), 주차공간 부족(14.0%), 비싼 임대료(11.9%) 등을 들었다. 장위재정비촉진계획은 거주민들의 불만 사항을 개선할 수 있도록 수립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재의 장위재정비촉진계획은 ‘불만은 나가서 풀라’는 의미일 뿐이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가난한 사람들이나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모두 재정착이 어렵다. 결국 세입자의 19%가 들어갈 수 있는 임대아파트는 전세 3~4천만 원(임대보증금 1천만 원) 수준의 임대료 부담이 가능한 사람들에게만 고려사항이 될 것이다. 50년이라는 임대기간이 주는 든든함, 약간 낮은 임대료와 좁고 차별이 심한 거주환경 사이에서 재어보다가 입주하거나 포기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장위뉴타운 지구 안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주택의 모습. 이런 주택들이 개발의 근거인 듯 얘기되지만 개발이 끝난 후 여기에 살던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 장위뉴타운 지구 안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주택의 모습. 이런 주택들이 개발의 근거인 듯 얘기되지만 개발이 끝난 후 여기에 살던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이미 올라버린 집값 때문에 더욱 열악한 주거생활을 하게 되거나, 싼 집을 찾아 멀리 이사 갔다가 다시 개발로 쫓겨날 것이다. 그나마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현재의 주거환경보다 나을 것 없는 집으로 좀더 많은 임대료를 부담하면서 이사하게 될 것이다. 임대아파트에 입주하게 되는 사람들은 그리 나쁠 것도 없던 집에서 번거롭게 이사하는 과정을 거치며 그리 좋을 것도 없는 아파트에 살게 될 것이다.

주거실태조사를 왜곡하는 뉴타운, 이대로는 안 된다

뉴타운 지역은 세입자 비율이 평균 72.5%로 다른 지역들에 비해 세입자가 훨씬 많은 특징을 보인다. 뉴타운 사업지구의 월평균 가구소득은 서울시 거주 가구 월평균 가구소득의 60%다. 100만원 미만의 가구소득으로 살아가는 빈곤층이 20.3%로, 서울시의 네 배에 달한다. 그러나 뉴타운계획은 현실을 무시한 채 달려가고 있다.

개발사업 전에 주거실태조사를 의무화한 방향은 매우 바람직하다. 그리고 거주민들이 개발계획 수립에 참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더욱 나아가야 한다. 우선 주거실태조사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 기껏 조사해놓은 결과마저 왜곡시키는 임대주택정책이 개선되어야 한다. 임대주택 건립비율이 높아져야 하며 사업시행자뿐만 아니라 지자체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 다가구 매입임대주택 등 다양한 수단을 활용하는 세입자대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초소형 주택을 지어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공급비용을 보전하려는 발상을 바꿔야 한다. 임대평형은 현실적인 수준으로 상향조정하고 가구원 수에 맞춰 배분하되, 임대료는 소득수준을 고려해서 책정하는 정책 도입이 필요하다. 이미 서울시도 임대료 차등부과제를 검토한 바 있다.

임대주택정책이 변하지 않는다면 개발이 시행될 때마다 세입자들은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다. 강남북 균형개발을 외치며 낙후한 주거환경을 바꾸겠다고 시작한 뉴타운.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팔아 개발업자를 배불리면서 도시 전체의 집값을 상승시키는 것이 바로 뉴타운의 실체다. 임대주택정책만으로 뉴타운의 본질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일단 임대주택정책은 바뀌어야 한다.
덧붙임

◎ 이 기사는 <진보복덕방>(www.culturalaction.org/housing)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같은 기사를 <진보복덕방> 6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