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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논평] 자유무역의 신화를 거둬라

'하나의 공동체를 향한 도전과 변화'라는 기치를 내건 2005년 부산 아펙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및 세계의 자유무역을 촉진하기 위한 특별성명과 부산로드맵을 발표하며 19일 폐막한다. 부산 아펙은 한마디로 시장과 기업에게 더 많은 자유를 줄 것을 요구하는 정상들과 관료, 기업인들의 잔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영향을 미치는 의료·교육·문화·식량 등 유·무형의 공공적 재화들을 교역의 대상으로 삼아 사유화시키고, 특히 오는 12월 세계무역기구(WTO) 홍콩 각료회의에서 이러한 세계질서를 강화하는데 힘을 실어주겠다는 것이 아펙의 결론이다. 그들은 말한다. 탈규제화와 개방화, 민영화의 물결로 교역이 활성화되면 그만큼 세계는 잘살 수 있다고. 과연 그런가?

유엔 경제사회국(DESA)에서 발표한 2005 '불평등의 빈곤'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80%를 선진국 국민 10억 명이 차지한 반면, 나머지 20%를 놓고 개발도상국에 거주하는 50억 명이 경쟁하고 있다. 73개국을 분석한 결과 1980년대 이후 빈부격차가 줄어든 국가는 9개국에 그친 반면, 심해진 국가는 48개국이었으며, 16개국은 비슷한 상황이다. 전 세계 노동자의 1/4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고 세계 64억 인구의 53%가 절대 빈곤선의 기준인 하루 2달러도 되지 않는 생활비로 하루를 연명하고 있으며 빈곤 노동자층의 절반이 지하경제에 편입되어 법적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청년층이 일자리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2∼3배 높아졌고, 전 세계 1억8천6백만 명의 실업자 가운데 47%가 청년실업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유무역'으로 전체 몫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재화를 국가와 사람들 사이에 어떻게 나누느냐라고 보고서는 말한다.

국내로 시선을 돌려도 마찬가지다. 상위 20%의 소득은 3.1% 증가한 반면, 하위 20%의 소득은 34%나 감소했다. 불평등 정도를 알려주는 지니계수는 1997년 0.283에서 2004년에는 0.310로 증가했다. 실업률은 2004년 3.4%에서 2005년 4월 기준 3.6%로 증가했고, 청년실업률은 2004년 7.6%에서 2005년 7.8%로 이 역시 증가했다. 게다가 최근 부산 아펙으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이 겪은 인권침해는 한두 건이 아니다. 거리에서 하루하루 생존을 이어가는 6000여 곳 부산시 노점상은 아펙기간 전후로 생업을 폐쇄 당했다. 추운 바람을 피해 겨울 지하도에서 잠을 청하는 노숙인들은 지하철 물품보관함에 넣어두었던 옷가지와 이불을 빼앗겼고 물품보관함도 쓸 수 없게 됐다. 또한 부산시는 공사용 가림막과 꽃바구니를 조성해 슬래브촌과 판자촌을 '손님'들이 볼 수 없도록 '분리 장벽'을 설치했고, 해운대 일대 15곳 건설현장의 공사를 중단하게 해 3만에서 7만에 이르는 노동자를 실업자로 만들었다. 부산 아펙을 준비한다며 온 나라가 떠들썩하는 가운데 두 여성 농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에는 국회에서 쌀협상 비준동의안을 통과시키지 말아달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들이 '자유무역의 환상'을 유포하는 동안 전 세계 어딘가에서 혹은 지금 여기에서 굶어죽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거리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하루하루 안타까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의 자유무역체제는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소득의 재분배가 아닌 중심부 국가와 가진 자에게로 자본의 집중을 증가시켜, 그 결과 주변부 국가의 빈곤상황은 심화되고 중심국 국가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배제와 공격은 한층 강화되고 있다. 아펙과 세계무역기구로 대변되는 '세계경제질서'는 가진 자 중심의 자유무역 증진을 낳고,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과 파괴로 드러난다. 우리는 알고 있다. 결코 아펙이나 WTO 같은 가진 자들만의 공동체로 대안적인 세계질서를 만들어낼 수 없고 그들이 말하는 '하나의 공동체'는 '민중의 공동체'가 아니라 '가진 자들만의 공동체'일 뿐이라는 사실을.

부산아펙은 오늘로 끝난다. 그러나 저항은 계속 되어야 한다. 폭력과 불평등을 확대하는 자유무역에 맞서 인권과 민주주의로 연대를 만들어가자. 지금 노숙인·철거민 등 가난한 사람들의 싸움에 함께 동참하고, 쌀 협상 비준안을 막아내기 위해 온몸으로 싸우는 농민들과 연대하자. 인권과 민주주의에 기초한 대안세계화를 통해 자유무역의 허구를 낱낱이 드러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