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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아시아 민중의 인권현장] 네팔의 아이들 1

전쟁으로 빼앗겨 버린 어린 시절

마오이스트(Maoist)반군의 침략 위협 속에서 지난 13일 네팔 다란(Dharan) 지역의 22개 국립학교가 문을 닫았다. 이로 인해 1만7536명의 학생들은 한동안 혹은 영구히 학교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게 됐다. 지난 96년 네팔의 공산주의 정당인 네팔공산당(Communist Party of Nepal)의 마오이스트들이 왕정 폐지와 인민정권 수립을 주장하면서 정부를 상대로 인민전쟁(People's War)을 시작한 이래 10년째 지속되고 있는 분쟁으로 인해 3559개 학교가 최소 한번에서 수차례 문을 닫아야 했으며, 이 가운데 많은 학교의 교문은 아직도 굳게 닫혀있다. 선생님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야 할 학교엔 벙커가 설치되고 군인들의 거친 구령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으며, 27개 학교엔 폭탄이 투하돼 파괴된 건물만이 남았다.

9월 25일 카트만두 인근에서 인권시민단체 주최로 개최된 입헌군주제 폐지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

▲ 9월 25일 카트만두 인근에서 인권시민단체 주최로 개최된 입헌군주제 폐지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



설령 학교가 문을 연다고 해도 수도 카트만두를 제외한 지역의 학교에서 정상적인 수업이 진행되기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인민교육훈련(People's Education Training)이란 미명 하에 마오이스트들에 의해 선생님과 아이들이 집단으로 납치되는 것은 현재 네팔에서 가장 큰 이슈 중의 하나이지만 또한 그리 충격스러운 일도 아니다. 올 1월부터 9월까지 인민교육의 이름 하에 1만3723명의 아이들이 마오이스트들에 의해 납치됐다. 납치된 아이들의 대부분은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주 동안 마오이스트 캠프에서 교육을 받은 후 집과 학교로 되돌아오지만 아이들은 쉽게 납치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일부의 아이들은 학교와 친구들은 물론 그들의 가족들에게 영영 되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사라져버린 아이들은 마오이스트들에 의해 연필대신 손에 무기를 잡는 소년병이 되기도 하고 캠프에서 강제노역 시달리거나 연락병으로 살아간다. 그들이 죽거나 탈출하기 전까지 그들의 운명은 마오이스트들의 손에 놓이게 된다.

12살이던 지난 2002년 마오이스트에 의해 납치돼 그들의 캠프에서 1년 동안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소녀 푸자는 납치된 후 인생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울부짖었다. 푸자는 "캠프에선 어린이란 존재하지 않아요. 나는 마오이스트들을 위해 많은 짐들과 위험한 무기들을 옮겨야 했어요. 때론 정부군의 눈을 피해 멀리 있는 그들의 사무실에 편지를 배달하는 일도 했고요. 내가 그 일들을 거부할 때면 그들은 나를 때리거나 며칠 동안이나 음식을 주지 않았어요. 너무 몸이 아플 때도 있었지만 그냥 참아야 했어요"라고 증언했다.

반면 정부 보안군에 의해 어린 학생들이 마오이스트란 혐의로 체포되는 일 역시 빈번하다. 지난 10년간 약 230여명의 아이들이 정부 보안군에 의해 체포된 바 있으며, 올해만도 18명의 아이들이 감옥과 고문을 경험해야 했다. 14살의 산디 쿠라미리는 지난해 정부 보안군에 의해 마오이스트란 혐의로 체포돼 구금되었다가 올 8월 석방됐다. 산디의 부모에 의하면 산디는 지난해 갑자기 사라졌고, 부모는 백방으로 수소문 하던 과정에서 산디가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구금 사유는 산디가 마오이스트 조직원이라는 것. 하지만 산디의 주장은 다르다. 산디는 지난해 집 근처에서 마오이스트들에 의해 유괴됐고 강제로 마오이스트의 캠프에서 음식을 만들거나 그들의 심부름을 해야했다. 어느 날 정부군이 마오이스트의 캠프를 습격했고, 당시 다친 마오이스트를 간호하고 있던 산디는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몇번이나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경찰은 산디가 마오이스트라고 계속 주장했고 결국 그녀는 법원에서 무죄선고를 받기 전까지 9개월간을 감옥에 갇혀있어야 했다. 2000년에는 마오이스트의 첩자란 혐의로 체포돼 3년을 갇혀 있어야 했던 15살 소년의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네팔 사회에 깊은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CWIN이 발행한 분쟁과 어린이 인권에 대한 보고서

▲ CWIN이 발행한 분쟁과 어린이 인권에 대한 보고서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네팔에 소년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와 마오이스트 양쪽 모두 소년병의 실체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는 것. 하지만 이런 주장을 믿는 네팔인은 아무도 없다. '네팔 아동 노동자 권익 센터'(Child Workers in Nepal Concerned Centre, CWIN)의 쿠마스는 "많은 소년병들을 만나 인터뷰했으며, 소년병이 존재한다는 증거 역시 많이 가지고 있다"라고 말한다. 쿠마스는 아이들이 만났을 때 인사하는 법이나 그들이 탈출한 뒤의 증언들을 취합해보면 그들은 캠프에서 군사훈련을 받거나 군사적 일에 동원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많은 수의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가 소년병이었다는 사실을 밝히길 두려워하고 철저히 숨긴다. 사실이 밝혀질 경우 정부와 마오이스트들에 의해 보복을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정부와 마오이스트들에 의한 소년병 강제 동원을 주장해왔던 한 저널리스트는 올해 마오이스트들에 의해 장기간 납치돼 억류돼기도 했다. 지난 8월에는 유럽연합이 성명을 내고 네팔에서의 소년병 문제와 분쟁과정에서 아이들이 입는 해악에 대한 네팔 정부와 마오이스트들의 각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유니세프 역시 전세계 30여개국에 존재하는 30만 명의 소년병 중 일부가 네팔 아이들이라며, 아이들을 전쟁 무기로 사용하지 말라고 외치고 있다.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는 분쟁은 이렇듯 아이들을 피해가지 않는다. 인민전쟁의 미명하에 이미 수백명의 인민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죽어가고 있다. 많은 수의 아이들이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거나 고향을 잃었다. 또한 일부 부모들은 아이들이 소년병으로 끌려가거나 혹은 납치되는 것이 두려워 그들에게 집을 떠나 다른 곳으로 피신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엠네스티는 7월에 낸 보고서에서 네팔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샨드라 말라라는 여성은 마오이스트들에 의해 남편을 잃었으며, 마오이스트들은 그것도 모자라 10살된 그녀의 아들을 데리고 가서 6일 동안 구금했으며, 그 후에는 8살된 딸을 강간하겠다고 위협해왔다. 15살 산토스는 마오이스트들에 의해, 타루 지방의 2명의 소녀는 정부군에 의해 의식을 잃을 때까지 강간당했다고. 이렇듯 어른들의 전쟁은 아이들에겐 재앙이 되었고, 더욱 가혹한 것은 이 전쟁이 언제 끝날 지 기약이 없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8월 세상의 관심 속에 열렸던 정부와 마오이스트들간의 평화협상이 결렬됐고, 이로 인해 평화는 더욱 요원해졌다. 보다 좋은 세상을 위해서라는 어른들의 싸움 속에서 아이들은 그들의 어린 시절은 물론 평생 회복하지 못할 상처와 인생의 굴레를 안고 살아가고 있고, 살아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