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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진보에 레인보우를 입히다

9일~10일 진행될 성소수자 진보포럼

한국 진보운동 내에는 매우 다양한 토론과 포럼이 존재한다. 여성, 환경, 노동, 보건 등 굵직굵직한 이슈에 걸맞는 큰 규모의 포럼을 접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여기에 6월 9일, 10일 개최되는 성소수자 진보포럼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렇다고 기존 포럼과 반대되는 전선을 구축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성소수자 진보포럼이라는 말을 듣고 병렬적으로 나열된 세 단어가 과연 조합이 가능할지 의구심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소수자 진보포럼은 여느 포럼과 마찬가지로 성소수자 운동 내의 다양한 의제들을 한데 모아 참가자들과 함께 전략과 대안을 찾아보자는 거창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운동 사회 내에서 중요성조차 선뜻 말하지 못하고 의제조차 다뤄지지 못했던 주제들이 성소수자 진보포럼에서는 메인주제로 다루어지고 있고 역사 속에서 가려져 있던 성소수자 운동이 영상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9일~10일 진행될 2007 성소수자 진보포럼<출처; 동성애자인권연대 www.outpridekorea.com>

▲ 9일~10일 진행될 2007 성소수자 진보포럼<출처; 동성애자인권연대 www.outpridekorea.com>


성소수자 운동의 성장을 위해

올해로 성소수자 운동이 국내에서 시작된 지 13년이 되었다. 짧으면 짧고 길면 긴 시간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일한 정체성에 대한 만족에 안위하고 ‘단지’ 존재를 알리는 운동에 머물러 있던 운동의 역사를 감안할 때, 성소수자들이 사회쟁점에 개입하며 정치적 요구를 표현한 지는 정작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처음 한국에 ‘동성애’라는 말이 소개되고 단체가 결성되었을 때 운동(단체)이 대중을 기반에 두고 성장하기보다 성정치 담론이나 학문의 한 부분으로 이해되고 시작되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지금의 성소수자 운동의 성장은 매우 빠르다. 최근 집회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레인보우 깃발의 등장도 되짚어보면 10년도 채 되지 않는다.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성소수자 운동은 교과서 차별 조항 개정이나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성지향에 의한 차별금지 명문화, 청소년보호법 상의 동성애 차별 조항 삭제 등 ‘소소한’ 성과들도 이뤄내었다. 지금은 독자적인 성소수자 운동 전략을 조금씩 버리고 연대활동을 지향하며 다양한 공동전선 활동으로 범위를 확대해 가고 있다. 가깝게 지난 6월 2일 있었던 제8회 퀴어퍼레이드에서 보인 성소수자들의 급진적인 요구들과 정치력은 앞으로 사회운동 내 중요한 일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가 최근 동성애 비정상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이명박 대선후보의 입을 오바로크하는 퍼포먼스를 보인 것이나, 동성애자인권연대와 에이즈 운동, 인권단체들이 동성애자의 치부라고 할 수 있는 에이즈를 전면으로 내세운 것 모두 진보를 추구하는 성소수자 운동의 가능성을 말해주고 있다.

성소수자 진보포럼은 성소수자들의 요구와 이해, 운동의 대안을 성소수자들과 함께 고민해보는 자리다. 다양해지고 구체화되어 가는 모든 성소수자 이슈를 담을 수는 없어도 성소수자들에게 이데올로기 공격의 주요 무기가 되고 있는 에이즈, 청소년 성소수자 이슈를 통해 진보적인 성소수자 운동의 가능성을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진보운동, 레인보우를 입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펜으로 선 하나 그려 넣고 좌우를 나눈다고 진보와 보수가 확실히 구분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진보운동 내에서도 그 경계선에서 줄타기를 하는 이들을 찾아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최근 범민련 기관지 <민족의 진로>에 게재된 글처럼, 동성애를 흔히 신자유주의 흐름에 편승되어 유입되어 들어온 사회문제의 한 부분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대표적이다. 이런 관점에서 성소수자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점철된 사회 문제의 단편으로만 인식될 뿐 지배계급의 신자유주의 전략을 패퇴시키는 연대의 대상이 되지는 못한다. 동성애자들은 신자유주의 정책과 맞물려 돌아가는 신보수주의의 최대 피해자다. 이미 역사 속에서 전쟁과 신보수주의로 인한 억압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런 역사적 사실과 현실을 간과하고 성소수자들을 단순히 민족성을 견지하지 못한 사회문제집단으로 바라보는 건 중요한 연대세력을 잃는 것이자 매우 커다란 활동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뉴라이트의 등장, 이명박 대선후보 발언 등 이미 한국도 진보와 보수의 경계가 더욱 명확해 지고 있다. 과거 미국 대선에서는 성소수자들의 권리 쟁취문제가 후보 당선의 주요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입장차를 두고 진보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말하기도 한다. 한국사회 진보운동, 과연 레인보우를 입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성소수자 진보포럼에서는 특별히 미국 시카고대 교수이자 게이로 커밍아웃해 활동하고 있는 테드 제닝스와 함께 성경과 종교의 모순, 기독교 근본주의의 위험에 대해 토론한다. 그리고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과 함께 진보정당과 성소수자의 인권을, 한겨레 기획의원 홍세화씨로부터 우리 사회의 아웃사이더 이야기를 들어보려 한다.

성소수자들이 진보라는 이름을 걸고 포럼을 준비하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참여자들의 성정체성과 무관하게 성소수자 관련 의제에 관심을 갖고 있고 중요성을 느끼는 사람들과 직접 소통함으로써 성소수자 운동과제를 완전히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찾기 위해서다. 진보운동에 레인보우를 입히는 것은 성소수자들의 노력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진보운동 스스로가 열린 관점으로 레인보우를 받아들일 때 ‘진보’는 더욱 풍부해지고 진정으로 ‘모든 이들의 해방’을 위한 운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임

정욜님은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