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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전소희의 인권이야기] 누가 한통속 아니랄까봐?

WTO·자본·정권·언론, 각료회의 준비에 손발 척척

세계무역기구(WTO) 홍콩각료회의 D-15. 한국의 농민과 노동자,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2,000여명 그리고 전세계 활동가 수천 명이 원정투쟁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을 무렵, 자본과 각국 정부, 경찰과 주류언론도 보름 남은 각료회의를 향해 손발을 완벽히 맞추며 준비를 하고 있다.

먼저 WTO 안에서의 움직임을 보자. 초국적 자본의 지시에 따라 충실히 움직이는 WTO 수뇌부와 미국, 유럽연합, 일본 등 주요 강대국들(물론 한국도 이 대열에 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은 행여 이번 각료회의가 또 무산될까봐 노심초사이다. 협상은 여전히 지지부진하고 합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인 가운데, 99년 이후 세 번의 각료회의 중 '2번의 무산과 한 번의 간신한 합의'라는 명예롭지 못한 기록 때문에 이번에 어떻게든 '홍콩 선언문'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WTO는 현재 두 가지 전략을 취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WTO 각료회의의 의미와 기대를 낮추는 것이다. 즉, 이번 각료회의를 '중간점검'의 계기 정도로만 사고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실질적인 합의는 2∼3개월 후 제네바에서 일반이사회를 개최해 협상을 계속하자는 것이다. 이번 각료회의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걸었다가 다시 한 번 각료회의가 결렬되면 그 때는 WTO의 존재 자체가 위태로워진다는 위기감이 맴돌고 있기 때문에 이를 정치적으로 '봉합'하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번 각료회의가 '정치적 봉합' 외 다른 성과없이 끝나면 그것도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수년간 뜨거운 쟁점이 되었던 농업협상에서는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고, 오히려 개도국들의 집단적 힘이 상대적으로 약한 서비스협상과 비농산물시장접근(NAMA; 공산품, 수산물 등 농산물이 아닌 모든 것)에서의 실질적인 진전을 위해 노력하자는 전략을 또한 취하고 있다.

특히 서비스협상에서는 서비스 자유화를 적극 추진하는 국가들(유럽연합, 미국, 일본, 스위스, 한국 등)이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새로운 규정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 (입장이 비슷한) 강대국들이 집단적으로 양허요청안을 제출하고 그럼으로써 개도국에 대한 압력을 증대하는 '상호보완적 접근방식(complimentary approach)'과 자유화 하한선을 설정함으로써 보다 높은 수준의 자유화를 추진하도록 하는 '벤치마크'가 그것이다. NAMA협상에서는 공산품 등에 대한 관세를 대폭 낮추려 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WTO는 각료회의에 대한 기대를 낮춤으로써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고 그 속에서도 최대치를 얻어내자는 것이며, 시위대의 소란을 피해 조용한 제네바 본부에서 일반이사회를 통해 실질적인 협상을 계속하겠다는 치밀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지배세력은 또 다른 한편으로 경찰력과 언론을 제대로 활용할 준비를 하고 있다. '국제회의 시 효과적인 안보체계를 구축한다', '테러에 대비한다'는 미명 하에 이전 반세계화 시위가 거세게 일어났던 국가들과 홍콩, 한국 당국은 수개월 전부터 '국제연대'를 해왔다. 아펙 직후 경찰청이 내놓은 기자브리핑 자료에 따르면 "외국에서 집회관리에 실패한 사유가 NGO 활동에 대한 사전 정보파악이 미흡하여 초기대응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교훈삼아 활동가들을 테러리스트로 취급하는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서로 공유하는 한편, 격렬한 시위를 진압해본 경험이 없는 홍콩경찰에게 한국경찰이 직접 노하우를 가르치고 있다. 경찰청은 "(홍콩경찰의) 고위 간부 7명을 지난 17일 부산청에 파견, 한국 농민단체의 과격한 시위를 진압하는 방법 등을 견학"했다고 밝혔다. 그 악명높은 100x 전경이 사람을 죽일 정도로 폭압적이었던 15일 집회와 컨테이너 박스로 경찰 바리케이트를 만들고 무자비하게 시위대에 방패를 휘둘렀던 18일 집회로부터 홍콩경찰은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그리고 홍콩민중동맹에서 온 활동가는 "홍콩 정부가 최근에 시내 보도블럭을 본드로 붙였는데, 한국경찰의 조언이었다"는 웃지 못할 말을 전해줬다.

홍콩 언론과 한국 언론은 연일 '한국시위대=폭도'라는 그림을 그리기 바쁘다. 몇몇 진보적 성향의 신문들은 한국 농민의 현실에 초점을 맞추면서 왜 농민들이 투쟁할 수밖에 없는지, 왜 그토록 많은 숫자가 홍콩에 오는지에 대해 그나마 보도하고 있지만, 우익 언론들은 '칸쿤에서의 자살'과 '폭력 시위'에만 집중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현지 활동가가 전해왔다. 한국민중투쟁단이 숙소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정도이다. 아니나다를까, 한국의 조중동도 시작했다. <중앙일보>는 11월 23일자 사설에서 '해외 원정가는 데모 종주국 됐나'라는 제목으로 "비행기표 끊어가며 원정시위까지 한다면 역설적으로 '농촌이 잘살기는 잘사는 모양'이라는 지적에 무엇이라 답변할지 궁금하다"며 안 그래도 타들어가는 농민들 가슴에 기름을 부었다.

정말 누가 한통속 아니랄까봐….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걸맞게 자본, 각국 정부들, 언론 모두 국제연대를 충실히 하고 있으며 또한 상호 협조체계를 너무나 잘 짜고 있다. WTO라는 '무역기구'를 통해 전세계 민중들을 벼랑끝으로 내몰기 위한 협상을 억지로라도 진행하고, 이에 저항하는 민중들을 언론을 통해 '악마'로 만들고, 기본적인 민주주의와 인권조차 밟아 버리고, 경찰력을 동원해 폭력을 서슴지 않는 저 자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새삼스럽게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본질을 본다.
덧붙임

전소희 님은 자유무역협정·WTO반대 국민행동 사무처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