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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전업주부 가사노동만 가치 있나?

차별연구회, "소득세법 개정안은 차별"…인권위 진정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가치를 소득공제에 반영하도록 해 화제를 모은 소득세법 개정안에 대해 다양한 가족형태를 인정하지 않는 차별적 법안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달 18일 이계경 의원(한나라당)은 "가사노동은 단순히 취사, 청소, 세탁 뿐 아니라 육아, 노인봉양 등 가족 보살피기, 가정 경제 운영 등 사회의 기초 단위인 가정이 유지되기 위한 광범위한 활동이나 임금이 지불되거나 경제적인 소득이 발생하지 않는 관계로 그 경제적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연간 소득금액의 합계액이 100만원 이하인 배우자의 경우 연 1200만원을 기본공제대상으로 하고 △배우자가 없는 여성으로 부양가족이 있는 세대주이거나 배우자가 있는 여성의 경우 추가공제 금액을 현행 1인당 연 5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소득세법 일부개정안(아래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차별연구회는 1일 국가인권위(아래 인권위)에 낸 진정서를 통해 "유독 법적으로 인정하는 혼인관계에 있는 가족과 전업주부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혼인 여부, 가족 상황, 소득수준과 취업여부에 따른 사회적 신분, 성적 지향, 그리고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적인 법안"이라고 지적했다.


성별 경제력 불균등 심화, 성별 분업 강화할 가부장적 법안

차별연구회는 이 법안이 "가사노동에 대한 평가를 배우자 공제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가사노동 전담자인 여성의 노동이 시장경제 활동을 하는 남성을 통해 평가받고 인정됨을 의미"해 "가사노동에 대한 가치 인정의 실질적 수혜자는 사회에서 소득활동을 하는 남성(남편)이라는 점에서 성별 경제력 불균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만을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여성들의 전업주부화를 촉진하고 성별 소득격차를 심화시키며, 기존의 위계적인 성별분업구조를 강화하여 여성들의 노동시장 참여를 더욱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성차별적 법안"이라며 "여성들 사이의 갈등을 야기하고, 여성들의 노동시장 참여와 경제적 독립을 저해할 수 있는 차별적 법안을 여성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는 사실에 대해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가사노동은 전업주부의 전유물?

한편 차별연구회는 "(가사노동은) 법적 혼인관계에 있는 전업 주부만이 아니라 이혼으로 인한 한부모 가족, 비혼 동거 가족, 법적 혼인을 인정받지 못하는 동성애 가족 등 다양한 가족 형태 내에서 다양한 가족 구성원에 의해…수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법안에 대해 "전업주부의 가사노동만 가치를 인정해주는 합리적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또 "사회 구성원은 모두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가족을 구성할 권리가 있다"며 법안이 △법적 혼인관계에 있는 배우자가 아닌 다른 가족 구성원에 의해 가사노동이 이뤄지는 가족 △전업주부와 생계부양자로 구성되지 않은 가족 △동성애 부부와 동성애 가족 등을 배제하고 이성애 부부 중심의 가족에게만 세제상의 혜택을 준다는 점에서 혼인여부·가족상황·성적지향에 의한 차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취업여부·소득수준에 따른 차별

한편 차별연구회는 이 법안이 '사회적 신분에 의한 차별'에도 해당한다고 밝혔다. 법률안이 전업주부의 가사노동만 경제적 가치를 인정하고 취업주부에 의한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실제로 통계청의 '2004년 생활시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맞벌이 부부와 비맞벌이 부부 모두 남편의 가사노동 시간은 별 차이 없이 일일 평균 30여분에 불과하지만 전업주부는 6시간 25분, 취업주부는 3시간 28분을 가사노동에 쓰고 있다. 이에 따라 취업주부의 총 노동시간은 전업주부에 비해 일일 평균 2시간 26분이나 긴 것으로 나타났다. 차별연구회는 법안이 "(취업주부의 가사노동을) 포함하지 않는 합리적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는 한…취업여부에 따른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한 차별적 법안"이라고 판단했다.

또 가사노동 가치가 소득 수준에 따라 차별적으로 인정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현재 소득이 전혀 없는 실업자나 총급여액이 월 100만원 전후인 저소득자는 실제로 납부하는 세금이 거의 없으므로 배우자 공제를 연 1200만원으로 높여도 사실상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것. 이에 비해 누진세율이 적용되는 고소득자의 경우 이번 법안에 따라 낮은 세율을 적용받게 된다. 차별연구회는 법안이 통과되면 "납세자의 소득 수준에 따라 그 배우자의 가사노동은 차별적인 가치평가를 받게 되"고 "저소득층에게 불이익을 준다"며 '소득수준에 따른 사회적 신분에 의한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진정에 대해 이 의원실 관계자는 "함께 논의해볼 가치가 있는 타당한 지적"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법안 통과를 위한 전략적 사고도 필요하다"며 "지금은 가사노동의 가치를 경제적으로 평가하는 사회적 공론의 장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졸속적 가족관련 법안 모니터링 계속할 것"

한편 차별연구회는 "최근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 대책이라는 명목으로 각 정당에서 발의하고 있는 비민주적이고 차별적인 가족관련 법안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분석을 통해…기만성과 허구성에 대해 공론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차별연구회는 고용차별 등 사회 전반의 차별사례를 발굴·분석하기 위해 여성학·사회학 연구자들로 구성된 연구모임으로, 지난 5월 24일에는 국민은행이 채용시 지원자격을 '4년제 대학 졸업' 등으로 제한한데 대해 '학력에 의한 차별'로 인권위에 진정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