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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획] 평택 미군기지 반대운동의 의미 ①

신자유주의, 총을 들다

[편집자주] 평택 미군기지 이전 확장에 반대하는 민중들의 투쟁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특히 이 투쟁은 무장한 신자유주의가 강요하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세계 질서 재편의 모순이 집약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상징적인 투쟁이자 미군기지 확장 대상 지역 주민들의 생존권·평화권을 둘러싼 투쟁이기도 하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확장 반대 투쟁이 국제 정세 속에서 어떤 맥락에 있는 것인지, 어떻게 평화운동과 만날 수 있을 것인지 4회의 연재를 통해서 그 고민을 담아본다.


이른바 '새로운 전쟁'

1990년대 초, 냉전해체와 함께 미소간의 극단적 군사대립이 해소되었다. 그러나 전쟁은 재발하고 말았다. 핵전쟁과 같은 파국적 전쟁위협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제 인류가 직면한 심각한 전쟁은 "잔혹하지만 일상화되고 있는 전쟁들"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50건의 새로운 군사 분쟁이 일어났고 이러한 분쟁들은 본질적으로 내전의 성격을 띠었는데, 르완다 내 종족전쟁과 보스니아내전, 코소보 전쟁, 체첸 또는 알제리의 분쟁들은 1, 2차 세계대전시기에는 불법적이었던 전투양식들(잔혹한 폭력, 광범위한 파괴와 분쟁으로 인한 인구의 이동)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을 준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전쟁'은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헤게모니 확립의 과정과 1970년대 이후 지속되어온 미국 헤게모니 불안정성의 심화 과정에서 자본주의적 경제통합과 군사패권을 확장하고자 했던 미국주도의 제국주의 지배질서의 모순과 갈등의 폭발이라고 보아야 한다. 현재 미국주도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전 세계적인 통치성의 위기에 직면하여 이러한 모순과 갈등을 더욱 극대화시키고 있다. '전쟁의 폭력을 동반한 세계화'가 바로 그것이다.


전쟁을 부르는 금융세계화

1990년대 이후 자본주의 지배 공간은 확대되었으나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에 근거한 금융자본의 지배에 의해 수많은 나라와 지역의 경제는 파괴되었다. 한편 중심부 국가들이 구조조정을 거치며 노동자계급의 지위가 하락하고 저임금 노동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주변부는 '자본축적의 네트워크' 자체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에 이 둘 간의 격차는 줄어들지 않고 쌍방이 하향하고 있는 중이다. 냉전종식 이후 더욱 강화된 미국의 헤게모니적 지위는 1997-98년 전세계적인 만성적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지속적 성장을 지탱할 수 있었다. 미국은 금융세계화를 주도하고 있으며 세계의 자본은 유례없는 수준으로 미국에 집중되어왔다. 자본이 집중되면서 어떤 다른 지역도 미국을 대체할 새로운 생산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이를 '신경제'라 명명했고, 덕분에 이윤율 회복 뿐 아니라 주식시장의 붐과 거품경제까지 감당해야 했다. 주식시장 호황과 1997-98년 '아시아 위기'의 충격의 회피, 1999년 코소보 전쟁의 승리감은 몇 년 동안 산업설비의 과잉축적 상태를 망각하고 또 성장을 위해 거대한 규모의 국내외 신용 및 부채에 의존해왔던 미국경제의 모순들을 은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물질적 성장 없는 금융적 팽창을 통해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고자 했던 '신경제'는 무한정 지속될 수 없었다. 자본주의 일반적 위기로 인한 미 헤게모니의 불안정성이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은 탈냉전시대의 새로운 군사안보의 개념을 창조해냈고 이는 9.11 이후 더욱 강화되고 있다.

오늘날 미국의 대외 군사안보정책을 교란하는 요인들은 미국 주도의 세계경제의 통합으로부터 배제된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지역분쟁들과 폭력들, 즉 '새로운 전쟁'의 출현이다. 한편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이데올로기와 결부된 제 3세계의 민족주의 세력들이 군사력의 증강을 통해 세계경제 내에서 '정당한' 위치를 보장받으려는 전략들이 발생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세계경제에 배제된 지역에서 약탈전쟁과 반동적인 분리주의가 지속적으로 재출현하고 있다.

