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오름 > 인권문헌읽기

[인권문헌읽기] 마틴 니묄러 “그들이 왔다”

수많은 '나'와의 연결이 절실한 때

대대적인 6월 항쟁 20주년 기념행사가 뜨거운 태양 아래 지나갔다. 자극되는 많은 기억들 사이로 ‘공식화’된 행사 언저리에서 구경꾼으로 내몰린 느낌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오늘의 안타까운 현실을 비판하며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강조하는 의견들도 많았다. 6월 항쟁 20주년에 대한 어느 신문의 사설 제목은 “연대하자, 불평등을 극복하자”던데, 10주년 때 창간됐던 어느 잡지는 “자유와 평등을 넘어 사회적 연대로”를 큰 제목으로 뽑았던 것 같다. 어떤 자리, 어떤 입장에서 6월 항쟁을 맞았던 간에 앞에 놓인 과제는 연대를 요구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문득 널리 인용되는 문장이 떠올랐다. “처음에 그들은 공산주의자를 잡으러 왔다”로 시작되는 이 말은 자기 반성과 더불어 방관자와 무관심을 비판한다. 상호의존성과 연대를 강조하려는 의도로 전세계적으로 자주 인용되고 있다.

이 유명한 인용문의 주인은 독일의 신학자이자 목사였던 마틴 니묄러로 알려져 있다. 마틴 니묄러의 생은 극과 극이다. 목사와 평화운동가가 되기 전의 그는 1차 대전 때 독일 잠수함(U 보트)의 지휘자였고, 또한 한 때는 히틀러와 나치당의 지지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나치의 교회문제 간섭으로 인해 반대 입장에 서게 됐다. 니묄러는 1931년 ‘목회자 긴급 동맹’을 결성하여 나치에 대한 저항에 나섰고 전국적으로 설교를 하러 다니던 중 1937년 비밀경찰에 체포된다. 나치 수용소로 보내진 그는 전쟁이 끝날 무렵까지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 종교인으로서의 그는 고백교회의 창설자이기도 하고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의장도 지냈다. 전후 평화운동가로서 활약한 그는 서독의 서구와의 군사 동맹에 강력히 반대했고, 핵무기 경쟁에 반대하며 세계적 화해와 군축을 위해 싸웠다.

오늘의 인용문은 마틴 니묄러의 ‘고백’으로 알려져 있기는 하나, 하나의 원본이 있는 것은 아니다. 혹자는 이를 ‘시’로 부르기도 한다. 그가 행한 수많은 인터뷰와 설교에서 질문과 의도에 따라 혹은 강조하고 싶은 바에 따라 지칭하는 대상과 배열되는 순서가 달랐다고 한다. 또한 인용하는 이의 의도에 따라 달라지기도 했다. 니묄러가 처음 이런 말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1946년에는 ‘공산주의자’, ‘불치병 환자’, ‘장애인’, ‘유태인 또는 여호와의 증인’, ‘점령된 국가의 인민’을 언급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유태인만이 아니라 많은 독일인들이 불치병자나 장애인이란 이유로 정책적으로 살해당했던 배경이 있다.

미국에서 이 말이 널리 인용되던 때에는 매카시즘의 영향과 인용하는 이의 편향된 의도 때문에 ‘공산주의자’가 사라지고 ‘유태인’이 맨 앞에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홀로코스트(유태인 학살) 박물관에 새겨져 있다는 문구가 대표적인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공산주의자’가 아닌 ‘사회민주주의자’가 사용된다. 회자되는 다양한 종류의 표현 중에서 흔히 인용되는 것은 1968년의 미국 의회에서의 연설 기록으로 알려진 것이나, 이 또한 ‘정본’이라고 주장되는 문장이 조금씩 다르다. 오늘 소개하는 문장은 의회 기록으로 알려진 것 중 하나이다.

오늘 날에도 '세계화 반대자', '성적 소수자', '이주자' 등이 들어가는 다양한 개작을 만날 수 있다. <출처 http://www.gdansk_life.com>

▲ 오늘 날에도 '세계화 반대자', '성적 소수자', '이주자' 등이 들어가는 다양한 개작을 만날 수 있다. <출처 http://www.gdansk_life.com>


정확한 문장이 무엇이었냐를 다투기보다는 여기에 담긴 의미에 더 주목할 가치가 있다. 민권운동과 베트남 전쟁 반대자들이 즐겨 인용했다는 것처럼 이 말의 메시지와 영향력을 빌어 오늘날에도 계속 비슷한 문구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세계화 반대자’, ‘무슬림’, ‘성적 소수자’, ‘이주자’, ‘시위대’ 등이 들어가는 다양한 개작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개작을 한다면 그들이 잡으러 온 사람들 속에 누구를 넣고 뺄 수 있을까? 오늘 한국 사회에는 잡힐 위기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지 않은가. 더욱 중요한 것은 “결국 나를 지켜줄 만한 사람들이 아무도 남아있지 않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누구인가이다.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는 ‘나’를 돌아보는 수많은 ‘나’와의 연결이 절실한 때이다.

마틴 니묄러 “그들이 왔다”(Martin Niemöller, "They Came,")

“제일 먼저 그들은 공산주의자를 잡으러 왔지만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노동조합원을 잡으러 왔지만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므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유대인을 잡으러 왔지만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나를 잡으러 왔지만 나를 위해 말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셰린 이샤이의 ‘세계인권사상사’에서 재인용)
덧붙임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