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 일반

‘빨갱이’ 가족으로 살아 온 억울한 내 인생을 돌려달라!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희생자를 외면하는 법원

‘한국전쟁 희생자 유족’이란 사실이 무서웠던 시절이 있었다. 치안대가 몰려와 부모와 언니, 막내 동생을 한꺼번에 죽였는데, 국가에 소리 한번 질러 보지 못하고 오히려 빨갱이 집안이 되었다. 4. 19 혁명 이후, 한국 전쟁이 일어난 지 10년 만에 진상규명을 하나 싶었다. 국회에서 학살된 양민들을 조사한다며 신고를 받았다. 우리 집도 신고할 수 있을까, 빨갱이 집안이라고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더 이상 고민이 필요 없게 되었다. 5. 16 쿠데타 정부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족들을 북한과 연루된 사람으로 보고 무차별 연행하더니 사형까지 집행했다. 신고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경찰들은 수시로 우리 집을 기웃거렸고 친척들도 경찰의 감시를 받는다며 하소연했다. 이번 소송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경찰은 처형자 가족 명단을 가지고 우리들을 감시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전쟁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 유족들은 북한과 연루된 사람이다’는 생각에 그 누구도 그 옛날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세상이 좀 바뀌었나 싶었다. 그러나 50년이 지나도 가족들의 죽음은 내 안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을 뿐, 구체적인 사실이 되지 못했다. 경찰복을 입은 사람들과 치안대원들이 무슨 이유로 이들을 죽였고 누구의 책임인지 알고 싶었지만 알 길이 없었고 아는 것이 두려웠다.

그러다가 2007년 어느 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과거사정리위원회)라는 곳에서 전화가 왔다. 한국전쟁 때 우리 가족이 희생되었는지 묻는데, 전화를 받자마자 두려운 생각이 몰려왔다. 우리의 억울함을 풀어주려는 것인지, 아니면 옛날처럼 우리를 잡아넣으려는 것인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아직도 나처럼 한국전쟁 유족이란 사실이 오히려 화가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전쟁의 상처가 정말 오래도 간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사정리위원회는 1년 10개월 동안 조사한 끝에 우리 가족들이 경찰과 치안대에 의해 무고하게 학살당한 사실을 인정하였다. 58년 만에야 우리의 억울함이 풀리나 싶었다. 그러나 우리 유족들은 국가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자존감에 또 한 번 깊은 상처를 입고, 도대체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회의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을 인정하지 않은 법원

나는 국가의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 다른 유족들과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런데 국가는 이제 와서 우리들을 희생자로 인정할 수 없다며 처음부터 다시 증거를 대란다.

아니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어떤 곳인가. 국가가 오랫동안 은폐하고 조작하여 진실이 규명되지 않은 사건을 밝히려고 스스로가 만든 국가기관이 아닌가. 그러면, 국가가 규명한 진실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국가가 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58년 만에야 진실을 규명하고 이제 와서 희생된 사실을 다시 유족들에게 입증하라니, 도대체 이게 말이 되기나 하나. 나야 억울하게 죽은 가족들 시신이라도 찾아 그나마 다행이지만,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학살당했는지 모르는 유족들은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 더구나 바닷가 지역에서는 학살된 많은 희생자들이 수장됐다고 하던데, 그들의 죽음은 어떻게 밝히란 말인가.

'전국 요시찰인 단속 및 전국형무소 경비의 건' 1950/6/25 내무부 치안국에서 제주도 경찰국을 비롯한 각 경찰국으로 보내는 통첩. 이 지시로 인해 예비검속이 시작된다. [출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참세상 기사 재인용)

▲ '전국 요시찰인 단속 및 전국형무소 경비의 건' 1950/6/25 내무부 치안국에서 제주도 경찰국을 비롯한 각 경찰국으로 보내는 통첩. 이 지시로 인해 예비검속이 시작된다. [출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참세상 기사 재인용)


