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문헌으로 인권읽기] 소저너 트루스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1851)

인권의 역사는 승리와 연대의 기록만이 아니라 계급·인종·민족·성적 차별의 소용돌이이기도 하다. 그속에서 많은 투쟁의 주인공들은 스스로가 바로 그 차별의 노예가 되어 투쟁의 목적을 잊기도 했다. 반노예제투쟁과 노동권쟁취를 위한 여성들의 투쟁이 쉽사리 망각되는 것도 그중 하나의 결과일 것이다.

노예제 폐지 운동에서 여성들의 역할은 컸다. 하지만 '노예제 폐지'라는 바로 그 대의 속에서 여성차별이 거친 숨을 쉬고 있었다. 예를 들어 노예제 철폐를 위한 세계대회에 참석한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의석을 갖지도 못했고, 노예제 폐지 조직에서 여성들은 봉사해야 할 뿐 가입 자격도 성명서에 서명할 권리도 갖지 못했다. 여성은 청중석에서만 말할 수 있을 뿐 연단에 설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여성들이 자신들의 조직을 만들자 여성은 의장을 할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남성이 의장직을 맡기도 했다.

이러한 노예제 폐지 투쟁속의 성차별 속에서 여성들은 스스로의 조직을 만들 것을 결심하게 됐고 노예제와 성적억압이라는 두가지 악에 맞서게 됐다. 그리고 스스로 뛰어난 순회연설가, 작가, 조직가가 되어갔다. 어떤 경우이건 변화는 한가지 또는 한 집단의 권리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변화를 위한 환기와 각성은 또 다른 이들의 권리에 불을 지핀다. 바로 그 예가 미국에서의 노예제 철폐 투쟁과 여성운동의 관계일 것이다. 여성들의 조직적인 대규모 투쟁은 노예해방을 위한 투쟁 속에서 싹텄다. 노예 예방을 위한 운동에서 여성들은 운동의 대의를 깨달았고, 조직하는 법, 대중집회를 갖는 법 등을 배웠다. 용기 있는 행동과 경험 속에서 대중에게 연설할 권리를 얻었고 그렇게 노예해방과 여성해방은 상호를 강화하고 풍부하게 했다.

노예제 철폐와 여성의 동등한 권리를 위한 운동의 결속에 큰 역할을 한 인물 중에 흑인여성 소저너 트루스(Sojourner Truth)가 있었다. 소저너는 노예로 태어나 일평생 글을 읽고 쓸 줄 몰랐다. 그녀의 주인은 그녀가 사랑한 남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가 보는 앞에서 그녀에게 채찍질을 했다. 결국 주인이 강요한 남성과 결혼하여 13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들은 노예로 팔려나갔다. 1827년 그녀는 뉴욕주 법으로 자유를 얻었다. 그후 노예제폐지운동가가 되면서, 그녀는 노예시절의 이름인 이사벨라(Isabella Baumfree)를 버리고 '소저너 트루스'(Sojourner Truth: 진리를 전하고 다니는 사람)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그녀가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라는 연설을 한 것은 1851년 오하이오 주에서 열린 여성권 집회에서였다. 남성들로부터 야유가 터져 나왔고 누구도 이에 대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소저너가 말하려고 앞으로 나서자, 많은 여성들은 자신들의 대의를 해칠 것이라 생각하고 그녀의 발언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저너는 연단에 나가 말하기 시작했고 그녀의 연설은 충격을 줬다. 당시 의장을 맡았던 이의 표현에 따르면 흥분한 군중의 조소와 야유는 존중과 경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하지만 뛰어난 연설 하나로 평등이 왔다고 하는 건 환상일 뿐이다. 노예제 폐지운동에 함께했던 많은 남성들은 여성들의 이런 활동이 남성을 부당하게 공격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뛰어난 연설가들은 여성의 동등한 권리를 지지하기 보다는 '어떤 분파의 권리도, 어떤 계급의 권리도, 어떤 성의 권리도 옹호하지 않겠다. 모든 사람에게 가장 보편적인 형태의 권리를 옹호하겠다'는 식으로 점잖게 보편성을 옹호했다. 이런 식의 말뿐인 보편성 옹호는 남성만의 권리를 확인, 재확인했을 뿐이다.

