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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천주교신자 첫 병역거부 선언

고동주 씨 "입대와 신앙 양립할 수 없어"

천주교신자로는 최초로 고동주 씨가 신앙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해 파문이 일고 있다. '전쟁없는 세상' 활동가 고동주 씨는 19일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군대에 들어간다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두려워해야 하고 누군가를 미워해야 하고 또 죽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한다며 "(이렇게 되면) 저는 예수님께서 저에게 들려주신 복음을 버려야"하고 "저의 삶 또한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버리게 됩니다"라고 밝혔다. 또 "아직 오지 않은 하느님 나라를 지금 이곳에서 살고자 군대에 가기보다는 다른 방법으로 봉사하고 싶"다며 "그것이 제가 하느님 나라를 앞당기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19일 기자회견에서 병역거부 이유를 밝히고 있는 고동주 씨(왼쪽 두번째)와 오정록 씨(왼쪽 세번째)

▲ 19일 기자회견에서 병역거부 이유를 밝히고 있는 고동주 씨(왼쪽 두번째)와 오정록 씨(왼쪽 세번째)



불교신앙을 이유로 감옥을 선택한 2001년 오태양 씨와 2003년 김도형 씨에 이어 고 씨가 천주교 신앙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함에 따라 천주교회 안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정당성에 대한 논쟁이 뒤따를 전망이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박순희 상임대표는 "병역의무 때문에 이땅에서 전쟁이 강화되고 서로 미워하게 되는 것은 이웃을 내몸같이 사랑하라는 가톨릭 신앙과 맞지 않는 일"이라며 "11월부터 평화미사를 정기적으로 열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비롯해 전쟁없는 세상을 바라는 사람들과 지속적인 모임을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하유설 신부(메리놀 외방선교회)는 전화통화를 통해 "교회에는 군종교회와 군종사제가 있는 반면 평화에 대한 가르침과 비폭력 평화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운동은)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선택한 예수의 마음과 같은 운동"이라고 밝혔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9년 징집에 응하는 대신 대체복무제도인 평화봉사단으로 활동한 하 신부는 "미국에서는 전쟁시기에도 대체복무제가 법으로 보장되어 있었는데 한국에서 도입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해 온 한국 천주교회가 고 씨의 처벌 과정에서 어떤 입장을 내놓을 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강인철 교수(한신대 종교문화학)는 전화통화를 통해 "천주교회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에 대한 정리된 입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를 명확하게 천명하고 있지 않다"며 "대단히 무책임하고 비겁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1997년 개정된 <가톨릭교회교리서>는 "군인 생활로 조국에 대한 봉사에 헌신하는 사람들은 국민의 안전과 자유를 위한 역군"(2310항)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양심상의 이유로 무기 사용을 거부하며 다른 방법으로 인간 공동체에 봉사하려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국가가 공정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2311항)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천주교회의 교리를 현대적 시각으로 새롭게 조명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사목헌장> 제79항도 "양심의 동기에서 무기 사용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경우를 위한 법률을 인간답게 마련하여, 인간 공동체에 대한 다른 형태의 봉사를 인정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대체복무제 도입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강 교수는 "한 신자가 가톨릭 신앙을 걸고 병역거부를 선언한 이상 한국 가톨릭교회가 입장표명을 미룰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는 전 평화네트워크 간사 오정록 씨도 참석해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오 씨는 병역거부 이유서를 통해 "군대는 사회의 폭력성, 남성중심성, 권위-위계가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곳"이라며 "군대가 존재하는 한, 이에 저항하는 이들은 끊임없이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또 "국가는 병역법 위반이라는 죄목으로 감옥에 가두고 저의 양심을 교정하려하겠지만, 저는 군대를 거부한 저의 양심을 꿋꿋이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단체연석회의는 이날 성명을 통해 "두 젊은이 모두 법적 처벌을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까지 스스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며 "(구속영장 발부의 전제가 되는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으므로) 불구속 수사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국회에 대해 "각 정당이 인권의 잣대를 가지고 병역법 개정에 착수해 시대적 소명을 다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9월 15일 현재 1186명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이유로 감옥에 갇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