그동안 법원은 국가의 이런 어처구니없는 주장에 대하여 대체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설립취지와 전문성, 독립성 등을 고려하여 진실규명 결정대로 판결을 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2013년 5월 16일 대법원은 진도 민간인학살 사건 재판에서 과거사정리위원회라는 국가기관의 결정을 단지 하나의 증거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겨 유족들에게 법원이 납득할 만한 증거를 추가로 제시해야 한다고 판결을 내렸단다. (우연이지만 1961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날짜와 동일하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은 ‘실종을 가장한 집단학살’이라고들 이야기한다. 많은 경우 누가, 언제, 어디로 끌고 가 어떻게 학살했는지 아무도 모르기에 마치 실종을 가장한 집단학살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국가가 죽음을 은폐했으면서 이제 와서 우리 유족들에게 증거를 내놓으라고 하니 이보다 완전한 범죄가 어디 있을까.

더 억울한 것은 나를 비롯한 많은 유족들이 5월 16일에 내려진 애매모호한 대법원 판결 때문에 진실규명을 받고도 국가에게 법적 책임을 묻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현재 항소심 진행 중이다). 처음 소송을 제기할 때 담당 변호사는 소멸시효에 대해 많이 걱정했다. 법에 따르면 원래 1955년까지 소송을 제기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모, 형제를 한 순간에 잃고 빨갱이 자식이 되어 숨어 살 수밖에 없었던 나 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 당시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다행히 우리 소송 진행 중에 대법원이 울산보도연맹과 문경학살 사건에서 소멸시효를 인정하지 않고 국가에게 법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그 내용은 ①과거사정리위원회 진실규명 전까지 국가가 진상을 규명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진실을 은폐, 조작하여 유족들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었고, ②국가는 적법한 절차 없이 보호 의무를 지는 국민의 생명을 박탈할 수 없으므로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다는 이유로 대법원이 국가 책임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이 판결에 실낱같은 희망을 겨우 걸 수 있었다.

왜 신청을 못했는지를 가늠하지도 않고

그러나 대법원은 5월 16일에 위의 두 가지 이유를 인정하지 않았고, 오해의 소지가 있는 애매한 판결을 내렸다. 결국 그 때문에 나는 소송에서 패소하고 말았다.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한 사람에게는 국가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만, 나같이 진실규명을 신청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국가의 법적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가가 죄 없는 사람들을 죽여 놓고, 나처럼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뭔지도 몰라 신청하지 않거나, 아니면 아직도 유족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두려워 신청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겠다니, 이게 무슨 해괴한 판결이란 말인가.

우리는 국가가 그동안 저지른 범죄만큼 최소한의 법적 책임만을 요구했을 뿐이다. 그런데 국가는 피해자가 너무 많아 다 보상을 해 주면 국가재정이 바닥이라도 날 것처럼 걱정된다고 떠든다. 사람을 그렇게 많이 죽여 놓고, 이제 와서 피해자가 너무 많아 위자료마저 줄 수 없다니…… 5월 16일에 대법원도 피해자 숫자가 많으니 적절히 위자료 액수를 조정해야 한다고 했단다.

국가가 수 만 명의 죄 없는 사람을 죽여 놓고, 사죄와 반성은커녕 최소한의 법적 책임도 지지 않고 빠져나가려고 하니 가슴이 먹먹하기만 할 뿐이다.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억울하게 돌아가신 내 가족은 결코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 ‘빨갱이’ 가족으로 숨죽이며 살아 온 지난 세월, 한 맺힌 내 인생은 아무리 많은 돈으로도 결코 보상받을 수 없다. 내 억울한 인생을 돌려 달라!

아무 죄도 없는 우리 가족들을 무참히 죽여 놓고 이제 와서 나 몰라라 발뺌하는 파렴치한 국가. 돈 많고 힘센 자들에게는 관대하면서, 가진 것 없고 아무 힘도 없는 우리 같은 사람들의 처지는 외면하는 사법부는 왜 존재하는 것인가. 나한테는 다 필요 없다. 누군가 속 시원히 우리 유족들에게 대답해주면 좋겠다. 도대체 정의란 무엇이고, 그 정의는 지금 어디에 있단 말인가.

* 이 글은 필자가 대리하고 있는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사건의 당사자 입장이 되어 작성한 글입니다.
덧붙임

이상희 님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과거사청산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