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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타리의 인권이야기] '너희들'의 헌법

"7월 17일이 공휴일이라도 일반 국민들은 최소한 우리 헌법정신을 기리고 우리 공동체의 작동원리를 체계화한 민주주의 실천의 교과서일 뿐만 아니라 주권재민(主權在民)을 법적으로 천명한 헌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태극기를 게양하는 것에서부터 공동체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윤리의식을 요구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제헌절을 맞이해 어느 신문에 게재된 칼럼의 일부이다. 나도 태극기를 안 달았다. 물론 국가 기념일마다 달려고 사둔 태극기도 없다. 태극기를 다는 것이 '공동체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윤리의식'이라니, 너무 익숙하면서도 너무 낯선 내용이다. 하지만 최소한 주거가 안정적이지 않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윤리는 아니다. 교육제도 내에서 배운 것이지만 대다수가 논의하거나 합의하지 않은, 문제 삼는 것이 '비정상적'인 이런 윤리는 어디서 왔나?

헌법은 보통 한 나라의 통치방식과 그 나라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내용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물론 그 내용은 정치적인 싸움을 통해서 만들어지고, 변화해왔다. 87년 6월항쟁이 대통령 직선제가 담긴 헌법을 다시 만들었듯이. 그런데 '87년 국민항쟁'이 모든 법의 최고 규범이 되는 헌법을 다시 만들었다는 역사가 감동을 주면서도, 그것이 2005년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 국가 기념일에 태극기를 게양하도록 하는 규범이라면 또한 재차 물어져야 하고 변화를 준비해야 할 것 같다. 헌법에 보장된 민주주의나 주권재민, 세계평화, 평등 등의 가치를 '기념'하기엔 최소한 법적, 제도적 테두리 안에서조차 실현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함께하는시민행동'이 하고 있는 '헌법다시보기' 작업을 계기로 헌법조문을 다시 살펴보게 되었다. 사실 그동안 어떤 법의 개폐운동을 하면서 헌법의 가치-인간의 존엄성, 양성평등 등-에 많이 호소를 했었는데 어딘가 찜찜하던 차였다. 내가 호소하려고 했던 이 사회에서 '인간' '존엄' '양성' '평등'에 대해서 충분히 합의하고 있던가. 그것에 대한 확인 없이 단지 호소전략으로 취했던 그러한 개념은 사회통념에 기대는 것이고, 사회통념은 대부분 지배적인 가치를 담고 있어서 실질적으로 불평등한 위치에 놓인 사람들의 목소리가 배제되어 있다.

그럼 헌법을 들어다볼까? 헌법 전문에 표현된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라는 문장은 국가 안팎의 경계를 고정된 것으로, '국민' '우리' '우리의 자손'이 동일한 개념인 것처럼 쓰여 있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배타적, 혈연적 민족주의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을 위한다면서 '국익'의 이름으로 파병을 감행할 수 있는 '너네들의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쓴 웃음이 나온다. 또한 "모든 국민은 국방의 의무를 진다", "혼인은 양성에 기초하여 성립되고 유지된다"라는 조문은 양심의 자유, 법 앞의 평등, 사회적 신분에 의해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과 모순 관계에 있고, '모든 국민'의 범주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여성·장애인·어린이·노인·동성애자 등을 배제하고 있다.

물론 헌법을 비롯한 모든 법은 사회적인 변화와 함께 행보를 같이 하고, 그 것은 진보와 보수세력 간의 다툼의 과정이고, 언제나 해석과 적용의 기준을 어디에 세울것인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렇다면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고 있다고 하지만 특정한 입장과 이해관계에 얽혀있는 정치권, 법적 권위자가 법의 해석과 적용을 독점하고 있는 구조,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비판의 근거를 의존해야 하는 현재의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 탄핵사건을 계기로 대의제도가 가진 한계를 인식하고 국민주권을 발현시킬 수 있는 방안이 인권운동안에서도 고민되고 실천된 경험이 있다. 그러나 정치구조의 한계를 지적하고 보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과 함께,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 시도되어야 할 것 같다. 국민국가 안의 법이 '모든 개인(백인/남성/부르주아/비장애인/이성애자/성인)은 평등하다'라는 근대의 손쉬운 가정에 기초한 '계약'의 모델을 통해 성립한 것이라면, 인권이 국가안의 국민이라는 지위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헌법이 가진 '보편성'이 인간들이 가진 차이와 다양성을 압도하는 가치로 기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어떤 공동체의 구성원들의 실질적인 의사가 반영되기에 헌법은 너무 권위적이고 국가는 너무 넓다. 인간다움을 정의하고 인간의 권리를 보장하기에 헌법은 너무 나약하고 국가의 경계는 너무 좁다.
덧붙임

타리 님은 '다름으로 닮은 여성연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