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오름 > 일반

다큐멘터리 <대추리의 전쟁> 상영 불허로 드러난 '인권' 경찰의 본질

경찰청 인권보호센터가 ‘서울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아래 서울 평통사)이 주최하는 평화영화제에 대해 장소 사용 허가를 해주었다가 뒤늦게 말을 바꿔 불허 통보하는 바람에 물의를 빚고 있다. 불허의 이유는 상영작 중에 평택에 관한 다큐멘터리인 <대추리의 전쟁>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평화영화제 포스터 [출처] 서울 평통사

▲ 평화영화제 포스터 [출처] 서울 평통사



서울 평통사 측에 따르면, 서울 평통사는 옛 남영동 대공분실인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에서 10월 26일부터 29일까지 평화영화제를 진행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에 경찰 측으로부터 장소 협조를 받기 위해 8월 30일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에 공문을 보내 장소 사용 허가 요청을 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국가기관으로부터 후원 받을 것을 요구했고, 이에 서울 평통사는 국가인권위원회와 영화진흥위원회의 후원을 받아 그 내용을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에 보냈다. 이후 9월 18일과 22일 서울 평통사는 경찰 측 담당자인 양광모 경위에게서 장소 사용이 허가되었으니 별도의 허가 공문 없이 진행해도 좋다는 답변을 구두로 들었다.

그러나 경찰 측은 평통사가 리플렛 제작까지 다 마친 9월 29일 돌연 장소 사용을 불허한다고 알려왔고, 이에 항의하는 서울 평통사 측에게 담당 경위는 장소 사용을 허가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초 경찰은 인권보호센터의 이미지 쇄신을 위해 평화영화제 상영을 긍정적으로 검토했으나, 개막작인 <대추리의 전쟁> 때문에 결국 불허하기로 입장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경찰청 임국진 인권보호센터장은 "시위 진압 과정에서 벌어진 경찰과 주민들의 충돌 장면이 포함됐을 텐데 이를 경찰 건물 내에서 상영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서울 평통사는 지난 12일 경찰청 앞에서 '평화영화제 불허한 경찰청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경찰은 참가자들을 에워싸고 기자회견을 방해했다. [출처] 서울 평통사

▲ 서울 평통사는 지난 12일 경찰청 앞에서 '평화영화제 불허한 경찰청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경찰은 참가자들을 에워싸고 기자회견을 방해했다. [출처] 서울 평통사



그러나 경찰청 인권보호센터가 이처럼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영화제를 취사선택하여 장소 사용을 허가하거나 불허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검열 행위이다. 경찰의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시정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경찰청 인권보호센터가, 경찰이 시민들과 충돌하는 모습이 담겼다는 이유로 영화를 검열하려 든다는 것은 센터가 내세우는 ‘인권보호’란 것이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실제로 작년 10월 4일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바꾸면서 경찰은 ‘인권경찰’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했지만, 지금까지 센터가 어떤 의미있는 활동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센터 설립으로부터 불과 한 달 만에 전용철·홍덕표 두 농민이 경찰 폭력에 의해 사망했지만, 인권보호센터가 이와 관련해 한 것이라곤 항의의 뜻으로 센터를 점거한 인권활동가들을 하루만에 강제로 쫓아낸 것 뿐이다.

그 후로도 경찰의 심각한 인권 침해 사례는 여러 차례 있었으나,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는 침묵을 지켰다. 평택에선 경찰이 대추분교 철거과정에서 저항하는 주민들과 학생, 시민들에게 무지막지한 폭력을 가했고, 지금도 불법적인 감시와 통행제한으로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포항에서 건설노동자 하중근 씨가 또다시 경찰 폭력으로 사망했지만 경찰은 이 사건을 축소 은폐하고 있다. 또한 경찰은 소위 ‘평화시위 정착을 위한 민관공동위원회’를 주도하며, 사실상 대규모 집회를 금지하는 효과가 있는 비현실적 소음 규제 강화나 집회 참가자와 단체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관리 등 집회·시위의 자유를 축소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청 인권보호센터가 경찰의 이러한 반인권적인 행동들에 제동을 걸었다는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따라서 경찰은 인권보호센터를 통해 진정으로 인권을 이해하고 보호하려 노력하기보다는, 폭압적인 경찰의 이미지를 인권 친화적인 것으로 치장하는 선전도구로 이용하려는 것 뿐 아니냐는 인권단체들의 비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제1회 용산 인권영화제가 같은 장소에서 별 탈 없이 진행되기도 했으나, 이번 평화영화제에 대한 센터 측의 장소 사용 불허 방침은 이른바 ‘인권’ 경찰로 행세해온 경찰이 그러한 노력마저 포기한 것으로, 인권 경찰의 본질이 허구임이 잘 드러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에서 거절당한 평화영화제는, 민주노총 교육원으로 옮겨 진행된다. 또한 개막작 <대추리의 전쟁>에 대한 경찰의 검열조치에 항의하여, 25일 저녁 7시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전야제를 갖고 본 영화를 야외 상영하기로 했다. 당일 현장에서 평화영화제에 대한 경찰의 조직적 방해 행위가 있을 경우, 인권단체 경찰대응팀 등과 함께 대응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칭 ‘인권’ 경찰의 선전과는 달리, 옛 남영동 대공분실이 진정으로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려면 아직은 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