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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대체복무제, 평화의 첫 걸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국제회의, 대체복무제 도입 한 목소리


12일, 이틀째를 맞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과 대체복무제' 국제회의에서는 병역거부자의 인권보호 방안으로 모색되고 있는 대체복무제에 관한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이날 주제발표를 맡은 독일병역거부자지원연대의 페터 토비아슨 씨는 "독일사회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대체복무는 너무나 당연하고 정상적인 일"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에 따르면, 독일은 이미 1949년 '자신의 양심에 반하여 전쟁을 돕는 일체의 행위도 하지 않을 권리'를 헌법에 명시했고, 지금은 병역거부 신청자의 90%가 대체복무 승인을 받는다. 병역거부를 한 사람이 수상이나 장관이 되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올해부터는 병역거부 승인절차가 더욱 간소화돼, 신청자들은 구술절차 없이 '전쟁시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자신의 신념을 설명하는 서류를 제출하기만 하면 된다. 토비아슨 씨는 "그러나 서류심사 역시 개인의 신념과 양심을 국가가 심판하는 절차라는 점에서 비판이 일고 있다"며, 독일의 병역거부운동이 양심의 자유의 온전한 보장을 지향하고 있음을 전했다.

또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면 국가안보가 위태로워진다는 우려가 설득력이 없다는 사실도 이날 확인됐다. 토비아슨 씨는 "유럽연합이 냉전이 절정을 이룬 1977년 병역거부권을 승인하고, 냉전이 계속된 1987년에도 병역거부에 관한 법제마련에 나선 사실에 한국정부는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만 역시 전쟁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의 상황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2000년 초부터 대체복무제를 시행해오고 있다. 현재 2만5천여명에 이르는 대만의 대체복무자들은 현역복무자보다 4개월 긴 기간동안 재해구조, 사회복지·교육·환경보호 봉사 등을 수행하고 있다. 대만병무청 부청장 청 타이 리 씨는 "대체복무 실시는 대만의 국제적인 위상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으며, 사회 안정과 환경보호, 민중생활의 질을 높이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토론에 패널로 초청받은 개혁국민정당, 사회당, 민주노동당도 양심의 자유 보장을 위해 대체복무제를 즉각 도입해야 한다는 데 한 목소리를 냈다. 반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당론이 결정되지 않았다며 불참했다.

또 이날 회의에는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UNHCHR)의 루시에 비에르스마 씨가 참석해 "한국정부는 양심적 병역거부권 보장을 위해 현행 법령 등을 재검토하도록 요구한 2002년 유엔인권위원회 결의를 이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인권위원회는 이미 89년 사상· 양심의 자유의 합법적 행사로써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인정했다. 특히 89년에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의 인권보호를 위한 대체복무제 도입과 강제투옥 금지'를 권고했고, 이어서 98년에는 대체복무대상자를 결정할 때 '병역거부 행동이 진실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기관은 독립적이고 공평해야 하며 특정한 신념을 차별해서는 안된다'고 밝힌 바 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인권존중과 평화정착을 위해 하루빨리 인정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이틀에 걸쳐 진행된 국제회의는 이날 막을 내렸다. 오랜 병역거부운동의 역사를 함께 해 온 해외활동가들은 '향후 한국사회에서 군대가 과연 평화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에 관한 논의가 시작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