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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움틈] 학생인권 침해, 법으로 막는다

본격화되는 학생인권 법제화운동

학교현장에서 억압받고 있는 학생 인권을 법률로 보장하기 위한 입법운동이 본격화되고 있다. 학생생활규정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에도 불구하고 꿈쩍도 하지 않는 학교현장의 변화를 상위법을 통해 강제한다는 것이 학생인권 법제화 운동의 목표이다.


민주노동당, 학생인권 명시한 초·중등교육법 개정 추진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실(국회 교육위원회 소속)과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준)는 지난해 11월 학교 현장에서 보장되어야 할 학생인권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초안을 마련, 그동안 교육·청소년·인권단체 등 각계 의견을 수렴해 왔다. 오는 14일에는 청소년들의 의견을 추가로 수렴하기 위한 토론회가 국회에서 열린다.

현행 교육기본법 12조 1항은 "학생을 포함한 학습자의 기본적 인권은 학교교육 또는 사회교육의 과정에서 존중되고 보호된다"고 말하고 있지만, 학생 인권의 구체적 내용을 밝히지는 않고 있다. 기본법을 구체화한 초·중등교육법에서도 학생자치활동, 징계절차 등을 다룬 일부 조항을 제외하면 학생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학생인권은 각급 학교에서 제정권을 갖고 있는 학생생활규정에 따라 좌지우지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에 따라 민주노동당은 학생인권의 구체적 내용과 학교의 인권 보장 의무를 법률에 구체화하는 것을 목표로 초·중등교육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한 청소년인권활동가가 직접 제작한 패러디 포스터 [출처] 싸울아비(cafe.naver.com/webssaulabi.cafe)

▲ 한 청소년인권활동가가 직접 제작한 패러디 포스터 [출처] 싸울아비(cafe.naver.com/webssaulabi.cafe)



개정안에는 학생 인권에 부합하는 학교규칙 구성, 학생회 법제화, 체벌금지, 신체의자유·사생활의자유·표현의자유·집회결사의자유 등 학생인권 내용의 구체화, 정규시간 외 0교시·강제학습·용의복장규제·차별 금지, 교육부의 인권실태조사 의무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제기되어 온 학생인권문제를 대부분 포괄하는 개정안인 셈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8조(학교규칙)에서는 학칙으로 인해 학생 인권이 침해되어서는 않도록 하고 학생생활규정 제·개정 시 학생의견 수렴과 공청회 개최를 의무화했다. 17조(학생자치활동)에서는 학생회를 법제화하고 학생회의 권한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또한 18조(학생의 징계)에서는 체벌 금지를 명문화하는 한편, 강제적인 자율학습과 보충수업, 두발규제, 소지품검사 등을 금지행위로 명시하고 교육부에 학생인권실태조사, 인권교육 의무 등을 부가했다. 최종 개정안은 늦어도 2월말까지 확정돼 의원 공동 발의 형식으로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민주노동당 송경원 정책연구원은 "그동안 인권단체들과 청소년단체들이 꾸준히 제기해 온 문제의식과 학생인권 보장 활동이 이번 법 개정 추진에서 밑거름이 되었다"면서 "초·중등교육법에 학생인권의 세부 내용을 구체화하고 금지 대상을 명확화하면 학교현장의 변화를 어느 정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송 정책연구원은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더라도 학생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함으로써 학생인권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광주 학생권리조례제정운동 막바지 이르러

한편, 광주에서는 시 조례로 학생인권을 명문화하기 위한 조례제정운동이 한창이다. 전교조 학생생활연구회·광주광역시청소년인권센터 등은 지난해 '학생권리조례제정위원회'를 꾸리고 20여 차례 의견 조율과 설문조사 등을 거쳐 조례안 초안을 만들었다. 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열린 지역 공청회에서 나온 의견을 반영하여 최종안을 만든 뒤, 오는 4월 광주광역시 교육위원 이름으로 조례안을 발의, 교육위원회와 시의회에서 차례로 통과시킬 계획이다. 현 조례제정 과정에는 교육위원회 부의장으로 있는 장휘국 의원이 적극 결합하고 있는데다 교육위원들 대다수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통과 가능성이 높다.

학생권리조례 초안에 담긴 내용은 민주노동당 초·중등교육법 개정안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포괄적이다. 조례안은 학생을 교실에서 쫓아내거나 관제행사에 동원하는 등의 학습권 침해 행위, 교직원 화장실 청소 등 불필요한 노동 강요 행위,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학생의 인격을 모독하는 언어적 폭력 행위, 학생의 동의 없는 개인정보 수집과 유출 행위, 자의적인 학생 게시물 삭제 행위 등도 금지 대상으로 명확히 했다. 생리공결제 도입, 학생의 날 기념행사 보장, 문화활동과 자유로운 교제 보장, 사물함과 탈의실 설치 등을 요구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반면 두발·복장 규제 등과 관련해서는 두발·복장의 자유를 명시하지 않고, 다만 학생생활규정 제·개정시 학생 의견이 보장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는 데 그쳤다.

광주광역시청소년인권센터 김현 씨는 "조례가 제정되면 좀체 바뀌지 않는 학생생활규정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하나의 시범 모델이 만들어지면 다른 지역의 조례제정이나 상위법 개정을 이끌어내는 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5월 광화문에서 열린 청소년 두발자유 요구 집회 모습 [출처] 청소년인권포럼 아수나로 카페(cafe.naver.com/asunaro)

▲ 지난해 5월 광화문에서 열린 청소년 두발자유 요구 집회 모습 [출처] 청소년인권포럼 아수나로 카페(cafe.naver.com/asunaro)



학생인권 둘러싼 논란 가열될 듯

초·중등교육법 개정안과 광주학생권리조례안이 발의되면, 학생인권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아직까지 학생인권에 관한 사회적 인식이 낮은 상황에서 두 법안이 후퇴 없이 통과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특히 학생회 법제화와 체벌금지 등은 논란의 최선두에 설 것으로 전망된다.

먼저 학생회 법제화는 보수언론과 사학재단의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12월 열린우리당 구논회 의원등 13명의 의원이 학생회 법제화를 명시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먼저 발의했을 때도 보수언론과 사학재단은 '중고교를 정치판으로 만들려 하냐', '학생회가 법제화되면 전교조 전위부대로 전락할 것'이라는 식으로 여론을 몰아간 바 있다.

체벌 금지 조항은 보수집단은 물론,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교사단체의 동의조차 이끌어내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학생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체벌은 현 학교구조 안에서 학생을 지도하기 위한 '필요악'일 수 있다는 게 교사단체들의 일반적인 의견이다.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준) 김진숙 위원은 "학생들 입장에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폭력이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체벌을 필요악으로 정당화할 수는 없는 일"이라면서 "먼저 체벌을 금지한 뒤 체벌을 없앨 수 있는 대안을 모두가 함께 찾는 계기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 출범 첫해인 1998년 교육부가 정부 차원에서는 최초로 학생인권선언 제정을 추진하다 중단한 이래, 학생인권에 관한 사회적 합의는 계속 미뤄져 왔다. 이번 학생인권 법제화 움직임이 학생인권에 관한 사회 인식을 높이고 청소년 인권운동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이자 결실로 끝맺음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