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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타리의 인권이야기] 5월 가정의 달을 ‘기념’함

어버이날을 맞아서 부모님과 오빠가 살고 있는 집에 가서 함께 식사를 했다. 어색하지만 분명히 부모님이 기뻐하실 것이므로 카네이션을 사드렸다. 식당에 앉아서 음식을 시켜놓고 네 식구가 둘러앉으니 자연히 화제는 ‘결혼적령기’를 맞은 오빠와 내가 언제 ‘가정’을 꾸릴 것인지로 모아졌다. 오늘은 가정의 달의 주요 기념일인 어버이날이지 않은가. 식당 주인아주머니가 거든다. “어버이날을 맞아서 모시고 왔나봐요. 저도 사위가 오라고 하는데 바빠서 못갔지 뭐예요.” 나는 (이성애적)결혼을 할 생각이 없다고, 서로 불편하지 않을 만큼 다시 한번 어필해본다.

사실 가정의 달이라는 것은 무엇보다 각종 이벤트로 넘치는 상술로 인해 각인된다. 작은 ‘효도안마기’ 하나 사지 않았지만 거부감이 드는 건 감사함의 형식이지, 감히 자기 한 몸 추스르고 살아가기 어려운 사회에서 누군가를 보살피고 지원했던 세월을 감사하는 내용일 수 있겠는가. 하지만 국가차원에서 법정기념일과 공휴일로 어버이에게 감사하는 날을 정해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기념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군부독재시설 지배논리로 활용했던 충효사상을 담고 있으며 정책적으로 ‘밖’으로는 산업화를, ‘안’으로는 전통가족 수호를 목적으로 제정된 것이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국민규율의 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 '효'와 가족사랑의 구호에 기댄 상품들이 넘쳐나고 있다

▲ 가정의 달을 맞아 '효'와 가족사랑의 구호에 기댄 상품들이 넘쳐나고 있다



물론 사람들은 자율적으로 또 의미 있게 어버이의 날을 기념할 수 있다. 하지만 여성의 날이나 노동절 등과는 달리 국가가 선택한 법정기념일과 공휴일에 대한 의미는 잘 물어지지 않았다. ‘부모역할’이라고 일컬어지는 양육과 보살핌의 노동, 부양책임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너무나 힘겹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부모에게 효도할 수 있는 날을 허락하는 것은 모든 책임을 가정에게 떠넘긴 국가인가. 단지 어버이의 사랑으로 누구든지 부모역할을 수행해내야 한다는 강요는 구조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조건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문제를 탈정치화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매우 정치적인 문제가 된다.

가정폭력이나 부부강간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나 법제화에 대한 요구에 대해 사람들은 거부감을 가지고 국가는 자신의 책임을 방기하고 있지만 부모의 역할, 자식의 도리를 규정하는 어버이날, 나아가 작년에 “부부의 소중함과 가족의 화목함을 일깨우자”는 취지로 제정된 부부의 날은 가족의 중요함을 생각할 수 있는 ‘아름다운 날’로 받아들인다. 국가가 시민들의 관계를 규율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윤리의 이름으로 강권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지원하는 것은 가정을 ‘문제’가 있는 장소로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부부의 날 제정을 주도하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계의 세계적인 흐름은 “부부간의 십계명”등을 발표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대부분 인간관계에서 지켜야할 예의의 수준이다. 그래서 그건 ‘부부의 날’ 필요성을 의심하게 하는 근거가 된다.

가정은 언제나 문제적인 공간이었다. 시대에 따라 가정의 역할과 이상은 달라져왔지만 남성중심적, 이성애중심적, 비장애인중심적인 사회의 지배논리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정상가족과 비정상가족은 나뉘어져 왔다. 특정한 삶의 형태를 정상가족이라고 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아닌 ‘효도’나 ‘사랑’이라는 가치로 사람들을 압도함으로써 불평등한 위치에 있는 약자의 입을 막는 것은 소위 ‘정상가족’ 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논리는 국가가 역할보다 국민에게 의무를 강조하며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방식과 매우 흡사하다. 가정의 달을 맞아서 한층 ‘나라사랑’에 대한 내용과 결합된 이벤트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도 충효에 대한 내면화를 ‘멋지게’ 성공한 덕분일 것이다.

5월이 지나갈 때까지 이렇게 흘러넘치는 가족사랑 나라사랑의 구호 속에서 애국심 없는, 충효심을 비틀고 싶은, 주변에 놓인 사람들을 배제하는 정상가족중심주의를 거부하고 싶은 마음에, 나름대로 가정의 달을 ‘기념’한다.

가족을 볼모로 잡아야만 가능한 것이 많은 대한민국에서 효사상은 애국심과 연관될 수밖에 없고 그것은 미디어, 학교, 기념일 등의 여러 경로를 통해서 내면적 규율로 자리잡은 사회에서 가족과 인권을 이야기 하는 일은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만큼이나 거부감이 드는 것이다. 어버이날이나 부부의 날이 제정된 것은 국가보안법보다 훨씬 이후의 일이지만 그 안의 ‘정치’를 은폐함으로써 훨씬 더 ‘자연스러워’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문제가 중요한 정치적인 의제로 다루어지는 날을 기다린다. 가족이 사람들을 ‘잡아먹는’ 사회에서, 가족이 일상적 권력과 관계와 문제 등등에 핵심적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회에서 소수자의 문제는 가족을 에둘러갈 수 없다.
덧붙임

타리 님은 '다름으로 닮은 여성연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