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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고공에도 봄이 오도록

- 4.26 옵티칼 희망버스를 다녀와서

4월 26일 토요일, 인권운동사랑방은 경북 구미로 향하는 ‘희망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2022년 11월 4일부터 불에 탄 공장에서 고용승계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그리고 공장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한 지는 475일째인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이하 옵티칼)의 해고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옵티칼은 일본 닛토덴코의 한국 자회사입니다. 2022년 10월 4일, 구미공장은 화재로 전소하자 회사는 노동자들을 너무나도 쉽게 해고했습니다. 공장이 불에 탔는데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노동자들을 해고로 내몰지 않을 방법은 충분히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1,300억 원의 화재보험금으로 공장을 재가동할 수 있고, 본사인 닛토덴코의 또 다른 한국 자회사인 한국니토옵티칼의 평택공장으로 노동자들을 고용승계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닛토덴코는 둘 중 어떠한 방법, 노력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고공농성이 500일이 오기 전에, 고공에도 봄이 오게. 희망버스의 제목이었습니다. 어느새 한국사회에서 ‘최장 고공농성’으로 기록되고 있는 이 투쟁에 어떤 식으로든 연대하며 함께 싸워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는 마음의 부대낌. 희망버스에 가야겠다는 마음에는 이 부대낌이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마음이 사랑방 안에서도 공유되고 ‘인권으로 읽는 세상’을 옵티칼 노동자들 투쟁을 담아 쓰기로 결정하기도 했었지요.

 

  

여러모로 가볍지만은 않은 마음으로 버스에 올라탔는데, 버스에서 내려 도착한 구미 공장의 분위기는 제 마음과 달랐습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줄지어있는 깃발과 사람들, 그걸 지켜보는 공장 옥상 위 박정혜와 소현숙 동지. 한 켠에서는 얼음 동동 띄운 호박 식혜와 커피, 비건 감자튀김을, 조금 더 안쪽에 있는 옵티칼 노조 사무실에서는 시원한 묵밥을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구미로 오는 길의 버스에서 한 분이 ‘날씨도 좋고 소풍 가는 것 같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습니다. 답답하고 막막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나눈다는 건 이런 느낌일까 싶더라구요. 묵밥을 먹으니 곧 행사가 시작되었고, 햇빛을 피해 그늘에서 요깃거리를 하던 이들이 하나둘 무대 앞으로 모였습니다. 수많은 이들의 연대발언과 힘찬 공연이 근 4시간가량 이어졌습니다. (그 사이 떡볶이도 먹었답니다.)

옵티칼 투쟁에서 마주한 연대 중 인상 깊었던 건 국제연대였습니다. 옵티칼의 본사인 닛토덴코는 일본의 기업입니다. 물량 조절부터 사업 철수, 그렇게 노동자들의 고용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본사에 노동자들은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는데, 옵티칼 해고노동자들은 본사인 닛토덴코를 만나는 것부터가 훨씬 어려워진 조건이었던 거죠. 그러나 이 투쟁에 일본 현지에 사는 노동자 시민 동지들이 함께하며 닛토덴코를 찾아가고, 그게 얼마나 옵티칼 해고노동자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었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희망버스에 다녀와 가장 곱씹어보게 되는 건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동지의 발언이었습니다. “닛토덴코. 너희는 화재를 핑계로 모든 걸 다 버리고 갔다. 집기도, 책상도. 작업복도, 볼펜도. 한순간에 쓸모없어지고 버려진 것들 가운데, 우리의 청춘이 있고, 삶이 있고, 노동이 있다. … 너희는 우리를 너무 간단하게 버렸으나, 우리마저 우리를 버릴 수는 없었다.” 이 문제를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 회사의 부당해고-라고 납작하게 말하기엔 너무나도 구체적이고 입체적인 노동자들의 삶이 여기 묻어있다는 사실이 와닿았습니다. 언젠가 읽은 옵티칼 해고노동자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회사가 망하길 바라서 이러는 게 아니다’라고 말한 것도 떠올랐습니다. 노동자들에게 이 일터란 얼마나 큰 삶의 조각일지, 그래서 그만큼 또 얼마나 이 상황이 참담하고 분노스러울지. 그 마음을 자꾸 가늠해보게 되더라구요.

 

  

옵티칼 희망버스에서 마주한 공장 옥상은 생각보다 낮아서, 다 펼친 깃대 끝에 박정혜와 소현숙 동지의 손이 닿았습니다. 이 날은 공장 벽면에 붙인 꽃 스티커를 허공에서 주고받으며, 500일이 오기 전 함께 봄을 맞이하자고 약속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희망버스 다음 날 새벽, 건강이 악화된 소현숙이 옥상에서 내려왔다는 소식에 수많은 이들이 ‘수고 많았다’, ‘우리가 계속 싸울테니 걱정 말라’는 말을 소식방에 남겼습니다. 이런 단단한 연대가 함께이니, 봄이 아직은 오지 않았을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올 거라는 희망을 갖게 되더랍니다. 그러니 저희 사랑방 후원인분들도 이 옵티칼 해고노동자들의 투쟁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네요! 다음 번 희망버스, 아니 희망을 이뤄낸 버스에는 함께 몸을 실어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