중심 없이 발생하고 있는 지역분쟁들과 폭력의 확산은 미국의 세계적/지역적 지도력의 신뢰성을 의심받게 하고, 미국의 세계헤게모니를 정당화하는 미국의 보편적 '가치'(민주주의와 인권)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미국이 더욱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는 이주민, 실업의 문제와 함께 이미 중심부로 이전되고 있는 배제된 지역의 불안정성이다. 9.11사태가 미국과 미국인에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미국 본토가 직접 공격을 당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통치성을 유지하기 위해 무장한 폭력(전쟁)을 동반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2000년 미국 국익위원회의 보고서에 의하면 세계화 시대에 적합한 군사 개입은 미국의 '사활적 이해'다. 보고서는 미국의 '사활적 이해'란 미본토를 핵무기·생화학무기의 위협으로부터 방어하는 것과 세계화의 주요한 시스템들-상업, 금융, 물류 및 에너지 네트워크 등-의 안정성과 실행가능성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자신에게 사활적인 이해가 보증되는 곳(미 본토와 유럽, 동아시아)을 불안정한 지역(동유럽, 중남미, 중동, 동남아시아 등)의 빈곤, 폭력 등으로부터 방어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또한 내부의 지역·계층적 불안정성이 타지역·계층으로 전이되는 것까지 방어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동시에 지역 강국들(이라크와 북한, 중국 등)이 미국의 잠재적인 적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미연에 제거하는 것이 관건이 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이제 국가안보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를 급진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국가 안보는 국가영토의 불가침을 의미했지만 이제는 세계적 시스템들의 적절한 작동을 보호하는 것으로 변화했다. 따라서, 미국은 자신의 에너지 네트워크인 석유에 대한 통제 장치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군사적 개입'을 일반화할 것이다.


'대 테러전쟁'의 불가능성

현재 미국의 주요한 군사방침인 '대테러전쟁'은 과거의 '위협에 기초한' 모델에서 미래지향적 '능력에 기초한' 공격모델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즉 "적국이 누구며 전쟁이 어디에서 발생할 것이냐"는 점보다는 "가상의 적이 어떤 방식으로 전쟁을 벌일 것이냐"는 것이 초점이 된다. 때문에 미국이 현재보다 더욱 압도적인 군사적 우월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새로운 분야에서 군사적 우위를 개발해야 하고 가상의 적에게는 우위를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대테러전쟁'은 대중적으로 적의를 공유시키고 군사적으로 미국의 국가테러를 더욱 강화해서 무자비한 보복으로 테러를 근절하겠다는 기획이다. 이는 국가테러를 은폐하는 효과를 낳고 동시에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야기한 파국에 대한 책임마저도 배제된 지역·계층이 짊어져야 한다는 식의 인식을 유포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의 군사전략은 세계자본주의 내의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경계선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금융세계화의 경계선은 중심부 국가 및 신흥시장에 대한 적극적 포섭과 주변부 지역에 대한 배제와 온정적 관리로 명확히 구분되고 있다. 이에 조응하여 미국의 군사전략은 중심부와 신흥시장에 대해서는 강력한 지역 군사동맹을 형성하고 지역패권국의 등장을 강력하게 억제하는 한편, 세계경제의 배제된 지역의 경우에는 평화유지라는 이름하에 선별적인 관리책을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궁극적으로는 '사후' 대책일 뿐, 미국의 군사전략은 신자유주의가 야기하는 경제적 불안정성과 빈곤의 확산 그 자체를 막을 수는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바로 이 지점이 미국이 자신의 압도적인 군사력을 통해서도 신자유주의의 위기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자본주의 일반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는 이유이다.

현재 미국은 이라크 침공이후 지속적인 군사전략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해외주둔미군재배치 계획과 무기시스템의 변화, 지역적 동맹국들과의 군사·안보동맹의 현대화가 바로 그 내용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과 평택 미군기지 이전·확장 문제가 존재한다. 이라크 전쟁을 비롯하여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폭력과 분쟁들에 반대하는 운동들은 결국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저항하는 민중들의 투쟁과 결코 다르지 않다. 미국의 세계적 군사패권전략에 대한 비판은 전쟁과 폭력을 야기하는 금융 세계화에 대한 전면적인 반대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다.
덧붙임

이소형 님은 사회진보연대 조직교육국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