앞서 말한 '변화는 한가지 또는 한 집단의 권리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변화를 위한 환기와 각성은 또 다른 이들의 권리에 불을 지핀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은 권리 주체들만이 아니다. 지배자들, 억압자들 또한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변화는 하나가 아니라 집단으로 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지배계급은 그걸 방지하기 위해 여성과 여성, 흑인과 여성, 남성과 여성, 이주노동자와 미국인 간에 선을 그어나갔다. 인종적, 성적 억압과 착취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공유하지 못한 운동은 공통의 적을 이롭게 했다.

예를 들어 북부 자본가들은 여성의 동등한 권리 요구가 아일랜드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타 집단의 권리투쟁을 부르리란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억압했다. 성급하게 여성의 권리를 요구할 때가 아니라 지금은 '흑인의 시간'(Negro's hour)이라 주창했다. 흑인의 참정권을 우선시한 그들의 속셈은 딴 데 있었다. 남부로 한몫 챙기러간 북부 자본가들은 그것을 이용하여 전 노예소유주들을 견제했다. 그렇게 이용된 '흑인의 시간'은 지속되지 않았다. 목적이 성취되자 흑인의 권리에 대한 퇴보조치가 속속 취해졌다. 또 다른 예로 자본가들은 폭증하는 이주노동자들의 권리요구가 두렵고 싫어지자 이번에는 여성참정권을 옹호하고 나섰다. '비백인 이주 임금노예'에게 참정권을 주느니 백인여성에게 참정권을 줘서 백인의 이익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극단적 민족주의와 인종주의에 의해 백인여성참정권이 옹호됐다. 이주노동자 여성들로부터 촉발된 전투적 노동운동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으면서 여성참정권운동에 대해서는 말이 많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라는 소저너의 외침은 "나는 노동자가 아닌가요", "나는 시민이 아닌가요", "나는 인간이 아닌가요"라고 메아리쳐 왔다. 그리고 이런 외침은 따로따로가 아니라 같이 외쳐져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소저너 트루스(Sojourner Truth)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Ain't I a woman?)(1851)

여러분, 이렇게 야단법석인 곳에는 뭔가 정상이 아닌 게 있음이 틀림없어요. 내 생각에는 남부의 검둥이와 북부의 여성 모두가 권리에 대해 얘기하고 있으니 그 사이에서 백인 남성들이 곧 곤경에 빠지겠군요. 그런데 여기서 얘기되고 있는 건 전부 뭐죠?

저기 저 남성이 말하는군요. 여성은 탈것으로 모셔 드려야 하고, 도랑은 안아서 건너드려야 하고, 어디에서나 최고 좋은 자리를 드려야 한다고. 아무도 내게는 그런 적 없어요. 나는 탈것으로 모셔진 적도, 진흙구덩이를 지나도록 도움을 받은 적도, 무슨 좋은 자리를 받아본 적도 없어요. 그렇다면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날 봐요! 내 팔을 보라구요! 나는 땅을 갈고, 곡식을 심고, 수확을 해왔어요. 그리고 어떤 남성도 날 앞서지 못했어요. 그래서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나는 남성만큼 일할 수 있었고, 먹을 게 있을 땐 남성만큼 먹을 수 있었어요. 남성 만큼이나 채찍질을 견뎌내기도 했어요. 그래서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난 13명의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들 모두가 노예로 팔리는 걸 지켜봤어요. 내가 어미의 슬픔으로 울부짖을 때 그리스도 말고는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이런 일을 사람들이 머리와 관련해 얘기할 때 뭐라고 부르죠? (청중 속에서 중얼거린다, "지성") 맞아요. 그거예요. 지성이 여성의 권리나 흑인의 권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거죠? 나의 잔이 1파인트도 담지 못하고, 당신의 잔이 2파인트를 담고 있는데, 당신은 내 보잘 것 없는 절반 크기의 잔을 채우지 못하게 할만큼 야비하지는 않겠지요?

저기 검은 옷을 입은 작은 남자가 말하네요. 여성은 남성만큼의 권리를 가질 수 없다고요.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여성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요! 당신들의 그리스도는 어디서 왔죠? 어디서 왔느냐고요? 신과 여성으로부터 왔잖아요! 남성은 그리스도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죠.

신이 만든 최초의 여성이 혼자서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만큼 강했다면, 이 여성들이 함께 세상을 다시 올바른 방향으로 되돌려 놓을 수 있어야 해요. 그리고 지금 여성들이 그렇게 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그렇게 하도록 하는 게 더 좋을 겁니다.

내 말을 들어야만 해요. 이제 늙은 소저너는 더 이상 할 말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