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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취업과 진학, 어디에도 길은 없다

[기획] 장애인 교육권의 현실과 과제 ③ (끝)

"장애학생의 학부모들은 학생들이 졸업한 후에 직업을 가질 것이라고 좀처럼 생각하지 않으며, 직업을 가지는 것은 가망 없는 일이고, 비현실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7월 19일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을 위한 대토론회'에 참석한 황승욱 경주경희학교 교사는 장애인 직업교육의 현실을 이렇게 털어놨다. 황 교사는 "장애학생들의 학부모는 학생들이 졸업 후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것을 원하지 않으면서도, 학교를 졸업한 후에 어떤 서비스도 합법적으로 받을 권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장성·지속성 없는 직업교육

특수교육진흥법 제20조에 따르면 특수교육기관은 특수교육대상자의 직업교육을 위한 직업담당교사와 시설 및 설비를 갖추고 직업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하지만 2005년 교육인적자원부 '특수교육실태조사서'(아래 실태조사서)의 '고등부 졸업생 진로현황'에 따르면 특수학교 졸업자 1986명 가운데 미진학·미취업자 수는 691명에 달한다. 특수학급 졸업자 661명 가운데 271명, 일반학급 졸업자 306명 가운데 114명이 취업도 대학진학도 하지 못했다.

특수교육에서 직업교육은 직업평가, 작업배치를 위한 직무분석, 현장실습, 사후지도 등 모든 영역에서 관련기관과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2004년 교육부 '특수교육연차보고서'(아래 연차보고서)의 '서울교육청 관련기관 협력 현황'에 따르면 서울에 있는 전체 특수학교·학급 161개교 가운데 외부기관에 의한 직업평가를 실시한 학교는 23개교, 외부기관에 취업알선을 의뢰한 학교는 15개교, 지역사회 산업체와 협력한 학교는 16개교에 그치고 있다. 현장중심의 직업교육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

한편 학령기 이후에도 직업교육을 원하는 경우 지속적인 직업재활훈련이 제공되어야 한다. 황 교사는 "모든 직업재활훈련에 있어 중증장애인, 여성장애인 직업재활을 최우선으로 국가가 지원해야한다"며 "자립생활훈련을 위해 자립생활훈련센터를 만들어 지속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직업교사 전국 133명에 불과

특수교육진흥법에는 '직업교육대책 강구'와 '진로교육 실시'가 규정되어 있으나, 선언적인 규정일 뿐 무엇을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는 제시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도 직업교육 담당교사의 배치 기준이 없어 특수교육 직업교사가 극히 부족하다. 실태조사서의 '직업교사 현황'에 따르면 특수학교·학급은 전체 1067개교인데 반해 직업교사는 133명에 그치고 있다. 황 교사는 "졸업 후 학생들의 삶에 결정적 요인이 되는 것이 직업"이라며 "직업교사의 미배치로 학생직업평가에 필요한 분석, 현장실습, 취업알선 및 지속적인 사후지도가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장애학생 고등교육의 실태와 문제점

한편 중등교육의 미흡한 직업교육와 더불어 대학 등에서 이뤄지는 고등교육 역시 문제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의 2004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전문대학 24개교, 4년제 대학 49개교 등 모두 73개 대학이 '장애인 대학입학 특별전형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이 제도의 실시로 대학진학의 문이 넓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통해 입학한 특수교육 대상자는 424명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 제도를 실시하는 거의 모든 대학에서 학업지원서비스의 부재, 학교생활에서의 일상적인 인권침해 등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우리학교에는 편의시설이 없는데 지낼 수 있겠는가"

"입학면접을 갔는데 교수들이 '우리학교에는 편의시설이 없는데 지낼 수 있겠는가', '감수하고 와라', 'fp포트도 써야되는데 타자 속도는 몇인가' 등을 물어봤어요." (ㄷ대학 지체장애학생)

"강의가 시작되기 전에 강의노트를 전해주고 녹음을 할 수 있게 해줘야 되는데 관련 지원이 전혀 없어요. 청각장애 같은 경우에도 속기사 같은 지원이 전혀 없고 개인적으로 교수를 찾아가야 해요." (ㅈ대학 시각장애 학생)

"특수교육과 관련 과목이 아닌 수업에서는 담당교수가 강의노트 제공을 꺼려하고 청각장애 학생은 비디오 시청 등에서 소외, 시각장애 학생은 파워포인트 수업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아요. 시험을 안쳐도 된다고 하더니 학점은 나쁘게 나오고, 다른 문제로 대체해주겠다고 하지만 강의 노트를 제공하지 않고, 시험 칠 때 늦게 적으면 시간 없다고 재촉하는 경우가 많아요."(ㄷ대학 지체장애 학생)

많은 장애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한 이후에 대학의 수업방식과 관련하여 초·중등의 수업방식과는 차이가 커서 공부하기 어렵다고 털어놓는다. 초·중등의 경우에는 수업을 듣는 교실이 거의 변경되지 않고, 담임도 정해져 있고, 교재 및 평가도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학의 경우 교재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고, 레포트 작성이나 시험 준비에 광범위한 참고문헌을 필요로 한다. 또 강의를 진행하는 개별 교수의 특성에 따라 평가방식도 크게 달라진다. 교수의 구체적인 강의내용 전체를 장애학생이 '듣거나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장애학생이 비장애학생과 평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기본조건이다.


국·공립대가 더 열악

장애유형에 맞는 정보제공 방식도 중요하다. 시각장애학생이나 청각장애학생의 경우 청각자료나 시각자료 등 대안적인 정보전달 수단이 필요하다. ㅈ대학에 다니는 한 시각장애 학생은 "학습유인물의 점자화가 어렵다면 (컴퓨터가 음성으로 읽어줄 수 있는) 파일로라도 제공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없다"고 말했다.

학습 편의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활동보조인 제도. 하지만 학교 기숙사에서조차 유급 활동보조인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대학은 거의 없다. ㄷ대학에 다니는 한 지체장애 학생은 "관련 동아리에서 기숙사 정보를 제공받고 편한 친구를 룸메이트로 정하지만 전문 활동보조인은 없다"며 "전문적인 보조인이 없으니 씻을 때나 잠깐 나갈 때마다 친구에게 부탁해 미안하다"고 털어놨다.

특별전형 제도 실시 8년째인 2003년 말에 교육부는 대학의 장애학생 지원에 관한 평가를 처음 실시했다. 이 평가에서 나사렛대와 대구대가 공동으로 '최우수' 평가를, 한림대 등 14개 대학이 '우수' 평가를, 31개 대학이 '보통'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평가대상 대학의 75%인 139개 대학이 '개선요망'에 해당돼 대학의 장애인 학습권 보장에 큰 문제가 있음을 드러냈다. 특히 국·공립 46개 대학 가운데 종합평가에서 최우수 또는 우수 평가를 받은 대학은 단 1개교도 없는 것으로 나타나 오히려 국가가 장애인 교육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